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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정치분석] ⑧웨스트민스터 의회 담론과 설득의 질 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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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32년 선거개혁법 통과 과정에서 영국 의회는 1표 차이의 극적인 투표로 근대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했다.
  • 1846년 곡물법 폐지 논쟁을 통해 의회는 지주 이익에서 벗어나 국민 생존이라는 보편적 가치 중심으로 정책 토론을 재편했다.
  • 이 시기 의회는 여당과 야당의 대립 구도 속에서 현대적 내각제와 양당 체제를 완성시켜 영국 의회민주주의의 토대를 확립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한사드 기록으로 본 영국의 내각제도와 양당제의 등장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역사를 기록한 한사드 제2시리즈(1820–1830)와 제3시리즈(1830–1891)는 영국의 역사적인 제도개혁과 제국 팽창이 치열하게 충돌하던 시대의 생생한 기록이다. 이 시기는 역사적 민주화 과정을 연구한 미국 정치학자인 새뮤얼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이 제1 민주화 파도의 시대(1830-1930)로 특징지은 근대 민주화의 여정과 궤를 같이한다.

1832년 선거제도 개혁 논쟁부터 1839년 제1차 아편전쟁 토론, 그리고 1857–1858년의 제2차 아편전쟁 논쟁을 차례로 고찰하면 당시 의회가 국내의 정치적 개혁 과제와 외부의 제국 외교 문제를 어떠한 방식으로 다루었는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영국 한사드(Hansard) [사진 = © UK Parliament (Open Parliament Licence)]

이 시대의 정치사적 요점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의회 제도 내에서 근대적 정당들이 등장하며 선거제도라는 중요한 민주주의 제도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정책 토론의 성격이 인신공격이나 억지, 강압 같은 비논리적 설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 평등, 정의, 주권, 노동권, 생존권 등과 같은 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조세와 민생을 둘러싼 경제 논쟁,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주의자들 사이의 무역 논쟁, 그리고 국익, 실리, 실용을 중시하는 제국주의 외교정책이 국내 정책과 대립하는 구도 속에서 확고히 정착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정책의 향방을 결정하는 차원을 넘어 여당과 야당이 오늘날의 내각(Cabinet)과 그림자 내각(Shadow cabinet)이라는 대립 구도를 형성하며 정부 정책을 심도 있게 토론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영국 특유의 의회 모델을 완성시켰다. 영국이 민주주의의 산실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같은 근대 제도의 태동이 치열한 의회논쟁과 정치적 토론과정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는 1840년대 극심한 기아와 아사를 초래하며 미국으로 대규모 이민을 촉발했던 곡물법(Corn law) 폐지 논쟁 과정에서 새로운 정당들이 태동하고, 현대적 양당 체제가 구축된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사적 변곡점의 시기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 시기의 Hansard 기록은 영국의 정치 지형이 근본적으로 재편되며 현재의 의회민주주의 기틀이 마련된 역사적 증거라 할 수 있다.

1832년 선거법 개정안(Reform Bill)을 두고 격론을 벌이는 영국 하원(House of Commons)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1832년 선거개혁법 논쟁

1830년대 초 영국의 정치 지형은 산업혁명이 불러온 급격한 사회적 팽창과 중세적 유산인 특권적 대의 구조 사이의 불가피한 충돌 앞에 놓여 있었다. 당시 대의제의 모순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는 인구 대비 의석 배분의 심각한 불균형이었다.

약 14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던 맨체스터나 버밍엄 같은 신흥 거대 산업 도시들은 의회 대표가 전무했던 반면, 유권자가 단 7명에 불과했던 올드 세이럼(Old Sarum)이나 마을 대부분이 바다에 잠겨 유권자가 32명뿐이었던 던리치(Dunwich) 같은 부패 선거구(Rotten Borough)는 각각 두 명의 의원을 배출하고 있었다. 이러한 구조적 결함으로 인해 당시 약 1,400만 명의 인구 중 투표권을 가진 시민은 40만 명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이는 의회의 정치적 정당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시대적 과제로 부상했다.

당시 휘그(Whig) 계열의 얼 그레이(Earl Grey) 내각이 개혁의 깃발을 들었을 때, 로버트 필(Robert Peel) 경이 이끄는 토리(Tory) 보수파는 이를 전통적 질서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며 강력히 저항하기 시작했다. 1831년 3월 1일, 휘그당 소속인 존 러셀(John Russell) 경이 하원 회의장에서 개혁 법안을 처음으로 상정하며 본격적인 토론의 서막을 열었을 때, 회의장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격앙되어 있었다.

