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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정치분석] ⑥민주주의 의회 토론의 산실, 영국 웨스트민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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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의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회로 평가된다. 그 기원은 1215년 러니미드에서 체결된 마그나 카르타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상 63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문서에는 왕의 과세와 구금 권한을 제한하는 내용과 함께 25명의 남작이 합의 이행을 감시하도록 하는 보증 장치가 포함되어 있었다. 권력은 무제한적 권위가 아니라 조건부 권위로 정의되었다. 대립하던 두 세력 간의 계약은 이후 의회 발전의 토대가 된다.

그러나 이 원칙이 곧바로 안정된 정치 질서를 낳은 것은 아니었다. 17세기 초 찰스 1세는 의회의 동의 없이 세금을 부과하고, 의회를 해산하며, 왕권 중심 통치를 시도했다. 1628년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을 수용하고도 이를 실질적으로 무력화하려 했던 행보는 의회와의 신뢰를 훼손했다. 갈등은 결국 내전으로 이어졌고, 1649년 찰스 1세는 재판을 거쳐 처형된다.

현직 국왕이 법정 판결에 의해 단두대에 오른 사건은 유럽 정치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웠다.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가 이 사건을 목격하며 출판한 '리바이던(Leviathan, 1651)'에서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강한 군주제를 옹호한 것이 우연이 아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권력 투쟁의 결과가 아니었다. 의회와의 협약을 반복적으로 무시한 결과, 왕권의 정당성이 붕괴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1660년 왕정복고 이후에도 긴장은 지속되었지만, 1688년 명예혁명은 국왕과 의회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했다. 권리장전(Bill of Rights, 1689)은 국왕이 의회의 동의 없이 법을 정지하거나 세금을 부과할 수 없음을 명문화했다. 이 시기에 토리(Tory)와 휘그(Whig)라는 정치적 집단이 초기 정당 형태를 띠며 각자의 정치 세력을 형성했고, 반대는 반역이 아니라 제도적 역할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진=Wikimedia Commons / Library of Congress (Public Domain)]

영국식 의회 토론 제도의 성장

조지 1세가 1714년 즉위했을 때, 영국은 이미 1688년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을 거치며 왕권과 의회의 관계를 재정립한 상태였다. 그러나 하노버 왕조의 출범은 또 다른 변화를 촉발했다. 새 국왕은 독일 출신이었고 영어에 능숙하지 않았다. 그는 국내 정당 정치의 세부에 깊이 개입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국정 운영의 중심은 의회 다수파와 그 지도자들에게로 이동했다. 왕이 직접 정치를 통제하던 구조는 점차 내각 중심 체제로 바뀌었고, 의회 안에서 다수의 지지를 확보한 인물이 정부를 이끄는 관행이 강화되었다. 권력은 여전히 군사력과 왕권이라는 상징을 지녔지만, 실제 정책 결정의 무게는 토론과 표결의 장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이 시기 로버트 월폴(Robert Walpole)은 흔히 영국 정치사에서 '최초의 총리'로 불린다. 추밀원 위원(Privy Councillor)이기도 했던 그에게 The Right Honourable Sir Robert Walpole이라는 타이틀이 붙기 시작했다. 월폴은 1721년 이후 21년간 정부를 이끌며 사실상 최초의 총리로 평가받지만, 당시에는 "Prime Minister"라는 공식 직함이 제도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정치 방식은 의회 다수의 지지를 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는 공개 토론을 피하지 않았고, 세금과 재정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설득과 타협을 통해 지지를 모았다. 웨스트민스터는 점점 더 단순한 입법 기관이 아니라, 정책을 설명하고 반대 의견을 조정하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권력의 정당성은 점차 무력 충돌이 아니라 토론을 통과한 표결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18세기 후반 미국 독립전쟁이라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1776년 7월 4일, 북아메리카 13개 식민지는 독립을 선언하며 영국에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영국 의회 내부의 논쟁은 7년 전쟁(1756-1763) 이후 이미 시작되었다. 전쟁 이후 약화된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제기된 영 식민지 세금 부과 권한, 식민지 대표권, 군사적 대응의 범위를 둘러싸고 하원은 분열되어 있었다. 일부 의원들은 식민지의 반발을 단호하게 제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이들은 과도한 세금과 강경 조치가 오히려 제국을 분열시킨다고 비판했다.

