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 Newspim] 세계경제 사령관이라 불리는 미국 연준(Federal Reserve) 버냉키 의장의 취임 1주년을 맞아 그의 면모를 체계적으로 조망하는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버냉키 1주년 특집은 [버냉키노믹스: 버냉키와 연준의 도전]을 주제로 <버냉키 시대의 도래>, <대공황 마니아>, <그린스펀 스탠더드>, <버냉키 스탠더드>, <버냉키호의 좌표>, <글로벌 위기의 시험> 순으로 연재될 것입니다. 글로벌 시대 세계경제를 이끌어가는 미국 중앙은행의 수장인 버냉키와 그가 이끌어갈 연준을 조망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1) 대공황의 교훈에 주목하라!
② 학계에서 현실 정책의 세상으로
버냉키는 일본 경제의 디플레이션 경험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1920년대 연준처럼 일본은행도 1980년대 말 버블을 터트리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번에는 주식과 더불어 부동산도 문제였다. 그리고 이후 일본도 미국처럼 디플레이션과 불황을 경험했다. 버냉키는 1930년대 연준처럼 일본은행도 이에 대해 많은 책임을 지닌다고 평가했다. 특히 2000년 논문에서 일본은행은 “스스로 초래한 마비 상태로 인해 고충을 겪고 있다”며, “아마도 일본에서도 루즈벨트와 같은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조언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별 반향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대공황 연구는 이내 미국에서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지난 1990년대 말 주식시장 버블이 한창일 때 일부 전문가들은 연준에게 주식시장 버블에 맞선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그러나 1999년 미국의 캔자스시티 연준이 개최한 연례 경제 심포지엄, 일명 ‘잭슨홀 컨퍼런스’에 참석한 버냉키와 거틀러는 자산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부양한다면 연준이 금리를 인상해야 하지만, 버블을 터트리기 위해 금리인상에 나서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버블은 터지고 나면, 쉽게 패닉(panic: 심리적 공황)으로 퇴보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버블이 결국 자체적으로 붕괴되면 금융시스템과 경제 전반에 미칠 피해를 줄이기 위해 연준이 오히려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핵심 조언이었다. 이들에 따르면, 1920년대 연준의 ‘버블 터트리기’ 경험과 1980년대 일본의 유사한 경험이 갖는 교훈은 중앙은행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때에만 혹은 “디플레이션 압력을 적극적으로 강화시켰을 때에만” “자산 붕괴는 지속적인 피해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린스펀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거틀러는 “우리가 논문을 발표한 후 그린스펀이 내게로 다가와 ‘당신들도 알다시피 우리도 당신 입장에 동의한다’고 말했다”고 회상한다.
결국 2002년 8월 버냉키는 연준 이사가 됐다. 당시 미국 경제의 더딘 회복세와 인플레이션 하락세는 디플레이션 우려를 자아냈다. 그리고 연준은 거의 실탄이 바닥난 것처럼 보였다. 성장 부양을 위해 그 해 11월 연방기금 금리를 이미 1.25%로까지 끌어내린 것이다. 버냉키는 몇 주 후 가진 강연을 통해 은행권과 가계의 대차대조표가 견실하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디플레이션 위험은 “극히 미미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연방기금 금리가 제로로까지 떨어진다 해도 연준이 디플레이션과 싸울 수 있는 많은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역설했다. 사실 버냉키가 시장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였다.
당시 버냉키는 한 가지 대안적인 수단으로 1940년대의 전례를 인용해 연준이 직접 채권을 매수해 장기 금리를 떨어뜨리는 방안을 제안했다. 사실 장기 금리야 말로 모기지 금리와 기업 여신 금리 등 실물 경제에 한층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 통화증발을 통한 감세나 달러화 절하 등과 같은 더욱 이색적인 전술들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역시 그의 “지적 대범함”을 반영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동시에 실물 세계에 대한 그의 경험 부족을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후 수개월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연준 스탭들은 채권시장에 개입해 장기 금리를 타겟(target: 조작 목표)로 삼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버냉키도 결국 이런 장기 금리 타겟팅 방안을 철회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반(反)디플레이션 전략을 계속해서 연구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논자들은 버냉키가 디플레이션에 대해 부당한 경고를 조장했다고 비판한다. 나아가 일각에서는 이 과정에서 연준이 사실상 미국의 채권 및 주택 등 새로운 버블을 부양했다는 비난도 제기된다. 사실 ‘헬리콥터 벤’이라는 그의 별명도 이 때 생긴 것으로, 프리드만의 외생적 통화공급을 빗댄 표현이다. 그러나 버냉키와 그의 지지자들은 막상 디플레이션이 현실화되지 않은 한 가지 이유가 바로 연준이 이 위협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적극적인 저금리 정책을 구사한 점이라고 반론을 편다.