존 러셀 경은 "의회가 진정으로 국민을 대표해야 하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대표 구조의 개혁은 불가피하다고 역설했고, "하원은 더 이상 하원이 아니며 임명된 자들의 집합소일 뿐이다 (The House of Commons is no longer the House of Commons... it is a house of nominees)"라고 일갈했다. 그의 발언 중간중간에는 지지자들의 열렬한 "옳소!(Hear, hear!)"가 터져 나와 회의장의 열기를 더해 나갔다. 반면 보수파 의원들은 급격한 개혁이 군중 정치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 경고했으며, 한사드 기록에 남은 "웃음(Laughter)"은 상대의 논리를 풍자하거나 과장된 주장에 대한 당시 의원들의 냉소적이고도 격렬한 반응을 그대로 보여준다.

토론이 과열되어 발언이 변질되거나 야유가 번질 때면, 당시 하원의장 찰스 매너스 서턴(Charles Manners-Sutton)은 단호하게 "질서!(Order!)"를 외치며 즉각적으로 개입했다. 의장의 이러한 강력한 제지는 의사진행이 언어적 폭력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는 핵심 수단이었으며, 덕분에 한사드(Hansard) 기록에는 노골적인 욕설이나 모욕적 언어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의장이 즉각적으로 부적절한 표현을 제지하거나 철회를 요구한 이 절차는 논쟁의 강도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논리적 설득 구조 안에 묶어두어 생산적인 토론을 가능하게 하는 디딤돌이 되었다.

선거제도 개혁을 두고 벌인 격렬한 대립의 정점은 1831년 3월 22일 하원 제2독회(Second reading) 투표에서 나타났다. 영국의 의회절차에서 제1독회는 법안의 제목을 낭독하고 인쇄를 허가하는 형식적 절차로 이때는 토론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지만, 제2독회는 법안의 구체적인 문구 수정보다는 법안이 왜 필요한지 혹은 법안이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지와 같은 거대 담론이 다뤄진다. 이 투표에서 가결되어야만 법안이 살아남아 다음 단계(위원회 상정)로 넘어갈 수 있다. 만약 부결되면 법안은 그 즉시 폐기되며, 정부로서는 정책적 실패를 의미하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당시 투표 결과는 찬성 302표 대 반대 301표로, 단 1표 차이라는 영국 의회 역사상 유례없는 극적인 접전을 기록했다. 이 아슬아슬한 승리는 개혁에 대한 시대적 요구와 기득권의 저항이 얼마나 팽팽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비록 이 법안은 이후 상원의 반대와 국왕의 주저함으로 인해 좌초될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1표의 차이로 확인된 대의의 명분은 대중의 분노를 조직화하고 개혁의 동력을 유지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다.

이는 새뮤얼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이 민주화의 제1파도로 명명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례로 평가받으며, 의회가 스스로의 정당성을 재확인한 중대한 변곡점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1846년 6월 26일 곡물법 폐지를 기념하는 포스터 [사진=Online Library of Liberty 홈페이지]

곡물법을 둘러싼 대립과 보수당의 탄생

이 시기 또 하나의 중요한 정책적 대결은 대규모 집회와 의회 내 정치세력들이 보호무역과 곡물법 폐지를 둘러싸고 충돌한 논쟁이다. 1820년대와 1830년대 영국의 곡물법 폐지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관세율 조정을 넘어, 가난과 굶주림이라는 거리의 목소리를 의회라는 제도권으로 수렴하며 현대적 민주주의와 정당 체제의 구축을 재촉하는 기폭제가 되었다는 의의가 있다.

한사드 제2시리즈와 제3시리즈의 기록을 살펴보면, 의회는 단순한 찬반 대결의 장을 넘어 정책 중심의 토론 문화를 정착시키고 국익과 민생을 정의하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한 역사적 공론장이었다.