당시 야당 소속이었던 찰스 제임스 폭스(Charles James Fox)는 북미 식민지 정책을 비판한 대표적 인물이었다. 1770년대 후반 의회 토론 기록(Cobbett's Parliamentary History, vol. XIX 등)에 따르면 그는 정부의 조치가 "영국의 자유의 원칙에 배치된다"고 주장하며, 무력에 의존한 통치는 식민지를 더욱 멀어지게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는 전쟁의 확대가 재정 부담을 심화시키고, 장기적으로 국가 신용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었다.

이에 맞서 윌리엄 핏 주니어(William Pitt the Younger)는 국가 재정과 전략적 이해를 중심에 두고 논리를 전개했다. 그는 의회에서 영국의 공공신용(public credit) 유지와 해군력 강화가 국제적 위상을 유지하는 핵심 조건임을 강조하였다. 이 논쟁은 단순한 전쟁 수행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의 정체성과 재정 운영의 원칙을 둘러싼 정책 철학의 충돌로 전개되었다.

당시 기록은 오늘날의 완전 속기록과 달리 편집적 성격을 지니지만, 발언 중간에 'Hear him!' 혹은 'No!'와 같은 반응 표기가 등장하는 장면도 확인된다. 이는 논쟁이 단순한 독백이 아니라 즉각적인 반응 속에서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다만 18세기 기록은 현대 Hansard와 달리 회의장 분위기를 체계적으로 서술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토론은 공개된 절차 속에서 이루어졌고, 정책의 방향은 결국 표결을 통해 결정되었다.

이 시기 논쟁은 영국 정치 문화에 장기적 영향을 남겼다. 미국 독립을 막지 못했지만, 의회는 전쟁의 경과와 재정 문제를 지속적으로 점검했다. 전쟁 수행의 실패는 정부 교체로 이어졌고, 정책 책임은 공개적으로 논의되었다. 이는 웨스트민스터 모델의 핵심 원리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권력은 여전히 군사적 수단을 동원했지만, 그 정당성은 의회의 토론과 표결을 통해 확인되어야 했다.

폭스와 핏의 대립은 이후 영국 정당 정치의 형식에도 영향을 주었다. 정부와 야당이 단순히 반대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국가 운영 철학을 경쟁적으로 제시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재정, 외교, 제국 문제는 개인의 충성심이나 왕의 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의회 안에서 논증과 반론을 거쳐 결정되는 사안이 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훗날 그림자 내각 제도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정부–야당의 정책 경쟁을 제도화하는 기반이 되었다.

영국 한사드(Hansard) [사진=© UK Parliament (Open Parliament Licence)]

한사드, 영국 의회 토론의 기록

오늘날 우리는 Hansard라는 방대한 속기록을 통해 수 세기의 영국 의회 토론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초기 의회 토론은 공개 기록의 대상이 아니었다. 17세기와 18세기 초반까지 의회 토론은 사실상 국가 비밀이었다. 의원들이 발언한 내용은 공식적으로 출판이 금지되었고, 이를 보도하는 것은 특권 침해로 간주되었다. 의회는 외부의 간섭 없이 토론할 권리를 보호하려 했기 때문에 국가의 비밀로 보호했다.

18세기 초, 일부 인쇄업자와 언론인들이 의회 토론을 간접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종종 가명을 사용하거나 "가상의 토론" 형식으로 내용을 전달했다. 당시 인쇄업을 운영한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조차 의회 토론을 문학적 재구성 형태로 작성한 적이 있다. 이는 공식 기록이 아니라 비공식적 재현이었다.

당시의 의회는 기록을 남기기보다 자율성을 유지하는 데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중반 인쇄 기술과 신문의 발전은 상황을 바꾸었다. 대중은 의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어 했고, 언론은 이를 보도하려 했다. 초기에는 가명이나 우회적 표현을 사용해 의회 토론을 재구성하는 방식이 등장했다.

1771년 런던의 인쇄업자와 의회 사이에서 벌어진 충돌은 전환점이 되었다. 의회가 언론 보도를 강하게 제지하려 하자, 여론은 오히려 기록 공개를 요구했다. 결국 의회는 토론 보도를 사실상 묵인하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이는 공개 기록 문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Hansard라는 이름은 19세기 초 Thomas Curson Hansard라는 인쇄업자에서 유래한다. 그는 1803년부터 의회 토론을 체계적으로 수집해 출판하기 시작했다. 이 초기 Hansard는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공식 속기록과는 달랐다. 발언은 완전한 속기라기보다 편집과 요약을 거친 형태였고, 정부 기관이 아니라 민간 출판사가 발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ansard는 점차 의회 토론의 사실상 표준 기록으로 자리 잡았다. 의회는 이를 공식적으로 승인하지는 않았지만, 점차 이 기록에 의존하게 되었다.

