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아웃사이드 히터, 임동혁 아포짓 스파이커 전술 실패
2위 현대캐피탈과 승점 차 단 3···현실적인 운영 필요
[서울=뉴스핌] 남정훈 기자 = 시즌 내내 선두를 달리며 안정적인 행보를 이어가던 대한항공이 주축 선수들의 잇단 부상이라는 악재 속에 가장 큰 고비를 맞았다. 탄탄했던 전력 구성이 한순간에 흔들리며, 선두 경쟁 역시 예측 불허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대한항공은 4일 인천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진에어 2025-2026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홈경기에서 현대캐피탈에 세트 스코어 0-3(17-25, 14-25, 18-25)으로 완패했다. 세 세트 모두 20점을 넘기지 못한 채 무너졌고, 경기 시간은 불과 1시간 19분에 그쳤다. 이는 이번 시즌 남자부 한 경기 최소 득점 패배라는 불명예 기록으로 남았다.

충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대한항공은 앞서 지난 1일 최하위 삼성화재를 상대로도 2-3 역전패를 당하며 시즌 첫 연패에 빠졌다. 당시에는 두 세트를 먼저 따내며 승리를 눈앞에 두고도 이후 세 세트를 내리 내주는 아쉬운 패배를 기록했다. 지난해 10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10연승을 질주하며 리그를 압도했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흐름이다.
최근 나흘 사이 대한항공은 최하위 팀을 상대로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한 데 이어, 라이벌 현대캐피탈에게는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완패했다. 그 사이 순위 경쟁 구도도 빠르게 요동쳤다. 대한항공이 14승 5패, 승점 41에 머문 반면 현대캐피탈은 12승 7패, 승점 38까지 따라붙으며 격차를 단숨에 3점 차로 좁혔다. 독주 체제였던 선두 싸움이 어느새 박빙 구도로 변해버린 셈이다.
위기의 핵심은 왼쪽 측면을 책임지던 정지석과 임재영의 동시 이탈이다. 정지석은 훈련 도중 오른쪽 발목을 다쳐 병원 검진을 받았고, 발목 인대 파열 진단으로 약 8주간 재활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는 단순히 주전 한 명이 빠진 문제가 아니다. 정지석은 올 시즌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후보로 거론될 만큼 공수에서 절대적인 존재였다.

정지석은 15경기에서 총 252점을 기록하며 경기당 평균 16.8점을 올렸고, 득점 부문 전체 11위, 국내 선수 중에서는 세 번째로 높은 순위에 올라 있었다. 리시브 효율 역시 36.94%로 전체 6위에 해당하며 공격과 수비 양면에서 팀의 중심축 역할을 해왔다. 대한항공이 개막 이후 10연승을 달리며 선두를 질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지석의 공헌이 컸다.
설상가상으로 정지석의 공백을 메우던 임재영마저 쓰러졌다. 임재영은 지난달 28일 우리카드와의 경기 도중 왼쪽 무릎 반월상 연골판 부상을 당해 수술대에 올랐다. 이로써 대한항공은 순식간에 왼쪽 날개 자원 두 명을 동시에 잃었다.
헤난 달 조토 감독은 김선호, 곽승석, 서현일 등 후보 자원으로 라인업을 꾸려보며 해법을 찾았지만 공격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외국인 에이스 카일 러셀(등록명 러셀)에 대한 의존도가 극도로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현대캐피탈전에서는 변화를 시도했다. 헤난 감독은 러셀을 아웃사이드 히터로 이동시키고, 임동혁을 아포짓 스파이커로 배치하는 강수를 꺼냈다. 좌우에 강력한 공격 자원을 배치해 화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 선택은 곧 치명적인 약점으로 돌아왔다.

아웃사이드 히터는 공격뿐 아니라 리시브 부담까지 안아야 하는 포지션이다. 리시브 능력이 뛰어났던 정지석과 달리, 러셀은 전문 리시브 자원이 아니다. 실제로 러셀은 V리그 데뷔 시즌이던 2020-2021시즌 한국전력 시절 리시브를 시도했지만 효율은 10.75%에 불과했다. 이후 삼성화재, 대한항공 시절에는 아예 리시브 라인에 서지 않았다.
서브가 강한 현대캐피탈은 이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러셀을 향한 목적 서브가 이어졌고, 러셀의 리시브는 경기 내내 흔들렸다. 1세트에서 러셀은 리시브 점유율 37.5%를 기록했지만 효율은 0%에 그쳤다. 2세트에서 다소 나아졌으나 전체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러셀의 최종 리시브 효율은 15.38%에 머물렀다.
이 여파로 대한항공의 팀 리시브 효율은 시즌 평균 36.27%(리그 1위)에서 이날 26.15%까지 급락했다. 리시브가 흔들리자 세터의 선택지도 줄어들었고, 공격 성공률 역시 34.07%까지 떨어지며 경기 전체가 꼬였다. 공격 강화를 노린 전술은 결과적으로 완벽한 실패로 돌아갔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지석과 임재영 모두 회복 경과는 비교적 양호하지만, 현실적으로 복귀 시점은 3월이 유력하다. 대한항공은 최소 두 달 가까운 기간 동안 불완전한 전력으로 버텨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나마 위안은 순위표에 있다. 2위 현대캐피탈과의 격차는 승점 3으로 줄었지만, 3위 KB손해보험과는 여전히 10점 차가 난다. KB손해보험 역시 최근 흐름이 좋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한항공은 당분간 '선두 수성'보다 '2위 지키기'에 초점을 맞춘 현실적인 운영이 필요해 보인다.
일정도 비교적 숨 고르기가 가능하다. 대한항공은 이번 주 단 한 경기만 치른다. 8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우리카드와 맞붙는다. 우리카드 역시 감독 교체 이후 분위기가 완전히 안정되지 않은 만큼, 대한항공으로서는 반등을 노려볼 수 있는 상대다.
플랜 C, 플랜 D까지 꺼내 들었지만 연이어 실패를 맛본 헤난 감독이 우리카드전에서는 어떤 해법을 들고나올지 관심이 쏠린다. 주전들의 부재 속에서 대한항공이 위기를 어떻게 관리해 나갈지, 시즌 판도를 가를 중요한 시험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wcn05002@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