1826년 5월 보수 토리 출신인 조지 캐닝(George Canning) 의원이 곡물법 논의를 위한 위원회 구성을 제안했을 때, 의회 내부에는 곡물법을 건드리는 것이 거리의 군중에 끌려다닌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레스브리지(T. Lethbridge) 경은 정부가 보세 곡물을 풀어 시장을 구제하려는 방안을 두고 이를 곡물법 체제 전체를 측면바람(side-wind)으로 쓸어버리려는 속임수라 의심하며 지주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고 나섰다.

여기서 측면바람이란 항해 용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배의 진행 방향과 직각으로 부는 옆바람을 의미하는데, 토론의 맥락에서는 정공법이 아닌 우회적이고 편법적인 수단 혹은 교묘한 꼼수를 뜻하는 정치적 은유로 사용되고 있다.

레스브리지가 우려한 사이드 윈드의 진짜 의미는 곡물정책을 정당한 입법 절차와 정면 대결을 통해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보세곡물을 통한 구제정책과 같은 임시방편을 통해 은근슬쩍 기정사실화(fait accompli)하려는 정부의 기만적 전술에 대한 레토릭적 공격이었다. 즉 이때까지만 해도 당시의 초기 논쟁이 지주의 경제적 특권의 옹호, 계급적 정체성과 질서 유지라는 보수적 가치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1827년과 1828년 한사드 기록들은 점차적으로 계급적 분노가 어떻게 서서히 변화되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1827년 존 브리지스(John Brydges) 경이 토지 이익에 대한 모욕에 분노를 표할 때 하원 회의장에서는 일제히 '질서!(Order!)'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이 외침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야유와 고성을 진정시키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사이드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총리였던 로버트 필(Robert Peel)은 곡물법의 해악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수정이 가능한 위원회 단계로 진입하기를 주저하는 의원들을 향해 "도대체 왜 위원회로 들어가지 않는가"라고 일갈하며, 절차를 통해 실질적인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는 현대적 의회 운영의 묘를 제시했다.

1832년 선거개혁법(Reform Act)이 통과된 이후, 한사드(Hansard) 제3시리즈는 의회가 누구를, 그리고 어떻게 대표해야 하는가에 대한 더욱 세밀하고 정교한 언어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특히 1833년 5월 17일의 토론은 공론장의 경계와 의회의 특권이 충돌하는 지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을 담고 있다.

당시 하원의장이었던 찰스 매너스 서턴(Charles Manners-Sutton) 재임 시절, 프랭클린 루이스(Frankland Lewis) 의원은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방청석을 비울 것을 제안했고, 이에 따라 "방청객들이 퇴장당했다(Strangers were excluded)"는 기록이 한사드에 남게 되었다. 의장은 이 사태를 단순히 장내 정리 차원이 아닌 의회의 권위와 연결하며, "만약 어떤 방청객이 (의사 진행 방해의) 죄가 있다면... 그것은 중대한 특권 침해였을 것이다(If any stranger had been guilty… it would have been a high breach of privilege…)"라고 명시하며 공론장의 질서를 세웠다.

이날 토론의 백미는 다니엘 오코넬(Daniel O'Connell) 의원의 발언 중에 터져 나온 야유와 그에 대한 대응이었다. 장내에서 "오, 오!(Oh, oh!)" 하는 야유가 쏟아지자, 오코넬은 이를 피하지 않고 "그런 외침에는 아무런 논거가 없다(There was no argument in those cries)"라고 응수했다. 이 기록은 의회 내의 감정적인 야유조차 논증의 한 과정으로 흡수되었음을 보여주며, 비논리적인 강압이나 소음보다는 정책적 근거와 논리적 설득을 중시하는 영국의 의회 토론 문화가 어떻게 뿌리내리고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진=Wikimedia Commons / Library of Congress (Public Domain)]

1830년대 중반에 이르러 논쟁의 축은 더욱 노골적으로 제조업 인구와 도시의 생존이라는 경제적 실용주의로 이동했다. 1834년의 의원들은 인구 증가와 제조업 확대 수치를 근거로 외국 밀 수입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며, 지주 이익이라는 폐쇄적 가치를 넘어 국가 전체의 생존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토론의 프레임을 전환했다.

1837년 3월의 밤, 클레이(Clay)와 빌리어스(Villiers)가 주도한 반곡물법 청원 논쟁은 이러한 흐름의 정점이었다. 클레이는 자신이 의회의 관례를 지키며 인내해온 질서를 존중하는 정치인임을 강조하며 토론의 중심축으로 잡았고, 빌리어스는 산업과 상업의 이해관계를 자유의 요구로 재정의하며 보수 진영의 추상적인 공포를 구체적인 통계와 논리로 격파했다.