Hansard는 여러 시리즈로 구분된다. 1803년부터 시작된 First Series(1803-1820)를 시작으로, Second Series(1820-1830), Third Series(1830-1891), Fourth Series(1892-1908)를 거쳐 1909년부터는 현재까지 기록된 Fifth Series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리즈 구분은 단순한 연대 구획이 아니라, 기록 체계와 제도적 위상의 변화를 반영한다. 특히 1909년부터는 'Official Report'로서 정부가 출판을 맡으며 현대적 의미의 공식 속기록으로 자리 잡았고, 이때부터 상·하원 기록이 분리되는 전환도 함께 진행된다.

19세기 영국 의회 논의 내용이 인쇄된 한사드(Hansard) 회의록 [사진=Wikimedia Commons / Hansard Parliamentary Debates Archive (Public Domain)]

19세기 Third Series는 연구 측면에서 특히 중요한 시기로 간주된다. 산업혁명, 선거개혁, 곡물법 폐지, 아일랜드 문제, 제국 팽창, 두 차례의 아편전쟁 등 근대 영국 정치의 핵심 논쟁이 이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이 시기의 Hansard는 아직 완전 속기록은 아니지만, 발언의 재현 수준은 상당히 높다. 로버트 필(Robert Peel)의 곡물법 폐지 연설, 팔머스턴의 외교정책 방어, 글래드스톤과 디즈레일리의 재정 논쟁 등은 모두 이 기록 속에 남아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정치인들이 어떤 논증 구조를 사용했는지, 반론이 어떻게 제시되었는지를 분석할 수 있다.

Fourth Series와 Fifth Series로 넘어가면서 기록의 정밀도는 더욱 높아진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 논쟁,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의 불신임 토론, 수에즈 위기, 유럽 통합 논쟁, 브렉시트에 이르기까지 주요 역사적 순간들이 Hansard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특히 20세기 이후의 기록은 발언자의 이름, 직함, 발언 전문, 의장의 개입, 청중 반응, 표결 결과까지 체계적으로 남긴다. 이는 단순한 정치 기록을 넘어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을 분석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Hansard의 구조적 특징은 민주주의 연구에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발언의 길이와 논증 구조, 반론의 존재 여부, 상대를 지칭하는 언어, 의장의 질서 개입 빈도 등은 모두 토론의 질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속기록이 괄호 안 분위기 묘사를 통해 언어적 붕괴를 드러냈다면, Hansard는 발언의 구조 자체를 통해 설득의 지속성을 보여준다. 기록이 남는다는 사실은 정치인에게 설명의 의무를 부과하고, 반대 의견을 역사 속에 보존한다.

Hansard는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 정치의 기반이다. 정치인은 자신의 발언이 영구적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알고 발언한다. 반대파의 주장은 삭제되지 않고, 다수결에 의해 패배하더라도 기록 속에 보존된다. 이 기록은 후대의 평가와 비교를 가능하게 하며, 민주주의의 언어 규범을 축적한다. 또한 Hansard는 공개성의 상징이다. 의회 토론이 비밀에서 출발해 공개 기록으로 제도화되었다는 사실은 민주주의가 단지 선거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말은 기록되고, 기록은 책임을 낳는다. 기록은 갈등을 투명하게 만들고, 투명성은 제도적 신뢰를 강화한다.

오늘날 디지털 Hansard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 특정 날짜의 토론, 특정 의원의 발언, 특정 정책 논쟁을 손쉽게 검색할 수 있다. 이는 의회가 더 이상 폐쇄적 공간이 아니라 공적 토론의 장임을 의미한다. 동시에 일정 기준으로 추출해낸 코퍼스(corpus) 자료는 설득 구조와 민주주의 건강성을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Hansard의 역사는 곧 민주주의 언어의 제도화 과정으로 간주된다. 처음에는 기록이 금기였으나, 이후 비공식 기록이 등장했으며, 마침내 공식 속기록으로 자리 잡았다. 이 발전 과정은 의회가 자신이 하는 말을 역사 앞에 남기겠다는 선택을 했음을 의미한다. 그 선택이야말로 웨스트민스터 모델의 지속성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다.

