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1950년 6월 25일 김희태 소령이 지휘하던 제1대대가 북한군 기습으로 무너졌다.
- 제2·3중대는 통신 두절 속에 붕괴했고 김 소령도 06시 전사했다.
- 제2대대가 역습해 일부를 구했지만 전선은 이미 무너져 해상철수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맥없이 무너진 제1대대의 주저항선
1950년 6월 25일 04:00.
옹진반도는 아직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산과 계곡에는 새벽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고, 병사들은 또 하나의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시각, 제1대대장 김희태 소령은 제3중대로부터 긴급한 상황을 보고받았다. 북한군 1개 소대 규모의 병력이 토끼고지와 189고지 사이의 무명고지로 접근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김 소령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동안 옹진반도에서는 북한군의 국지적인 도발이 자주 일어났다. 이번에도 그와 같은 도발일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직접 상황을 확인하기로 했다. 1/4톤 차량에 올라 제3중대 본부가 있는 자동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자동에 도착하기도 전에 전황은 급속히 악화되고 있었다.
제1대대가 지켜야 할 주저항선은 이미 허물어지고 있었다. 제2중대는 두락산과 412고지를 방어하고 있었다. 그 오른쪽 자동과 충무고지에는 제3중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북한군의 공격준비사격이 시작되자 모든 통신이 끊겼다.

전화선은 불통이 되었고, 중대본부와 대대본부 사이의 연락도 두절되었다. 포성과 총성이 새벽안개를 뒤흔들었다. 병사들은 적이 어디까지 다가왔는지, 어느 부대가 아직 진지를 지키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지휘관이 전황을 파악할 수 없는 사이, 전선은 무너지고 있었다.
자동으로 향하던 대대장 김희태 소령 차량 앞에 제3중대 병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충무고지 쪽에서 황급히 철수하고 있었다. 차량을 세운 대대장이 물었다. "무슨 일이냐?"
병사들의 얼굴은 흙과 화약 연기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그들의 보고는 다급했다. 제3중대 제2소대의 거점인 토끼고지에서 소대장 김호경 소위를 비롯한 여러 명이 전사했고, 방어진지가 북한군에게 돌파되었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대대장은 깨달았다. 이것은 평소의 국지적인 도발이 아니었다. 북한군은 이미 전면적인 남침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병사들을 뒤로하고 대대본부가 있는 곳까지 약 2km를 단숨에 달렸다. 그가 타고 온 1/4톤 차량은 포탄에 맞아 파괴되었다.
김희태 대대장은 대대본부에 도착하자 두락산과 412고지에 배치된 제2중대의 상황부터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통신은 완전히 끊겨 있었다. 그는 대대 예비대인 제1중대에 즉시 명령을 내렸다. "두락산과 412고지로 투입한다. 제2중대의 상황을 확인하고 진지를 보강하라."
대대본부에 남아 있던 병력에는 철수 준비 명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대대장 자신은 제3중대 방어지역으로 향했다. 흩어져 물러나는 병력을 수습하지 못한다면 제1대대 전체가 무너질 수 있었다.
그가 제1중대의 출동 준비 상태를 확인하려 대대 영문을 나서는 순간, 머리 위에서 날카로운 포탄의 파열음이 터졌다.
쾅―!
대대장 김희태 소령이 그만 전사하고 말았다. 온 육신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시계는 06:00를 가리키고 있었다.
대대장의 전사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대대장이 전사했다는 소문은 두려움이 되었고, 두려움은 명령보다 빠르게 전선을 휩쓸었다. 연대 예비대였던 제1대대가 제때 전투지역으로 투입되지 못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북한군 제3여단은 38도선을 돌파한 지 약 1시간 30분 만에 제1대대의 저항력을 급속히 무너뜨렸다. 주저항선 위의 제2중대와 제3중대는 소대 또는 분대 단위로 흩어졌다.
