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피해자 2차 피해 막아야" vs "피고인 방어권 침해"
2021년 미성년 피해자 조항엔 위헌…장애인 조항은 다른 결론
[서울=뉴스핌] 김영은 기자 =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의 영상 진술만으로도 유죄 증거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한 특례법 조항이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26일 오후 선고기일을 열고 부산고법 울산재판부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0조 제6항에 위헌 소지가 있다'며 제청한 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4(합헌) 대 5(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법상 법률의 위헌 결정을 위해선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0조 제6항은 신체·정신적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을 촬영한 영상물에 대한 내용이다. 해당 조항은 조사 과정에 동석한 신뢰관계인이나 진술 조력인이 그 내용이 실제 진술과 같다고 확인하면 재판 증거로 인정하도록 규정한다.
이는 피고인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다투더라도 피해자가 직접 법정에 출석해 반대신문을 받지 않아도, 해당 영상물만으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특례 조항이다.
부산고법 울산재판부는 13세 미만 지적장애 3급 미성년자 A씨를 추행·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B씨의 2심 사건을 심리하던 중,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1심 단계에서 피고인 B씨는 피해자 진술 녹화물을 증거로 채택하는 것을 부동의했는데, 1심 법원은 성폭력처벌특례법상 해당 조항을 근거로 A씨를 증인으로 부르지 않은 채 영상물을 유죄의 증거로 인정했다.
이에 B씨는 항소했고, 2심 재판부인 부산고법은 B씨 측 신청을 받아들여 2023년 8월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성폭력 사건의 특성상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법정에서 다툴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헌법상 방어권 보장에 반한다는 취지다.
당시 부산고법 재판부는 "해당 조항이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않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밝혔다.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 4인(김형두·조한창·정계선·마은형)은 해당 조항이 장애인 피해자 보호와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정당한 목적을 가진다고 판단했다. 장애인 피해자가 법정에서 겪을 수 있는 심리적 위축과 2차 피해를 줄이고, 의사소통의 한계로 인한 진술 왜곡 가능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한다는 평가다.
이들은 "성폭력 범죄 피해자는 법정 진술 과정에서 심리적 위축과 정신적 고통을 겪을 수 있다"며 "특히 의사결정능력이 미약한 장애인 피해자는 인지 및 의사소통의 제약으로 인해 더 큰 부담과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아울러 "반대신문은 진술의 신빙성을 검증하기 위한 절차이지만, 장애인 피해자에게 이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오히려 기억이 왜곡되거나 극도의 위축 상태가 초래되어 진술의 정확성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며 "절차의 공정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 5인(김상환·정정미·정형식·김복형·오영준)은 이 조항이 장애인 피해자의 진술이라는 이유만으로 반대신문 기회를 일률적으로 배제해 피고인의 방어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또 영상 진술은 수사기관 주도로 형성된 전문증거로 오류 가능성이 있고, 사후 검토만으로는 진술의 미묘한 변화나 상호작용을 충분히 포착하기 어렵다고도 봤다.
이들은 "반대신문권은 피고인이 진술 형성 과정에 참여해 다툴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형사절차의 공정성·정당성을 확보하는 기능을 가진다"며 "이를 전면 배제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형해화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들은 "영상 진술은 수사기관 질문과 피해자의 일방적 진술로 구성된 전문 증거로 정확성에 오류가 개입될 가능성이 있다"며 "사후적 검토만으로는 진술의 미묘한 변화나 상호작용을 충분히 포착하기 어렵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한편, 헌재는 2021년 12월 19세 미만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 영상물에 대해 신뢰관계인의 진술만으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번 결정은 헌재가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영상 진술에 대해 위헌 판단을 내린 것과 달리, 장애인 피해자에 대해서는 합헌 판단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yek105@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