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환율하락 및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한 손실분에 대한 분담 차원으로 중소기업에게 납품단가 인하를 과도하게 요구해서 비난이 일고 있다는 보도가 종종 나오고 있다. 지난해도 마찬가지지만 올해 들어 환율하락이 극성을 부리던 지난 두 달 동안 환리스크관리 교육 및 자문을 위해 수출유망 중소기업 몇 군데를 방문했을 때도 이같은 현실을 직접 경험한 바 있다.
본인이 방문했던 업체 중 일부는 직수출 외에 대기업한테 원화 로컬 신용장(Local L/C) 및 구매승인서를 통한 방식으로 대기업에 수출(납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환율하락이 본격화되면서 거래 대기업이 결제통화를 원화에서 달러화로 바꾸고 환율을 1,000원 중반대를 기준으로 납품금액을 결정함으로써 낮은 가격으로 납품하게끔 계약조건을 달았다.
예를 들어 계약조건이 1달러=1,000원이었다면 현재 달러/원 환율이 970원 수준이니까, 중소기업은 1달러당 30원이 낮은 가격으로 납품을 하는 셈이고, 중소기업은 달러당 30원의 매출액과 그에 따른 영업이익 축소를 떠안게 된다. 그것도 상품을 납품하고 결제일을 1개월 뒤로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대기업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왜냐하면 대기업이 거래관계를 끊겠다고 압박을 하면 매출처를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손실분을 왜 중소기업에게 전가시킬까? 이유는 간단하다. 대기업들도 환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환율하락으로 인해 환차손실이 발생하게 되고 그것을 중소기업에게 전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실로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손실의 범위가 전가된 환차손실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금년 납품계획이 연초에 일괄 계약되면서 환율은 12월 중순 경의 수준인 1,030~1,040원을 적용하기 때문에 환율하락이 많이 진행된 계약시점에서 1차 환차손실(전가손실)이 발생했고, 그 후에 환율의 하락폭이 깊어지면서 2차 환차손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상품납품 후 1~2개월 사이에 달러결제가 됨으로써 자금압박까지 가중된다. 결국 중소기업은 환율과 금리의 양쪽 측면에서 모두 손실을 입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외화자금(외환포지션)의 보유기간이 길면 길수록 환리스크의 크기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2월 중순경의 환율을 기준으로 금년 납품을 해야 하는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포지션의 보유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환리스크 측정값(VaR=Value at Risk)이 증가한다. 이와 관련된 중소 수출기업은 지난해의 납품환율을 기준으로 목표환율을 설정하여 납품계약 및 예상 결제기일에 따라 적절하게 헤지(Hedge)를 실행함으로써 이미 계약시점에 발생한 환차손실을 최대한 줄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물론 상기 내용과 같은 구조적 모순을 없애기 위해서는 대기업들도 환리스크 관리를 철저하게 하여 환차손실 발생을 최소화함으로써 손실을 전가시키지 않는 것이 최선책이다. 그러나 업계 현실이 척박하고 환리스크 관리가 정상화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실행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중소기업들 스스로도 현존하는 현실의 벽을 적절하게 뛰어 넘는 환리스크 관리 노력을 배가할 필요할 필요가 있다. 또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다.
[중소기업청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이석재 자문위원] fxpim@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