제1대대의 최전방에 있던 두락산과 412고지에서는 05:30경부터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다. 제2중대 병사들은 고지를 지키기 위해 참호와 능선에서 맞섰다.
총검이 부딪쳤다. 수류탄이 터졌다. 비명과 고함이 포연 속에서 뒤엉켰다.
그러나 전투가 시작된 지 30분 만에 방어선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했다. 제2중대 병력은 주저항선에서 흩어져 철수하기 시작했다.
오른쪽 자동과 충무고지를 방어하던 제3중대 역시 06:00경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중대장 대리인 제1소대장과 제2소대장이 전사했다. 지휘체계가 와해되면서 병사들은 어디로 물러나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제3중대 병사들 대부분은 옹진 지구에서 오랫동안 복무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지형을 잘 알고 있었다. 병사들은 제각기 육로나 배를 이용해 부포와 옹진 쪽으로 철수했다. 06:00 이후였다.
북한군이 충무고지 능선을 따라 남하해 제1대대 본부지역을 점령했다. 제1중대는 어느새 북한군의 포위망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짙은 안개가 그들을 살렸다.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안개가 깔려 있어 북한군은 제1중대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그 사이 제1중대는 자동으로 진출했다.
30분쯤 지나자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시야가 트이는 순간, 좌우 양쪽에서 북한군의 집중사격이 쏟아졌다. 제1중대는 그대로 진퇴유곡에 빠졌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두 시간 남짓 혈전을 벌였지만, 중대가 보유한 탄약은 바닥을 드러냈다. 소대장과 분대장들의 목소리도 하나둘 포성과 총성 속에 묻혔다.
그때였다. 뜻밖에도 북한군의 사격이 멎었다. 잠시 뒤 남쪽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제5중대 병사들이 반격에 나선 것이었다.
그 함성은 포위망 속에서 죽음을 각오했던 제1중대 병사들에게 살아나갈 길이 아직 남아 있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제2대대의 역습이 시작되고 있었다.
제2대대의 역습
06:20 제2대대장 송호림 소령은 "주저항선을 회복하라."는 명령을 연대장으로부터 받았다.
송호림 대대장은 즉시 역습계획을 세웠다. 대대는 은동리와 자동 일대의 북한군을 격퇴하고 제1대대의 주저항선을 되찾아야 했다.
제7중대는 제8중대 제2소대의 배속을 받아 목표 1인 사토를 탈취한 뒤, 목표 3인 운동·동쪽 무명고지로 진출하도록 했다. 제5중대는 제8중대 제1소대의 배속을 받아 목표 2인 자동을 탈취한 뒤, 목표 4인 토끼고지로 진출해야 했다. 제6중대는 대대 예비대였다.

공격개시 시각은 07:00. 공격 방향은 말재를 지나 북쪽으로 뻗은 능선이었다. 그러나 제2대대가 차량행군을 마치고 말재 정상에 도착했을 때, 고개 아래 1.5km 지점에서 붉은 깃발을 앞세운 북한군 1개 대대 규모의 병력이 전투종대로 남진하고 있었다.
제2대대는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제5중대와 제7중대를 공격개시선에 배치하고, 대대의 화력을 집중했다.
제8중대가 운용하는 81mm 박격포 4문은 말재 남쪽 기슭의 방열 진지에 자리 잡았다. 제8중대의 81mm 박격포
8문은 대대 지휘소 주변 진지 부근에 전개했다. 말재 정상 부근에는 연대 57mm 대전차포 2문과 중곡동의 81mm 박격포 진지 남쪽 1km 지점에 배치된 제7야전포병대대 제3중대의 105mm 곡사포 5문 가운데 1문의 화력이 추가되었다. 대체로 1개 연대의 지원 화력에 가까운 규모였다.