이러한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변화 중 하나는 바로 현대적 의미의 정당 체제가 태동했다는 점이다. 1834년 로버트 필은 탬워스 강령(Tamworth Manifesto)을 통해 과거 토리(Tory)당의 전통적 수구주의를 탈피하고, 변화하는 사회적 요구를 점진적으로 수용하는 보수당(Conservative Party)으로의 재편을 공식화했다. 이는 단순히 당명을 바꾼 것이 아니라, 정당이 구체적인 정책 정강을 내걸고 국민의 지지를 호소하는 현대적 정당 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1846년 1월 22일과 27일, 필 총리는 하원 회의장에서 1845년 11월에 아일랜드에 파견했던 과학위원의 보고서를 인용했다. 1845년 감자 마름병(Potato Blight)이 아일랜드 전역에서 발견되어 조사단을 파견한 것이었다. 조사단은 보고서에서 감자 작물의 1/2에서 5/8가량이 이미 썩었으며, 남은 작물도 안전하지 않다고 경고하고 있다.

필은 의회 연설에서 지방 치안 판사들과 주고받은 서신을 언급하며 실상을 알렸다. 필은 아일랜드에서 식량이 바닥났고, 민란이 일어날 조짐이 보인다는 절박한 서신들을 증거로 제시했다. 필은 자신의 지지 기반인 보수 진영의 거센 반발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준엄하게 물었다.

Can you at this moment, when there is a prospect of a severe pressure upon the means of subsistence in Ireland – can you at this moment maintain the Corn Laws? (아일랜드의 생존 수단이 심각하게 압박받는 이 시점에, 여러분은 진정으로 곡물법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I will not... be responsible for the consequences of maintaining these laws, while I believe that their maintenance would be a cause of great suffering. (이 법을 유지하는 것이 거대한 고통의 원인이 될 것이라 믿는 상황에서, 나는 그 유지로 인해 초래될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을 것입니다.)

필은 수천 명의 아일랜드 시민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지주의 이익을 논하는 것은 의회의 수치라고 선언했다.
필 총리가 제시한 기근의 위협을 정치적 유령(Peel's Bogey)이라 비난하는 야당의 공격에 필은 사망자 수치라는 사후 결과가 아니라, 미래의 재앙을 막아야 할 도덕적 의무임을 강조했다. 그는 사망자가 발생한 뒤에 대처하는 것은 정치가의 수치라며, 불확실한 통계 너머의 실존적 위협을 설득의 도구로 삼았다.

1846년 5월 15일 새벽, 하원 제3독회 표결 결과는 찬성 327표 대 반대 229표로, 로버트 필 총리는 98표라는 압도적 차이로 곡물법 폐지안을 통과시켰다. 그는 15년의 입법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1830년대부터 1845년까지 빌리어스(Villiers) 등 자유무역론자들이 냈던 수많은 곡물법 폐지안은 지주 계급의 압도적 다수 의석에 밀려 번번이 표결에서 참패했지만, 결국 승리할 수 있었다.

