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최재은 작가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국내 첫 국공립미술관 개인전 '약속'을 개최한다.
22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는 작가 최재은의 개인전 '최재은: 약속(웨어 비잉스 비, Where Beings Be)' 언론공개회가 열렸다. 자리에는 최재은 작가를 비롯해 이승아 학예연구사 등이 참석했다.
'최재은: 약속'은 조각, 영상, 설치, 건축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생명과 자연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작가 최재은의 국내 첫 국공립미술관 개인전으로, 기존 대표 작품부터 최신작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작업 세계를 심도 깊게 조망한다.

보이지 않는 시간의 결과 다층적인 시공간에 주목해 온 작가의 주요 작업과 신작을 함께 소개하며,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 고유의 시선과 예술적 사유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이번 전시는 '루시', '경종', '소우주', '미명', '자연국가'라는 총 5개의 소주제로 구성됐으며, 작가의 주요 작업을 조망하는 아카이브를 포함한 작품을 소개한다. 또한 인류의 기원에서 현재의 생태 위기까지를 하나의 시간 축으로 연결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 것은 바로 최재은 작가의 '루시' 작품이다. '루시'는 인류의 기원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인간 존재의 출발점을 환기한다. 약 320만 년 전 인류 화석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이는 한백옥을 5·6각형 조각으로 다듬어 일일이 붙인 것으로, 당시 발굴된 루시의 골반뼈를 형상화했다.
'약속'을 기획한 이승아 학예연구사는 "'루시'는 한백옥을 5·6각형 조각으로 다듬어 일일이 붙인 것으로, 당시 발굴된 루시의 골반뼈를 형상화했다. 한백옥은 빛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시간의 축적을 상징하는데, 돌과 구조물을 통해 인간만이 아닌 다종의 존재가 함께해 온 시간을 암시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지는 '경종'에서는 실시간 해수면 온도 데이터와 바다 이미지를 결합한 영상 작업 '대답 없는 지평' 연작을 통해 기후 위기와 생태 파괴의 현실을 가시화한다. 이 연구사는 "백화된 산호의 이미지는 자연이 보내는 경고로 작동하는 의미"라고 말했다.
'소우주'에서는 대지의 안팎에 존재하는 미시 세계로 시선을 확장한다. 땅속에 묻혔다가 다시 드러난 일본의 전통 종이 '와시' 작업인 '월드 언더그라운드 프로젝트'와 이를 현미경으로 포착한 '순환', 암석 위에 축적된 생명의 흔적을 담은 '숨을 배우는 돌'을 통해 시간 층위와 생명 간 상호작용, 미시 세계에 깃든 순환의 질서를 조망한다.
전시장에서 시선을 끄는 곳이 바로 '미명'이다. 작고 미미한 존재들까지도 세상을 이루는 고유한 생명으로 바라보는 태도에서 출발한 이곳은, 최재은 작가가 일상에서 마주한 들꽃과 들풀 수집한 작업 560여 점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승아 연구사는 "이 공간에서는 최재은 작가가 장영규 음악감독과 협업한 '이름 부르기' 음악이 흘러 나온다. 이는 산업혁명 이후에 멸종된 대표적 종의 이름을 부르는 음향 설치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최재은 작가는 "교토로 이사가서 지금 지내는 곳이 시골같은 곳인데 산책하면서 보는 자연에 가깝게 다가가고 싶었다. 오래 전부터 생존해 온 생태계인데, 이러한 시대와 시기라서 조금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아서 이름도 살펴보고 지구상에 어떻게 존재해 왔는지 살펴보다가 작업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560여 점의 작업은 굉장히 집중한 작업이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알 수 있는 식물이 몇 가지 없다. 이들의 주권을 찾아주고 싶다. 같은 생태계이고, 같이 존재해 온 관계에서 이러한 시기에 관심을 안 갖는 것은 시대적인 착오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미술관 측에서도 많이 도와줬다. 이름을 찾아서 기입하고 스토리를 만드는 작업은 정말 방대하고 신념이 없으면 완성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만들어낸 하나의 주권"이라고 부연했다.
최 작가는 "한 사람이 조금씩 흥미를 갖는다면 아직도 지구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방대한 작업을 해봤다"고 덧붙였다.

'자연국가' 공간에서는DMZ(비무장지대)에 대해 다뤘다. DMZ를 인간의 분단 경계가 아닌 자연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재사유했다. '대지의 꿈' 프로젝트와 '자연국가'를 통해 DMZ의 생태 현황을 분석하고 회복을 모색하는 구상을 제시했다. 또한 DMZ 철조망을 녹여 제작한 '증오는 눈처럼 녹는다'도 관람할 수 있다.
이승아 학예연구사는 "'증오는 눈처럼 녹는다'는 관람객들이 직접 그 위를 거닐 수 있다. 철조망을 녹여 제작한 이 작품은 바닥에 징검다리처럼 설치를 해놨다. 작가님이 당시에 개미와 나비가 경계를 허물고 넘나드는 것을 목격하고 만든 작품이기도 한데, 인간이 만든 경계와 자연의 무경계 사이의 대립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공간은 최재은 작가의 작업 세계가 형성되고 확장되어 온 과정을 집약하는 '아카이브'로 꾸며졌다. '재생조형관', '루시', '시간의 방향' 등 주요 프로젝트의 모형과 더불어 작품집과 도록, 평론, 도면, 스케치 등 작가의 작업 전 과정을 소개한다.

이승아 연구사는 "'아카이브' 공간에서 '성철스님의 사리기' 경우에는 프로젝트 모형을 최초로 공개하는 것"이라며 "이 공간에서 작가의 작업 전개 과정을 더욱 자세히 보실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 기간 중에는 관람객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는 워크숍 형태의 신작도 함께 선보인다. 워크숍은 '종자볼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관람객이 해바라기 씨앗을 흙과 함께 빚어 작은 생명의 단위를 만들어보는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이 프로그램은 생태복원 프로젝트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한 개념적 성찰에서 출발해 상징성을 지닌 해바라기 종의 선택을 통해 토양 정화와 생태 회복의 의미를 탐구한다. 이를 통해 개인의 작은 참여가 오염된 환경을 회복 시키고, 인간과 자연의 공생 가능성을 확장해 나갈 수 있음을 체감하도록 하는 데 의의를 둔다.
이번 전시는 예약 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도슨팅 앱을 통해 다국어로 작품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오는 23일부터 2026년 4월 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1층에서 진행된다.
alice09@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