버냉키는 “대공황이 제기했던 문제들과 그 교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오늘날 경제 환경이 대공황 당시와는 천양지차의 차이를 보인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리고 일련의 현실 시험을 거친 상황에서, 연준 의장으로서 버냉키가 대공황에 대한 자신의 이런 관심을 마냥 밀어붙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이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버냉키는 지난 2000년 『환영의 시대: 정치인들과 중앙은행이 대공황을 어떻게 창출했나』(Age of Delusion: How politicians and central bankers created the Great Depression)는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이 책이 대공황의 기원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을 형성하는 데 있어 갤브레이쓰의 고전을 대체하기를 바랬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버냉키는 지난 2002년 연준 이사직을 맡게 되면서 결국 공무원 법에 따라 이 책을 중도 포기했다. 당시 약 120페이지 정도만을 썼을 뿐이다. 이에 따라 버냉키는 자신이 받은 선불금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출판을 맡았던 W.W. 노턴 앤 선즈의 편집장 잭 레프첵은 이를 거부했다. “향후 15년 뒤 그가 퇴임하기로 결정하면 그 때 우리는 다시 이 책을 발간하기를 원할 것”이라는 설명.
이런 맥락에서 버냉키가 대공황의 교훈으로 주목하는 바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먼저 한 가지 교훈은 ‘아이디어’라는 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는 것인데, 사실 이는 금 본위제의 정통에 대한 완고한 고집과, 나아가 당시 정책 당국 내에서 유행하던 이른바 ‘청산주의자(liquidationist) 테제’에 집착해 주식 버블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했던 연준의 실책을 경계하는 대목이다. 이런 논리는 아이디어에 집착하기보다는 언제나 신중한 연구와 분석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오늘날 자산 버블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과 관련해서도 일정한 선을 긋고 있는 셈이다.
버냉키가 주목하는 또 하나의 교훈은 금융 안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그는 자산 버블에 대한 대응에서도 거시적 통화정책보다는 이런 미시적 차원의 금융 안정 혹은 건전성 정책에 무게를 싣는다. 마지막 교훈은 물가 안정이라는 것이 통화정책의 핵심 목표여야 한다는 점인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물가 안정이라는 것이 양방향의 것이라는 점이다. 즉 인플레이션만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에 대해서도 말이다. 이를 두고 그에 대해 인플레이션 ‘온건파’(즉 ‘헬리콥터 벤’)라는 의혹이 일기도 했지만, 정작 그는 이런 논란을 인플레이션 목표의 상한선 못지않게 하한선도 명시하는 구체적인 인플레이션 타겟 혹은 목표 설정, 즉 인플레이션 타겟팅(inflation targeting: 물가안정목표제) 도입 문제로 승화시킨다.
[뉴스핌 장보형 객원이코노미스트]
※본 특집의 저자인 장보형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한신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0여년간 국내 정보컨설팅 업체인 와이즈 인포넷에서 '국제금융/경제 팀장'을 맡아 국제 금융시장과 세계 경제 동향 점검 및 이슈 분석을 전담한 후, 현재는 '글로벌 마켓 이코노미스트'로서 프리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뉴스핌 객원 이코노미스트로 합류했습니다.
(1) 대공황의 교훈에 주목하라!
② 학계에서 현실 정책의 세상으로
버냉키는 일본 경제의 디플레이션 경험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1920년대 연준처럼 일본은행도 1980년대 말 버블을 터트리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번에는 주식과 더불어 부동산도 문제였다. 그리고 이후 일본도 미국처럼 디플레이션과 불황을 경험했다. 버냉키는 1930년대 연준처럼 일본은행도 이에 대해 많은 책임을 지닌다고 평가했다. 특히 2000년 논문에서 일본은행은 “스스로 초래한 마비 상태로 인해 고충을 겪고 있다”며, “아마도 일본에서도 루즈벨트와 같은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조언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별 반향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대공황 연구는 이내 미국에서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지난 1990년대 말 주식시장 버블이 한창일 때 일부 전문가들은 연준에게 주식시장 버블에 맞선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그러나 1999년 미국의 캔자스시티 연준이 개최한 연례 경제 심포지엄, 일명 ‘잭슨홀 컨퍼런스’에 참석한 버냉키와 거틀러는 자산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부양한다면 연준이 금리를 인상해야 하지만, 버블을 터트리기 위해 금리인상에 나서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버블은 터지고 나면, 쉽게 패닉(panic: 심리적 공황)으로 퇴보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버블이 결국 자체적으로 붕괴되면 금융시스템과 경제 전반에 미칠 피해를 줄이기 위해 연준이 오히려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핵심 조언이었다. 이들에 따르면, 1920년대 연준의 ‘버블 터트리기’ 경험과 1980년대 일본의 유사한 경험이 갖는 교훈은 중앙은행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때에만 혹은 “디플레이션 압력을 적극적으로 강화시켰을 때에만” “자산 붕괴는 지속적인 피해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린스펀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거틀러는 “우리가 논문을 발표한 후 그린스펀이 내게로 다가와 ‘당신들도 알다시피 우리도 당신 입장에 동의한다’고 말했다”고 회상한다.