07:00가 조금 지났을 때, 북한군은 고개 아래 와지선 부근까지 접근했다. 대대장 송호림 소령이 약정된 공격개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신호탄이 새벽하늘을 가르자 박격포와 곡사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아무런 경계조치도 없이 행진하던 북한군의 대열 한복판에 포탄이 떨어졌다. 대열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비명과 고함이 터졌고, 북한군 병사들은 몸을 피할 곳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순간, 좌우익선의 제5중대와 제7중대가 공격개시선을 넘어 목표를 향해 돌진했다.
자동 부근에서 죽음만을 기다리던 제1중대는 그 함성과 포성을 들었다. 포위망을 뚫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병사들에게 제2대대의 공격은 구원의 손길이었다.
제2대대의 역습이 순조롭게 추진되던 09:00, 제17연대장은 말재에 대대 관측소를 설치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전방 상황을 살폈다.
제3대대의 상황이 다급했다. 연대장은 제2대대장에게 제3대대를 지원할 병력 1개 중대를 차출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대대장 송호림 소령은 난감했다. "지금은 공격 중입니다. 병력을 빼낼 수 없습니다." 공격의 한가운데에서 중대 하나를 떼어내면 역습 자체가 흔들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연대장의 명령을 거부할 수도 없었다.
결국 제8중대 제3소대와 81mm 박격포 8문, 제7야전포병대대 제3중대를 강령으로 이동시켜 제3대대를 지원하도록 했다. 제5중대와 제7중대는 좌우 익선에서 각각 목표 1과 목표 3을 점령했다. 송호림은 대대 관측소를 자동 남쪽의 무명고지에서 제1대대 본부 주변의 동두봉으로 옮겼다.
14:00. 제2대대의 공세는 무르익고 있었다. 제1대대가 잃었던 주저항선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때 제2대대장에게 연대장 철수명령이 전달되었다. 송호림은 명령을 믿을 수 없었다.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그런데 철수하라니요?" 그는 연대 연락장교를 되돌려 보냈다.
그러나 잠시 뒤, 옹진으로 떠났던 탄약보급 차량이 네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수색대를 급파해 확인한 결과, 연대본부는 정오 무렵 이미 강령으로 철수한 상태였다. 연대본부의 위치와 철수 방향을 알려줄 통신도 끊겨 있었다.
송호림은 그제야 전황의 실체를 깨달았다. 눈앞의 전투에서는 이기고 있었지만, 옹진반도 전체의 전선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제2대대는 은동과 자동 정면의 상황만 보고 있었다. 그들은 제1대대의 주저항선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연대의 다른 전선에서는 철수가 진행되고 있었다.
송호림 소령은 마침내 공격 중지를 명령했다. 제5중대는 휘하 제7중대를 후위로 삼아 철수했다. 그러나 제2대대가 부포를 목표로 철수하던 중, 북한군의 추격을 받았다.
양면에서 공격이 쏟아졌다. 선두의 제5중대에서는 중대장 김교섭 중위를 비롯한 많은 장병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다. 살아남은 병력도 뿔뿔이 흩어졌다.
치열했던 역습은 그렇게 끝났다. 제2대대는 북한군의 진격을 한때 저지하고 제1대대를 구원했지만, 전선 전체의 붕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제1대대와 연대 직할대 병력은 부포에 모였다. 병력은 밤이 되어서야 약 4km 떨어진 창린도에 집결할 수 있었다.
제17연대 본부에서도 철수명령이 내려졌다. 취야에서 양원과 강령 축선으로 진출한 북한군 제14연대가 양원을 점령하기 전에 각 부대는 연대본부와 직할대, 지원부대를 강령으로 철수시켰다.
이로써 제17연대는 동·서로 양단된 옹진반도에서 부포와 사곶리 두 지점으로 나뉘어 해상철수를 해야 했다.
옹진반도의 첫날은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병사들은 자신들이 지켜온 고지와 참호를 뒤로한 채 바다로 향했다. 승리할 수 있었던 전투도 있었고, 끝까지 지키지 못한 진지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전쟁이 이토록 빠르게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날은 1950년 6월 25일이었다. 대한민국의 가장 긴 전쟁이 시작된 날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