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노종빈 기자] 최근 주유소 500곳 장부 조사와 대안주유소 설치 등 기름값 잡기 정책으로 업계의 반발을 사고 있는 지식경제부가 이번에는 값싼 일본산 휘발유 도입을 검토하고 있어 또다른 논란이 예상된다.
24일 정부 각 부처와 업계에 따르면, 일본산 저가 휘발유가 빠르면 연내 도입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 물량은 향후 지경부 주도로 건설되는 대안주유소 등의 유통망을 위주로 공급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휘발유 가격을 낮출 수 있을 정도로 정책적 실효성이 있느냐는 논란이 불거지는 가운데 지경부의 일본산 휘발유 도입 강행 여부도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 정유업계 "도대체 왜?", 정책 신뢰성·일관성 도마에
정유업계는 표면적으로는 크게 내색을 하지 않고 있지만 지경부의 이같은 정책 움직임에 대해 커다란 부담을 느끼고 있는 모습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단순히 일본 휘발유 도입을 검토하는 단계로 알고 있다"면서도 "국내 업계의 경쟁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며 외부적 요인이 없는 한 시장환경에 별다른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현재 일본의 휘발유를 수입하는 데는 아무런 규제 없이 오픈되어 있으나 수입은 거의 없었다"며 "그만큼 일본 휘발유를 들여와도 남는 것이 없을 정도로 국내 정유시장 상황이 충분히 경쟁이 활성화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한 정유업계 전문가는 "그동안 정부의 그린 에너지 성장 정책에 따라 고품질 휘발유를 생산하기 위한 연관 투자만 6조원에 이른다"며 "정책 신뢰도 측면에서 심각한 훼손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따라서 그는 "정부 보조금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 한 저품질의 일본 휘발유를 도입하더라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만약 보조금이 주어진다면 가격은 낮출 수 있겠지만 그만큼 국민의 부담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 지경부, 환경부에 日 휘발유 조사 요청, "단순 현황파악 차원"
지경부 관계자는 "일본산 휘발유의 현황에 대해서 조사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라며 "아직 수입할 지 여부가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환경부에 일본산 휘발유의 품질과 관련해 국내 시장으로 수입할 때 이를 막고 있는 요소가 있는지 관련 내용을 파악해 달라고 전달했다"며 "하지만 정부가 주체가 되어서 수입을 허용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거나 수입조건을 완화해달라고 요청한 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환경부의 일본산 휘발유 평가 역시 외국산 연료들의 품질이 어떤 상황인지 들여다 보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최대한 환경적인 영향이 없는 상태에서 규정을 일부 조정할 필요가 있겠는지 등의 문제를 검토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단 환경부의 조사 결과가 나온 뒤에야 정책적 결정을 취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국내산 휘발유 가격은 일본산 휘발유의 현지 유통가격보다 소비자가는 낮고 세금은 높은 상황이어서 두 나라의 시장 변동 등 개별요인을 상쇄하고 본다면 큰 메리트는 없는 모습이다.
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인 오피넷의 주요국 고급휘발유 가격 비교표에 따르면, 일본산 고급 휘발유의 소비자 가격은 리터당 2207원으로 이 가운데 세금이 840원 포함돼 있다. 반면 국내산 고급 휘발유 소비자가는 2159원이며 세금은 978원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일본의 리터당 휘발유 수출가격은 573원으로 국내산보다 불과 리터당 평균 9원가량 싼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수입을 해도 큰 실효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 日 휘발유 품질·연비 낮아 그만큼 더 소비해야, "결국 마찬가지"
지경부의 요청으로 국내 휘발유 유통관련 환경기준을 일본산 휘발유 수준으로 재검토하고 있는 환경부는 현재 일본제 휘발유 조달이 늦어지고 있어서 아직 어떠한 분석이나 평가에도 착수하지 못한 상황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원래는 이번달 말까지 일본산 휘발유의 환경성과(environmental performance)를 분석할 예정이었다"며 "하지만 수입업체의 사정상 조달이 늦어지고 있어 시일이 다소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평가에서는 배기가스 내 황 함량 등 대기오염 유발 물질에 대한 분석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되며 이에 따른 시험 평가에는 약 2~3주가 소요될 예정이다.
한 전문가는 "지경부는 환경 관련 조건을 완화하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환경규제 완화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며 "저품질 휘발유 사용시 옥탄가가 떨어지면 차량의 연비 또는 성능이 떨어지는 문제에 대해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의 고급 휘발유 수준이 우리나라의 보통 휘발유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그만큼 연비가 떨어지면 운전자는 더 많은 휘발유를 소비해야 하기 때문에 전체 휘발유 소비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 전문가들 "현실성 없다, 일시적 미봉책 불과"
이번 일본 휘발유 도입 문제와 관련 국내 석유산업 관련업계의 반응은 더욱 냉소적이며 이같은 정책이 추진되는 배경 자체에 대해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 석유산업 관련 전문가는 "일본산 저가휘발유를 도입하는 것은 거의 현실성이 없는 정책으로 보이며 장관이 바뀌면 또 달라질 것"이라며 "일본 업체들이 우리 휘발유를 수입해 가고 있는데 정부가 나서서 저품질 일본 휘발유를 수입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또다른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가 그린 에너지 성장 정책을 추진해 왔고 선진 주요국 수준의 환경 기준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하지만 물가를 잡기 위해 환경기준을 낮춘다면 정책 일관성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환경기준을 낮춰 황 함량이나 벤젠 함량 등이 불완전 연소할 경우 대기중 발암물질 등으로 나오게 된다"며 "하지만 정부의 검토결과 모든 사항이 투명하게 나타난다면 업계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환경정책 쪽에서 본다면 일시적인 미봉책은 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이 되긴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편 석유협회 측은 정부에서 결정이 나오지 않은 상태여서 이렇다 할 공식입장은 없다고 밝혔다.
또 주유소 업계 관계자는 "어떤 기름이 들어오든 결국 시장 경쟁이 활성화된다면 소비자에게는 나쁘지 않을 것"이라며 "따라서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이같은 정책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노종빈 기자 (unti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