이는 오늘날 여당과 야당이 정책 대안을 두고 심도 있게 충돌하는 현대적 의회 정당 정치의 근간이 되었다. 영국의 의회민주주의가 가난, 기아, 아사, 미국 대량이민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고도의 정책 논쟁으로 승화시켜 현대적 의회토론의 틀을 갖추게 되었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유산이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사진=뉴스핌 DB]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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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체코 2-1로 꺾고 첫 승 [서울=뉴스핌] 한지용 기자 =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에 나선 홍명보호가 산뜻하게 출발했다. 복병 체코를 꺾고 조별리그 첫 승을 거뒀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 대표팀은 12일 오전 11시(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에스타디오 아크론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A조 체코전에서 2-1로 승리했다. 한국은 2010 남아공 월드컵 그리스전 2-0 승리 이후 16년 만에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승리했다. 이날 승리한 한국은 멕시코(승점 3)에 골득실 차에 밀린 A조 2위에 자리했다.  [과달라하라 로이터=뉴스핌] 황인범이 12일 오전 11시(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에스타디오 아크론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A조 체코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해 2-1 승리를 이끌었다. 2026.06.12 football1229@newspim.com 홍 감독은 그간 평가전에서 활용했던 3-4-2-1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최전방에는 주장 손흥민(LAFC)이 나섰고, 2선에는 이강인(파리 생제르맹)과 이재성(마인츠)이 배치됐다. 중원은 황인범(페예노르트)과 백승호(버밍엄 시티)가 맡았고, 좌우 윙백으로는 이태석(아우스트리아 빈)과 설영우(즈베즈다)가 출전했다. 스리백은 왼쪽부터 이기혁(강원)-김민재(바이에른 뮌헨)-이한범(미트윌란)으로 구성했으며, 골문은 김승규(도쿄)가 지켰다. 경기 초반 한국은 평균 신장 188cm를 내세운 체코의 압박에 공격 전개를 원활히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강인이 공격 전개에 관여하며 한국이 흐름을 잡기 시작했다. 이강인은 손흥민의 슈팅의 기점 역할을 했고, 김민재의 패스를 받아 직접 강력한 왼발 중거리 슛을 날리며 분위기를 가져왔다. 전반 15분에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수비 왼쪽 지역에서 이기혁의 실수로 공을 빼앗기며 체코에 결정적인 기회를 내줬다. 파트리크 시크(레버쿠젠)에게 슈팅 기회가 연결됐지만, 김민재가 몸을 던져 막아내며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후 체코는 장신 선수들을 활용해 공중볼 공격을 시도했고, 한국은 빠른 전환과 측면 공략으로 맞섰다. 하지만 양 팀 모두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지는 못했다. 전반 막판 손흥민이 슈팅 기회 세 차례를 연거푸 잡으며 상대를 흔들었지만, 골망을 흔들지는 못했다. 전반은 0-0으로 끝났다. 전반 슈팅 숫자는 8-2로 한국이 압도 했다. 후반에도 한국이 주도권을 잡은 채 전개됐다. 후반 4분 황인범이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잘 돌아서서 낮고 강한 슈팅을 때렸다. 골키퍼 맞고 나온 공에 이재성이 쇄도해서 득점을 노렸으나, 체코 수비에 막혔다. 후반 10분에도 결정적인 찬스를 맞았다. 이재성의 원터치 패스를 받은 손흥민이 페널티박스 왼쪽 지역에서 골키퍼와 1대 1 찬스를 맞았으나, 왼발 슈팅이 골키퍼 몸에 걸렸다.  기회를 살리지 못한 한국은 후반 13분, 끝내 상대 세트피스를 막지 못하고 먼저 실점했다. 오른쪽 지역에서 길게 날아온 스로인을 라디슬라프 크레이치(울버햄프턴)가 헤더로 연결했고, 그대로 한국 골망을 흔들었다. 0-1로 뒤진 상황에서 홍 감독은 이재성을 빼고 황희찬(울버햄프턴)을 투입해 득점을 노렸다. 한국은 다시 주도권을 쥔 채 공격을 전개했다. [과달라하라 로이터=뉴스핌] 황인범이 12일 오전 11시(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에스타디오 아크론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A조 체코전에서 동점골을 넣고 있다. 2026.06.12 football1229@newspim.com 후반 22분 황인범이 동점골을 터트렸다. 이강인의 킬패스를 받은 후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왼발로 한 번 접은 후 오른발로 침착하게 마무리하며 1-1을 만들었다.  이후 홍 감독은 손흥민과 이태석을 불러들이고, 오현규(베식타시)와 엄지성(스완지시티)를 투입하며 승부수를 띄었다.  후반 32분 체코가 프리킥 상황에서 한국의 골망을 흔들었으나, 오프사이드가 선언됐다. [과달라하라 로이터=뉴스핌] 오현규가 12일 오전 11시(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에스타디오 아크론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A조 체코전에서 역전골을 넣고 있다. 2026.06.12 football1229@newspim.com 후반 34분 홍 감독의 승부수가 통했다. 백승호가 오른쪽 넓은 지역으로 침투하는 황인범에게 공을 건넸다. 황인범은 페널티 박스 안으로 오현규에게 패스를 건넸다. 오현규가 지체 없이 원 터치 슈팅으로 연결했고, 골키퍼 맞고 들어가며 한국이 2-1 역전에 성공했다.  한국은 중원에서 활약한 황인범과 백승호를 불러들이고, 박진섭(저장)과 김진규(전북)를 투입해 경기를 지켰다. 이후 체코는 높이를 앞세워 동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한국 수비가 잘 막았다. 