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이준익 감독이 9일 개봉작을 선보였다
- 아버지의 집밥은 요리백지증 아내와 남편 이야기다
- 세로형 화면으로 가족의 감정을 깊게 비췄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낯선 세로형 화면...배우 감정은 더 가까이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너가 여행 가면 내 밥은 누가 차려주노?"
어머니와 이모가 함께하는 여행을 계획하던 한 한의사는 이모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여행을 가려 하자 남편이 자신의 밥은 누가 차려주느냐고 해 선뜻 집을 비우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이준익 감독의 첫 세로형 시네마 '아버지의 집밥'을 보고 난 뒤 문득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평생 아내가 차려준 밥을 당연하게 여기던 아버지가 처음 부엌에 들어서는 모습이 현실의 풍경과 묘하게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오는 9일 개봉하는 '아버지의 집밥'은 고리타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평생 부엌 근처에 가본 적 없는 아버지 하응(정진영)이 아내 순애(이정은)가 요리를 하지 못하는 '요리백지증'에 걸리자 생애 처음 요리에 도전하는 가족 드라마다.
극의 중심은 하응과 순애다. 하응에게 아내가 차려주는 삼시세끼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순애 역시 남편의 재촉에 익숙한 듯 매일 가족의 밥상을 책임진다. 그러나 순애가 더 이상 요리를 할 수 없게 되면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두 사람의 일상은 뒤집힌다.
음식의 '음'자도 모르던 하응은 이제 직접 하루 세끼를 책임져야 한다. 서툴게 한 끼씩 차리는 과정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작품은 단순한 요리 도전기에 머물지 않는다. 하응은 직접 밥상을 차리면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아내의 수고와 미처 보지 못했던 모습을 조금씩 발견한다.

이 대목들이 유독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친척집에 놀러 갔을 때 남성들은 앉아 밥상을 기다리고, 어머니를 비롯한 여성들이 분주히 상을 차리던 모습을 종종 봐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달라진 집도 많겠지만 부모 세대로 시선을 돌리면 '아버지의 집밥' 속 풍경이 여전히 낯설지 않은 가정도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자녀들의 이야기도 중간중간 더해진다. 다만 극의 중심이 자녀들에게 넘어가지는 않는다. 부모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태도를 통해 하응과 순애가 어떤 부부이자 부모였는지를 다시 비춰보고, 세대에 따라 달라진 가족과 가사에 대한 인식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이처럼 부부와 자녀의 이야기를 오가면서도 전체 흐름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숏드라마 형식으로 여러 개의 짧은 에피소드가 이어지지만 이를 억지로 붙였다는 느낌은 크지 않다. 자극적인 사건이나 반전을 연이어 던지기보다 하응과 순애의 관계가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에 시간을 쓴다.
내용만큼 눈에 띄는 것은 세로형이라는 형식이다. 처음 극장에서 마주하면 다소 생경하다. 익숙한 가로 화면과 달리 좁고 긴 프레임이 대형 스크린 한가운데 놓이니 쉽게 적응되지 않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배경보다 인물의 얼굴과 표정에 시선이 모이고 배우들의 감정은 한층 가까이 다가온다.
이준익 감독 역시 기자간담회에서 가로 그림을 풍경화에, 세로 그림을 인물화와 초상화에 빗댔다. 그는 세로형 화면에 대해 인물 하나하나를 초상화처럼 바라보며 "한 인간의 내면을 아주 깊숙이 엿보는 듯한"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작품에서도 이 감독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 있다. 특히 순애의 감정이 깊어지는 장면에서 이정은의 표정과 눈빛이 세로 프레임을 채울 때다. 구체적인 상황을 밝히지 않더라도 오랜 시간 쌓여온 순애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정은의 연기는 마음을 건드린다. 세로형 화면이 배우의 감정을 가까이 붙잡는다는 장점이 효과적으로 살아나는 순간이다.
배우들의 합도 작품을 지탱한다. 하응 역의 정진영은 어딘가에 실제로 있을 법한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권위적인 모습에서는 답답함을 주다가도 난생처음 마주한 요리 앞에서 허둥대는 모습으로 웃음을 만든다. 이정은은 오랜 세월 가족의 밥상을 책임져온 순애의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풀어내며 웃음과 뭉클함을 오간다.
변요한을 비롯한 가족 구성원들의 연기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젊은 시절 하응과 순애를 연기한 배우들과 아역까지 어느 한쪽이 튀기보다 한 가족이 살아온 시간을 연결하는 데 힘을 보탠다.
물론 세로형 화면을 긴 시간 바라보는 경험은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극장에서 일반적인 가로 화면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끝까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를 희생하기보다 하응과 순애라는 두 인물의 얼굴과 감정을 가까이 들여다보는 데 활용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맞벌이 가정이 늘고 가사를 함께 나누는 부부가 많아지면서 가족의 모습도 달라졌다. 하지만 조금만 부모 세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버지의 집밥'이 그리는 밥상 풍경이 자신의 집이나 친척집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관객도 있을 수 있다.
영화가 바라보는 것은 밥상 위의 익숙한 역할만은 아니다. 오랜 시간 곁에 있어 당연하게 여겼던 가족의 존재와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누군가에게는 부모의 이야기이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다. 익숙한 밥상에서 시작해 오랜 부부와 가족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아버지의 집밥'. 자극적인 숏드라마 대신 웃음과 함께 따뜻한 가족의 정을 느끼고 싶다면 부모와, 혹은 자녀와 함께 봐도 좋을 작품이다.
taeyi427@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