김천웅의 '망고'와 안애순의 '순간편집'
'끝'에서 길어 올린 '시작'과 '영원'의 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한 해의 끝자락인 12월, 화려한 쇼나 들뜬 파티 대신 춤의 본질과 삶의 시간을 응시할 수 있는 두 편의 묵직한 무대가 관객을 찾는다. 자신만의 독보적인 춤 세계를 구축해온 안무가 김천웅과 한국 현대무용의 거장 안애순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각각 '개인의 절망과 회복', 그리고 '무용 역사의 기록과 전승'이라는 서로 다른 주제를 들고 나왔지만, 두 작품 모두 '끝'이라 여겨지는 시공간에서 새로운 리듬과 생명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깊게 공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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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안애순의 '순간편집' 포스터. [사진 = 안애순컴퍼니] 2025.12.01 oks34@newspim.com |
▲ 안애순 '순간편집'...극장이 잠든 월요일, 춤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 현대무용의 역사를 이끌어 온 안애순 컴퍼니는 극장이 문을 닫는 월요일 밤, 아르코예술극장을 깨운다. 2027년 신작을 위한 리서치 프로젝트 '순간편집'은 지난 40년간 축적된 안애순의 안무가 어떻게 기록되고, 기억되며,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지를 실험하는 이머시브(몰입형) 공연이다.
이 프로젝트는 "공연은 사라지지만 안무는 소멸하지 않는다"는 대명제 아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 공간에 겹쳐 놓는다. 첫 번째로 로비다. 로비에서는 과거 안애순의 작품을 추었던 중견 무용수들이 현재의 몸으로 그 기억을 재소환한다. 두 번째는 아카이브다. 벽면을 채운 영상 기록들이 무용수의 몸과 오버랩되며 시간의 층위를 보여준다. 세 번째로 스튜디오 다락이다. 새로운 세대의 무용수 7명이 안애순의 안무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며 미래의 춤을 모색한다.
관객은 와인을 들고 극장 곳곳을 배회하며, 박제된 역사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아카이브'를 목격하게 된다. 특히 2003년작 '행복의 권리' 속 '파티무용'이 20여 년 만에 재현되는 '클럽톡' 시간은 예술가와 관객의 경계를 허무는 자유로운 소통의 장이 될 전망이다. 12월 1일, 8일, 15일 오후 7시. 아르코예술극장 로비 & 스튜디오 다락.
▲ 김천웅 '망고'... 모든 것을 털어낸 자리, 다시 피어나는 리듬
김천웅 안무가의 신작 '망고 MANGO'가 연말 무대를 장식한다. '망고'는 과일이 아닌 우리말 '망고하다'에서 따왔다. 연의 줄을 끝까지 풀어주거나 살림을 전부 털어내는 상황을 뜻하는 이 단어는 흔히 '끝'을 의미하지만, 김천웅은 이를 단절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 임계점'으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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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김천웅 '망고' 포스터. [사진 = 흰댄스]2025.12.01 oks34@newspim.com |
작품은 7년의 해외 활동과 은퇴, 그리고 고립이라는 안무가 자신의 자전적 경험에서 출발한다. 사업 실패, 수험 생활의 피로, 은퇴 등 각자의 '끝'에 선 인간 군상의 모습을 통해, 삶이 무너져 내린다고 느끼는 순간 역설적으로 다시 꿈틀대며 피어나는 희망의 리듬을 포착한다.
이번 공연의 백미는 '라이브 댄스'와 '시네마틱 미디어 아트'의 결합이다. 무대 위 무용수의 즉흥적인 몸짓(시간성)과 사전에 정교하게 연출된 영상(고정성)이 충돌하고 화합하며 현실 너머의 감각을 일깨운다. 특히 CL, 제이홉 등과 협업해 온 이석준 감독의 미니 다큐멘터리가 관객을 작품의 내면으로 안내하고, 미디어 아티스트 장세희의 영상 미학이 무대 위 감정의 잔광을 시각적으로 확장한다.
김천웅 안무가는 "끝났다고 느꼈던 시기들이 오히려 또 다른 시작이었다"며, 이번 작품이 지친 현대인들에게 회복과 용기의 메시지가 되기를 희망한다. 12월 19일~21일.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
▲ '삶의 전환점'과 '예술의 영속성'을 마주하다
김천웅의 '망고'가 개인의 삶 속에서 마주하는 '전환의 순간'을 미시적이고 감각적으로 파고든다면, 안애순의 '순간편집'은 무용이라는 예술 장르가 시간 속에서 어떻게 영속성을 갖는지 거시적이고 실험적으로 탐구한다. 화려한 연말 볼거리들 사이에서, 이 두 무대는 묵직한 울림을 원하는 관객들에게 '끝'이 곧 '새로운 시작'임을 증명하는 소중한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oks34@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