수문장 김승규가 결정적인 세이브 2차례를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지켰다.  football1229@newspim.com 2026-06-12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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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무인기' 윤석열 징역 30년 선고 [서울=뉴스핌] 박민경 기자 = 12·3 비상계엄 선포 명분을 만들기 위해 평양에 무인기 투입 작전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재판장 이정엽)는 12일 윤 전 대통령의 일반이적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사건 선고 공판을 열어 이 같이 선고했다. 재판부는 함께 재판에 넘겨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각각 징역 30년,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무인기 작전 수행을 지휘한 혐의를 받는 김용대 전 드론작전사령관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12·3 비상계엄 선포 명분을 만들기 위해 평양에 무인기 투입 작전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건군 76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장관의 모습. [사진=뉴스핌 DB] ◆ 재판부 "계엄 명분 위해 北 도발 유도"…일반이적·직권남용 유죄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 등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도발해 비상계엄 선포 명분을 만들 목적으로 2024년 10월께 드론작전사령부에 평양 무인기 투입 작전을 지시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여 전 사령관은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명분과 법적 요건을 마련하기 위해 북한의 무력 도발을 유도하고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 국가 비상상황을 조성하기로 공모한 것으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이들이 이른바 '심리전' 형태의 무인기 투입 작전을 통해 북한을 자극하고 군사적 도발을 유도하려 했으며, 김 전 장관의 지시에 따라 실제 작전이 실행됐다고 봤다. 또 "이 사건 작전은 북한을 자극하고 도발 명분을 제공함으로써 군사적 충돌에 따른 국민과 군의 인명·재산 피해 위험을 발생시켰다"며 "대한민국이 보유한 군사력을 국가안전보장이나 국토방위와 무관한 사적 목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불필요한 군사력 소모를 초래하고 국가의 군사상 이익을 해했다"고 지적했다.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이 작전 지시 과정에서 직권을 남용한 혐의 역시 유죄로 봤다. 재판부는 "군인에 대한 일반적 지휘권을 가진 피고인들이 위법한 작전을 수행하게 했다"라며 "직권을 남용해 순차적인 지시를 통해 군인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측 변호인단은 선고가 끝난뒤 "국가 방위를 위한 군사적 대응을 범죄로 규정하고 이를 이적 행위로 판단한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를 외면한 것"이라며 "특검의 기소와 이번 재판은 대한민국의 안보 역량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상처를 남긴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은 윤 전 대통령 변호인단.[서울=뉴스핌] 박민경 기자= 2026.06.12 pmk1459@newspim.com ◆ 재판부 "계엄 위해 北 도발 유도" vs 尹 측 "군사 대응을 범죄로 규정" 재판부는 양형 이유를 설명하며 윤 전 대통령 등이 일부러 국가 비상사태를 만들려고 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일반이적 범행의 본질은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군사작전이라는 외형을 만들어 북한의 도발을 유도한 데 있다"고 밝혔다. 특히 윤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수호할 책무를 지닌 대통령이 국군통수권과 계엄선포권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고 믿고 이 사건 작전을 승인했다"고 질타했다. 김 전 장관에 대해서는 "국방부 장관 취임 직후부터 비상계엄 상황 조성을 위해 작전을 주도적으로 계획·지시했고, 작전 실행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범행까지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기밀 사항을 다룬다는 이유로 그동안 공판이 모두 비공개로 진행됐다. 윤 전 대통령측 변호인단은 선고가 끝난 뒤 "국가 방위를 위한 군사적 대응을 범죄로 규정하고 이를 이적 행위로 판단한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를 외면한 것"이라며 "특검의 기소와 이번 재판은 대한민국의 안보 역량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상처를 남긴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 책임과 평가는 결국 역사의 엄정한 심판 앞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은 지난 결심 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징역 30년, 김 전 장관에게 징역 25년, 여 전 사령관에게 징역 20년, 김 전 사령관에게 징역 5년을 각각 구형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 등이 단순 군사작전이라는 목적을 넘어 비상계엄 여건 조성을 위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무인기 침투를 지시했고, 평양에 무인기가 추락해 군사적으로도 해를 끼쳤다고 봤다.  pmk1459@newspim.com 2026-06-12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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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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