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35A·F-15K·공중급유기…도입 대형 무기사업과 재원 충돌
생산라인·협력업체·블록2 일정까지 '도미노 지연' 우려
KAI "수정계약 땐 연부금 책임 흐려져…3중 부담 구조"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 1차 양산 예산이 당초 계획보다 8000억 원 덜 반영되면서, 공군의 차세대 전력 재편에 '브레이크'가 걸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F-35A 2차 도입 등 굵직한 도입사업과의 재원 충돌 속에 국산 주력기 예산을 사실상 후순위로 돌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와 방위사업청은 당초 2026~2027년 KF-21 블록1 40대 양산에 약 1조5000억 원 안팎의 예산을 투입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예산 심의 과정에서 약 8000억 원이 삭감되면서, 실제 반영된 규모는 7000억 원(6900억 원) 수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KF-21 40대 도입에 필요한 생산비 구조를 감안하면 7000억 원으로는 30대분만 충당이 가능하고, 나머지 10대에 해당하는 약 4000억 원은 사실상 '뒤로 미뤄진' 셈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안팎에서는 "40대를 일괄 양산하겠다던 정부 약속이 사실상 무너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번 예산 축소는 공군이 애초 그려온 'KF-21 체계 전환 시나리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공군은 2028년까지 F-4·F-5 구형 전투기 100여 대 이상을 순차 퇴역시키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8조4000억 원을 들여 KF-21 블록1 40대를 우선 전력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와 별도로 2028~2032년 블록2 80대 추가 양산을 전제로, 총 120대 규모의 연속 양산 체계를 구축해 생산라인과 인력을 끊김 없이 운용한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1차 양산분 예산이 40대가 아닌 30대 기준으로 줄어들면서, 도입 완료 시점을 2028년에서 2029년 이후로 한 해 이상 늦추는 방안까지 재정당국과의 조율 과정에서 거론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예산 축소의 배경에 다른 대형 사업과의 '재원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방위사업청은 2023년 12월 미국 정부와 구매계약서(LOA)를 체결하고, 2027년부터 F-35A 20대를 추가 전력화하는 '차기전투기(F-X) 2차 사업'을 확정했다. 사업비는 4조 원대 규모로 추산되며, 2027년 전후로 대금 지급이 집중되면서 기존 40대에 더해 총 59대의 F-35A를 운영하게 된다.
여기에 F-15K 성능개량, 항공통제기 2차 도입, 공중급유기 증강 등 고가의 항공 전력 사업이 일제히 예산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동맹 차원의 전략자산 강화' 기조가 부각되자, 청와대와 재정 라인이 "전투기 도입 등 굵직한 사업을 동시에 끌고 가야 한다"는 방향을 굳힌 것 아니냐는 해석이 군 안팎에서 나온다.
KF-21 사업 구조상 예산에 '턱'이 생기면 연쇄 지연은 불가피하다. KF-21 생산라인은 블록1 40대(2026~2027년), 블록2 80대(2028~2032년)를 연속 양산하는 전제를 두고 전방·후방 공정을 설계한 상태다. 기체 조립은 이른바 '닭 뱃속에서 달걀이 순차로 생겨나듯' 여러 동체가 생산 공정을 따라 이동하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중간에 예산이 끊기면 완성기 출고 일정부터 블록2 전환 시점까지 줄줄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KAI는 동체 구조물, 엔진, 항전장비, 레이더 등 주요 품목을 수년 치 물량 기준으로 협력업체들과 장기계약을 맺어둔 상태여서, 40대 기준이 30대로 바뀔 경우 납품 시기 조정, 단가 재협상, 라인 가동률 저하 등이 1·2차 협력업체 전체에 파급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과거 사례와의 '데자뷔'도 거론된다. 2000년대 후반 F-15K 2차 도입 시기에는 T-50 양산이 겹치면서, T-50 50대를 마친 뒤 일정 공백을 두고 TA-50 전술입문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생산 단절과 인력 운용 공백이 발생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트럼프 1기 당시에는 F-35A 1차 도입과 KF-21 예산 편성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KF-21 블록1 물량이 40대에서 20대로 줄었다가 다시 40대로 회복되는 혼선도 반복됐다. 이번에도 F-35A 2차분 대금 지급이 본격화되는 2027년 전후 시점과 맞물려 KF-21 40대 예산이 7000억 원 수준으로 축소되면서, "전투기 해외 도입 때마다 국산 기체 예산이 뒤로 밀린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KAI 관계자는 "당초 1조5000억 원이 들어와야 하는데, 7000억 원만 반영돼 8000억 원이 덜 들어온 것이 확인됐다"며 "연부금(年賦金·분할 상환하는 부담금)이 뒤로 밀리면 생산 후반부 부담이 커지면서 양산·생산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이 이를 반영해 '수정 계약'을 추진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정부가 애초 주기로 한 구조를 바꾸는 것으로, 결국 울며겨자먹기로 다시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정부는 '새 계약이니 연부금 문제는 끝났다'는 식으로 슬그머니 넘어가려는 것 아니냐"고 했다.
KAI 측은 F-15K 성능개량, 공중급유기, F-35A 추가 도입 등 여러 대형 사업이 동시에 시작되는 과정에서 "그중 가장 손쉬운 조정 대상으로 KF-21 양산을 늦추는 선택을 한 것 같다"고 지적하면서, 이로 인해 공군 전력 공백은 물론, 이미 비용 지출 계획을 세우고 움직여 온 협력업체들이 동반으로 타격을 입고, 체계통합 주관사인 KAI가 추가 이자·부대비용을 떠안는 "전력·기업·협력업체 모두가 힘들어지는 구조"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번 8000억 원 규모의 KF-21 양산 예산 축소는 단순한 연도별 조정이 아니라, 블록2 80대와 차세대 스텔스·엔진 국산화까지 이어질 한국 공군 전력 구조 개편의 기로가 될 전망이다. 특히 노후 전투기 퇴역 시기와 국산 전투기 전력화 시점이 어긋날 경우, 공군이 한 세대 동안 준비해온 '보라매 체제'가 출범 첫 단계에서부터 전력 공백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KF-21 최초 양산 사업과 관련해 현재 다양한 재원 배분 시나리오를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며 "KF-21 도입 일정 순연이나 예산 조정과 관련해서는 아직 확정된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필요할 경우 재정 당국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국방부·공군과도 계속 긴밀히 공조해 KF-21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gomsi@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