Hansard 1차 시리즈(1803–1820)는 나폴레옹 전쟁기와 전후 재정 및 국가 운영의 문제들이 겹친 시기다. 2차 시리즈(1820–1830)는 선거권과 종교·시민권 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커진 시기다. 가령 1829년 가톨릭 해방법(Catholic Emancipation) 같은 쟁점은 국가 정체성과 권리 확대가 충돌하는 토론을 촉발했고, 토론은 더 대중적 관심을 받게 된다. 3차 시리즈(1830–1891)는 웨스트민스터 토론의 성숙을 논할 때 핵심 창고에 해당한다.

산업혁명, 선거개혁, 자유무역 전환, 제국 확장, 아일랜드 문제 등 근대 영국의 가장 격렬한 정책 충돌이 이 시기에 집중돼 있고, 그만큼 설득의 기술과 인식적 편향, 논리적 오류가 함께 드러난다. 4차 시리즈(1892–1908)는 제국주의 경쟁과 사회개혁 논쟁, 노동 정치의 부상이 겹치는 시기다. 설득의 기술은 더 세련되어지지만, 그만큼 대중 동원형 언어와 계급적 도식도 함께 유입된다. 토론의 논점이 복잡해지는 만큼, 상대를 단순한 유형으로 환원하는 인식적 편향이 작동하는 장면도 늘어난다. 동시에 의장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기록은 오늘날의 완전 속기와는 거리가 있고 편집적 성격이 강하지만, 이미 정책 선택의 근거를 설명하고 반론에 답하는 의회적 화법이 핵심 장르로 자리 잡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디지털 아카이브는 1차 시리즈가 1803년 11월 개시되어 1820년 2월까지 이어진다고 명시하고, 각 권마다 개시·종료 날짜를 붙여 토론이 '연속된 공적 기록'으로 정리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 시기 설득의 질은 종종 계급적 전제와 제국적 편향을 내포했지만, 결정의 정당성을 명백한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는 규범이 정치의 언어로 자리 잡는 단계였다고 말할 수 있다. 5차 시리즈(1909–하원 기준 1981)는 Hansard가 'Official Report'로 제도화된 뒤의 시대다. 즉, 기록의 정밀도와 공적 책임성이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높아진다.