결국 2002년 8월 버냉키는 연준 이사가 됐다. 당시 미국 경제의 더딘 회복세와 인플레이션 하락세는 디플레이션 우려를 자아냈다. 그리고 연준은 거의 실탄이 바닥난 것처럼 보였다. 성장 부양을 위해 그 해 11월 연방기금 금리를 이미 1.25%로까지 끌어내린 것이다. 버냉키는 몇 주 후 가진 강연을 통해 은행권과 가계의 대차대조표가 견실하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디플레이션 위험은 “극히 미미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연방기금 금리가 제로로까지 떨어진다 해도 연준이 디플레이션과 싸울 수 있는 많은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역설했다. 사실 버냉키가 시장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였다.
당시 버냉키는 한 가지 대안적인 수단으로 1940년대의 전례를 인용해 연준이 직접 채권을 매수해 장기 금리를 떨어뜨리는 방안을 제안했다. 사실 장기 금리야 말로 모기지 금리와 기업 여신 금리 등 실물 경제에 한층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 통화증발을 통한 감세나 달러화 절하 등과 같은 더욱 이색적인 전술들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역시 그의 “지적 대범함”을 반영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동시에 실물 세계에 대한 그의 경험 부족을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후 수개월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연준 스탭들은 채권시장에 개입해 장기 금리를 타겟(target: 조작 목표)로 삼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버냉키도 결국 이런 장기 금리 타겟팅 방안을 철회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반(反)디플레이션 전략을 계속해서 연구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논자들은 버냉키가 디플레이션에 대해 부당한 경고를 조장했다고 비판한다. 나아가 일각에서는 이 과정에서 연준이 사실상 미국의 채권 및 주택 등 새로운 버블을 부양했다는 비난도 제기된다. 사실 ‘헬리콥터 벤’이라는 그의 별명도 이 때 생긴 것으로, 프리드만의 외생적 통화공급을 빗댄 표현이다. 그러나 버냉키와 그의 지지자들은 막상 디플레이션이 현실화되지 않은 한 가지 이유가 바로 연준이 이 위협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적극적인 저금리 정책을 구사한 점이라고 반론을 편다.
버냉키는 “대공황이 제기했던 문제들과 그 교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오늘날 경제 환경이 대공황 당시와는 천양지차의 차이를 보인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리고 일련의 현실 시험을 거친 상황에서, 연준 의장으로서 버냉키가 대공황에 대한 자신의 이런 관심을 마냥 밀어붙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이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버냉키는 지난 2000년 『환영의 시대: 정치인들과 중앙은행이 대공황을 어떻게 창출했나』(Age of Delusion: How politicians and central bankers created the Great Depression)는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이 책이 대공황의 기원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을 형성하는 데 있어 갤브레이쓰의 고전을 대체하기를 바랬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버냉키는 지난 2002년 연준 이사직을 맡게 되면서 결국 공무원 법에 따라 이 책을 중도 포기했다. 당시 약 120페이지 정도만을 썼을 뿐이다. 이에 따라 버냉키는 자신이 받은 선불금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출판을 맡았던 W.W. 노턴 앤 선즈의 편집장 잭 레프첵은 이를 거부했다. “향후 15년 뒤 그가 퇴임하기로 결정하면 그 때 우리는 다시 이 책을 발간하기를 원할 것”이라는 설명.
이런 맥락에서 버냉키가 대공황의 교훈으로 주목하는 바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먼저 한 가지 교훈은 ‘아이디어’라는 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는 것인데, 사실 이는 금 본위제의 정통에 대한 완고한 고집과, 나아가 당시 정책 당국 내에서 유행하던 이른바 ‘청산주의자(liquidationist) 테제’에 집착해 주식 버블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했던 연준의 실책을 경계하는 대목이다. 이런 논리는 아이디어에 집착하기보다는 언제나 신중한 연구와 분석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오늘날 자산 버블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과 관련해서도 일정한 선을 긋고 있는 셈이다.
버냉키가 주목하는 또 하나의 교훈은 금융 안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그는 자산 버블에 대한 대응에서도 거시적 통화정책보다는 이런 미시적 차원의 금융 안정 혹은 건전성 정책에 무게를 싣는다. 마지막 교훈은 물가 안정이라는 것이 통화정책의 핵심 목표여야 한다는 점인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물가 안정이라는 것이 양방향의 것이라는 점이다. 즉 인플레이션만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에 대해서도 말이다. 이를 두고 그에 대해 인플레이션 ‘온건파’(즉 ‘헬리콥터 벤’)라는 의혹이 일기도 했지만, 정작 그는 이런 논란을 인플레이션 목표의 상한선 못지않게 하한선도 명시하는 구체적인 인플레이션 타겟 혹은 목표 설정, 즉 인플레이션 타겟팅(inflation targeting: 물가안정목표제) 도입 문제로 승화시킨다.
[뉴스핌 장보형 객원이코노미스트]
※본 특집의 저자인 장보형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한신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0여년간 국내 정보컨설팅 업체인 와이즈 인포넷에서 '국제금융/경제 팀장'을 맡아 국제 금융시장과 세계 경제 동향 점검 및 이슈 분석을 전담한 후, 현재는 '글로벌 마켓 이코노미스트'로서 프리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뉴스핌 객원 이코노미스트로 합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