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투자사 ISDS 중재 예고...한미 간 통상마찰 이슈로 확전
美투자사 "한국 정부 차별적 대우" ISDS 예고...정부 "차별 없었다" 반박
[서울=뉴스핌] 남라다 기자 = 쿠팡의 모회사인 쿠팡Inc 주가가 20달러선 아래로 추락하며 두 달 새 시가총액이 21조 원 넘게 증발했다.
지난해 11월 말 발생한 사상 초유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 여파다. 특히 미국 대형 투자사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ISDS)' 중재를 예고하면서, 이번 사태가 한미 간 통상 마찰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보유출 후폭풍에 주가 29% 급락…시총 22조원 공중분해
22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쿠팡Inc는 전 거래일 대비 1.43% 하락한 19.95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실이 공식화되기 직전인 지난해 11월 28일 종가(28.16달러)와 비교하면 두 달여 만에 29.1%가 빠진 수치다. 이 기간 시가총액은 514억 달러(약 75조 원)에서 364억 달러(약 53조 원)로 쪼그라들며 약 22조 원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주가 하락의 결정적 도화선은 3370만 건에 달하는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였다. 시장에서는 기업 존립의 근간인 '고객 신뢰'에 금이 간 점을 가장 뼈아픈 요인으로 꼽고 있다. 지난해 말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 겸 대표이사가 공식 사과와 보상안을 발표하며 사태 진화를 꾀했으나, 소비자 불만과 시장의 의구심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난 15일 발표된 1조6850억 원 규모의 쿠팡 보상안은 정보 유출 피해 회원 1인당 5만 원 상당의 구매 이용권을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다만 사용처와 유효기간이 제한된 '자사 플랫폼 전용 이용권'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무늬만 보상'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실제 지급된 5만 원권은 ▲쿠팡 전 상품(5000원) ▲쿠팡이츠(5000원) ▲쿠팡트래블(2만 원) ▲알럭스(명품·2만 원) 등 4가지로 나뉜다.
여기에 대규모 보상 비용과 보안 투자 확대에 따른 마진 압박 우려까지 겹치며 주가는 반등 동력을 잃었다는 분석이다.

◆美 투자사 "韓 정부가 쿠팡 표적 삼아"…ISDS·무역법 301조 동원
주가 폭락이 이어지자 쿠팡의 주요 주주인 미국 투자사들이 '한국 정부 흔들기'로 주가 반등을 꾀하는 모습이다.
쿠팡의 미국 투자사인 그린옥스와 알티미터는 22일(현지시간) "한국 정부가 쿠팡을 표적으로 삼아 불공정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조사 요청서를 제출하고, 한국 정부에는 ISDS 중재 의향서를 보냈다.
현재 쿠팡Inc는 한국 법인 쿠팡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으며, 의결권 70% 이상을 미국 국적인 김범석 의장이 쥐고 있다. 그린옥스의 창립자 닐 메타는 쿠팡Inc의 이사회 멤버이기도 하다.
그린옥스와 알티미터는 한국 정부의 규제로 인해 수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ISDS 중재 의향서는 90일 이후 정식 중재 제기가 가능한 사전 통지 절차다. USTR이 요청을 받아들여 조사에 착수할 경우 이번 사태는 기업 차원을 넘어, 한미 간 통상 마찰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잠재적 보복 조치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 투자사들이 한국 통상 문제를 제기한 근거는 미국 무역법 301조다. 이 조항은 해외 시장에서 미국 기업에 대한 불공정 행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관세 등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USTR은 청원서 접수 후 45일 이내에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한다. 정식 국제중재로 이어질 경우, 천문학적 배상액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 수년 간 이어질 수 있어 정부로서도 부담이 적지 않다.

한국 정부는 이번 사안을 통상 문제로 확대 해석하는 데 선을 긋고 있다. 정부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이 규모와 파급력 측면에서 중대한 사안이며, 조사와 제재는 기업 국적과 무관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하원의원들을 만나 "쿠팡에 대한 차별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쟁점은 쿠팡의 정보유출 책임 규명 ...시민단체 "美 투자사, 주권 침해"
법조계에서는 이번 ISDS 중재 쟁점은 쿠팡의 정보유출에 대한 책임 규명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영기 위더피플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미국 투자사들은 정보유출에 대한 쿠팡의 책임이 크지 않은데, 한국 정부의 차별적 대우에 주가가 급락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며 "정보 유출에 대한 책임이 쿠팡에게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다면 이러한 미국 투자사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되나, 그 반대라면 통상 마찰로 번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이날 논평을 내고 미국 투자자들의 주장과 관련해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참여연대는 "한국 정부의 조항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법 집행"이라며 "이를 외교·통상 압박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주권 침해이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책임을 묻기보다 정부 조치를 문제 삼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쿠팡은 미국 현지 주주들로부터 개인정보 유출 위험 및 내부 통제 미비에 대한 공시 위반 혐의로 여러 건의 집단소송을 당한 상태다.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연방법원에 따르면 쿠팡Inc 주주 조셉 베리는 쿠팡 법인과 김범석 의장, 거라브 아난드 CFO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냈다. 개인정보 유출 위험과 내부 통제 문제를 투자자에게 충분히 공시하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미국 증권법상 '중대한 정보 공시 누락'이 인정될 경우 손해배상 규모는 수천억원대로 불어날 수 있다. 국내 쿠팡 주주들 역시 위더피플 법률사무소를 통해 미국 법원에 집단소송을 제기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한편 쿠팡 측은 "미국 투자사의 ISDS 중재의향서 제출은 당사의 입장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쿠팡은 "모든 정부 조사 요청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nrd@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