앞으로 네 번에 걸쳐 영국 의회 토론의 특징, 그리고 세계 의회 민주주의의 모델을 구축한 캐비닛(Cabinet)-그림자 캐비닛(Shadow Cabinet)의 발전 과정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사진=뉴스핌 DB]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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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웨스팅하우스 지분투자 추진 [서울=뉴스핌] 이나영 기자 설희 인턴기자= 정부가 미국 내 대형 원전 건설과 미국 원전 원천기술 기업 '웨스팅하우스' 지분 투자를 대미 전략투자 후속 사업으로 추진하면서 국내 원전 상장사의 실제 사업 참여 범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웨스팅하우스 지분율과 신규 원전 노형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만큼 시장에서는 지분 투자 자체보다 국내 업체가 설계와 설계·조달·시공(EPC), 주기기와 보조기기에서 얼마나 구체적인 사업권을 확보하는지가 향후 수주를 가를 변수로 꼽힌다. ◆ 지분보다 사업권…韓 역할 명문화 관건 23일 산업통상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정부는 미국 내 대형 원전 8기 건설을 후속 대미 투자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다. 웨스팅하우스 지분은 미국 측과 5~10% 수준에서 협상 중이다. 미국 신규 원전 8기 가운데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6기와 한국이 개발한 APR1400 2기로 구성하는 방안은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 [AI 일러스트=설희 기자] 증권가에서는 지분율 자체보다 향후 미국 원전 사업에서 국내 기업이 실제로 확보할 사업 범위를 핵심 변수로 보고 있다. 특히 AP1000 사업에서는 과거 공급 이력과 웨스팅하우스와의 기존 협력관계가 신규 수주로 이어지는지가 상장사별 실적을 가를 요인으로 거론된다. 기업별로는 두산에너빌리티가 AP1000 핵심 주기기 공급 실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비에이치아이도 원전 보조기기(BOP) 공급 이력을 갖고 있다. 현대건설은 웨스팅하우스와 설계·조달·시공(EPC)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어 향후 미국 원전 사업 구체화 과정에서 실제 수주로 연결될 가능성이 주목된다. 장문준 KB증권 연구원은 "올해 하반기~2027년이 원전투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구간"이라고 평가했다. 장 연구원은 미국 에너지부의 공급망 금융지원과 한국의 대미 원전 투자 구체화가 맞물리면서 미국 원전 관련 프로젝트의 진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 두산에너빌리티, 美 AP1000 주기기 공급…추가 물량 기대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 AP1000 공급망에서 직접적인 납품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보글과 V.C.서머 AP1000에 원자로용기와 증기발생기를 공급한 경험이 있어 신규 미국 원전 사업에서도 기존 공급망을 기반으로 한 추가 수주 가능성이 거론된다. 김태형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한국전력의 웨스팅하우스 인수 시 AP1000 사업에서도 원자로용기(RV)·증기발생기(SG) 외 추가 공급 범위(Scope) 발주를 기대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대미투자 자금 집행에 따라 공기 단축 위해 동사가 생산하는 장납기 품목에 대해 선발주를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 본사 전경. [사진=두산에너빌리티] 원자로용기와 증기발생기는 제작기간이 긴 핵심 주기기다. 미래에셋증권은 대미 원전 투자 과정에서 기존 원자로용기와 증기발생기뿐 아니라 추가 기자재까지 두산에너빌리티의 공급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정혜정 KB증권 연구원도 미국 에너지부(DOE)의 금융지원으로 장납기 기자재 발주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고 봤다. 정 연구원은 "지난 6월 DOE가 발표한 장납기 기자재 조달 대출 프로그램에 따라 최종투자결정(FID) 이전 주요 기자재 발주가 가능해졌다"며 "AP1000 핵심 장납기 기자재 공급업체인 두산에너빌리티의 수주가 당겨지면서 원전 기자재 생산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특히 KB증권은 향후 가장 먼저 나올 대형원전 기자재 발주 대상으로 웨스팅하우스와 미국 전력사업자가 구성하는 특수목적법인(SPV)의 장납기 기자재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증권가에서는 미국 신규 원전 사업이 구체화될 경우 두산에너빌리티가 다른 원전 밸류체인 업체보다 먼저 수주를 가시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현대건설, 웨스팅과 EPC 협력…美 사업 확대 기대 현대건설은 기자재가 아닌 EPC 분야에서 웨스팅하우스와 직접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 2022년 웨스팅하우스와 AP1000 글로벌 사업 공동 참여를 위한 전략적 협약을 체결하고 향후 프로젝트별 계약을 통해 EPC 분야 우선 참여 협상권을 확보했다. 이후 웨스팅하우스와의 협력은 실제 해외 프로젝트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건설은 2024년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설계계약을 시작으로 슬로베니아 원전 타당성조사, 핀란드 원전 사전업무착수 계약에 참여했으며 미국 페르미 아메리카의 프로젝트 매터도어에서는 기본설계(FEED)를 수행하고 있다. 현대건설과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공동으로 글로벌 확대 추진 중인 대형원전 AP1000 조감도. [사진=현대건설] 증권가에서는 이 같은 파트너십을 현대건설의 미국 원전 진출 경쟁력으로 평가한다. 장문준 KB증권 연구원은 "웨스팅하우스 노형의 경우 벡텔과 함께 핵심 건설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머지않아 원전 영역에서 실질적 수주와 착공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망했다. 배세호 iM증권 연구원은 "미국 에너지부(DOE)의 금융 지원, 웨스팅하우스와 잠재적 파트너들과의 의향서(LOI), 그리고 한국의 대미투자 가능성 등을 감안 시 미국 내 원전 프로젝트가 조만간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 경우 현대건설의 미국 원전 프로젝트 참여 가시성도 보다 분명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김도엽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대형원전은 팀코리아 및 웨스팅하우스 파이프라인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며 "불가리아 AP1000 대형원전은 하반기 중 엔지니어링 서비스 계약(ESC) 2차 계약 체결이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 BHI, 美 AP1000 복수기 공급…BOP 수주 주목 비에이치아이도 미국 AP1000 공급 실적을 갖고 있다. 비에이치아이는 발전용 설비를 설계·제작하는 에너지 인프라 기업으로, 주력 제품인 배열회수보일러(HRSG)와 함께 원자력발전 보조기기(BOP)를 공급하고 있다. 미국 보글과 V.C.서머 AP1000에는 복수기를 공급한 이력이 있다. 원전 BOP는 아직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리딩투자증권이 제시한 올해 2분기 기준 매출 구성은 HRSG가 65%로 가장 높고 보일러 22%, BOP 5%, 기타 8% 순이다. 미국 신규 원전 발주가 본격화될 경우 현재 비중이 낮은 BOP 사업이 추가 성장 축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주목된다. 비에이치아이 로고. [사진=비에이치아이] 한제윤 리딩투자증권 연구원은 비에이치아이의 수주 흐름과 관련해 "연간 신규 수주는 올해도 1조원을 상회할 전망이다"고 분석했다. 올해 상반기 HRSG 신규 수주는 약 5000억원이며, 하반기에도 약 4000억원 이상의 프로젝트가 수주 대기 중인 것으로 추산했다. 한 연구원은 미국 텍사스에서 추진되는 대미 투자 1호 가스복합화력발전 사업과 관련해서도 비에이치아이의 직접적인 수혜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HRSG 8~10기 발주를 가정할 경우 잠재 수주 규모를 약 4000억~5000억원으로 추정했으며 과거 미국 칼파인(Calpine)에 HRSG를 공급한 이력이 있다는 점도 수혜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제시했다. 조재원 키움증권 연구원도 대미 투자에 따른 미국 사업 확대 가능성에 주목했다. 조 연구원은 "미국 시장 진입이 현실화될 경우, 추가적인 멀티플 확장을 기대한다"며 비에이치아이가 미국 사업에 진입할 경우 기존 국내와 아시아 중심의 사업 지역을 북미로 확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winter1004@newspim.com 2026-09-23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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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은, 女공기권총 10m 금메달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한국 사격의 에이스 추가은(임실군청)이 눈부신 총성을 울리며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에 일곱 번째 금메달을 선사했다. 한국 사격이 거둔 첫 번째 금메달이다. 세계랭킹 23위 추가은은 일본 도요타시 아이치 종합사격장에서 열린 여자 10m 공기권총 개인전 결선에서 246.3점을 쏴 셴이야오(중국)를 무려 5.0점 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추가은은 고니시 유카리가 2017년 세운 결선 아시아 기록(245.3점)과 팔락(인도)이 항저우 대회에서 세운 아시안게임 기록(242.1점)을 모두 갈아치우는 기력을 발휘했다. 조라나 아루노비치가 세운 세계기록(246.9점)에도 불과 0.6점 모자란 엄청난 기록이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추가은. [사진=대한사격연맹] 2026.09.23 psoq1337@newspim.com 앞서 열린 본선에서도 추가은의 활약은 빛났다. 추가은은 582점(엑스텐 19개)을 기록해 종전 아시안게임 본선 기록을 1점 경신하며 전체 1위로 결선에 올랐다. 김보미(부산시청), 오예진(IBK기업은행)과 함께 나선 단체전에서도 1,730점을 합작해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이 이 종목 단체전에서 메달을 획득한 것은 2010년 광저우 대회 이후 16년 만이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추가은. [사진=대한사격연맹] 2026.09.23 psoq1337@newspim.com 다만 김보미와 오예진은 각각 574점(엑스텐 22개, 20개)으로 10위와 12위를 기록해 8위까지 주어지는 결선행 티켓을 아쉽게 놓쳤다. 두 선수 모두 8위와 1점 차에 불과해 아쉬움을 삼켰다. 홀로 결선 무대에 선 추가은은 흔들림 없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결선 첫 번째 스테이지 첫 발을 10.1점으로 기분 좋게 출발한 그는 네 발을 모두 10점대 언저리에 맞추며 51.8점으로 단숨에 선두에 올랐다. 두 번째 시리즈 초반 주춤하기도 했으나 10.3점으로 마무리하며 청연칭, 셴이야오, 장란신 등을 제치고 1위를 굳건히 지켰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추가은. [사진=대한사격연맹] 2026.09.23 psoq1337@newspim.com 본격적으로 한 명씩 탈락하는 엘리미네이션 스테이지에 접어들면서 추가은의 독주가 시작됐다. 10.1점과 10.7점을 연달아 꽂아 넣은 뒤, 두 번째 시리즈에서는 10.8점과 10.7점에 적중하며 143.9점을 기록해 2위 셴이야오와의 격차를 벌렸다. 세 번째 시리즈가 끝난 뒤 격차는 더욱 벌어졌고, 다른 선수들이 실수를 연발하는 사이 추가은은 더욱 달아났다. 셴이야오에 4.1점 앞선 상황에서 맞이한 마지막 시리즈에서도 10.6점과 9.8점에 적중하며 완벽하게 우승을 확정 지었다. psoq1337@newspim.com 2026-09-2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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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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