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성과주의 평가가 부른 '비극'
[뉴스핌=노종빈 기자] "출근하기가 두렵다."
최근 실적 압박에 따른 스트레스로 외국계 은행의 간부급 직원이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금융권 전체가 충격 속에 빠졌다.
22일 금융당국과 금융권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의 원인이 된 과도한 업무와 실적 압박 스트레스에 대해 금융권이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전형적 우수 모범직원…실적 초과 달성
지난 18일 경기도 용인 자택에서 투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부장 조 모(49)씨는 평소 선후배간 신망이 높았던 모범 직원이었다.
최근까지 중소기업 관련 업무를 맡았던 조 씨는 매번 평가때마다 실적 목표를 초과 달성할 정도로 성과가 우수했다.
그는 옛 제일은행 출신으로 거의 30년간 은행에 몸담아 왔다. 또 회사가 외국계로 인수된 뒤에도 경영진의 기대와 신뢰를 한 몸에 받아왔기에 이번 사건은 더욱 뜻밖이라는 시각이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함께 남겨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내부적으로 목표 실적을 초과 달성한 몇 안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평소 실적 스트레스에 대한 압박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의 가족은 경찰 진술에서 "조씨가 최근 잠을 못 잘 정도로 실적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 SC은행 "충격, 비통"…유족 지원 문제 성실 협의
SC은행 직원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충격과 비통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
SC은행 관계자는 "성과 자체가 낮은 분은 아니었고 오히려 성과가 높은 상황이었다"면서 "또한 부장급 이상은 이번에 지적된 성과평가 시스템의 대상도 아니었다"고 말하면서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안타깝고 힘든 상황이지만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면서 "어려움을 당한 유가족들에게는 은행 차원에서 예를 갖추고 최선의 조치를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장례의 모든 절차가 잘 끝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유족들과는 배려와 지원 차원의 구체적 논의도 성실히 진행할 것이라 덧붙였다.
은행 측에서도 최근 금융업계 전반에서 스트레스 컨트롤 차원에서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자발적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개인과 조직이 함께 고민해 가는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기존 복리후생 제도 역시 보완하거나 강화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SC은행 측은 또한 지난해 노사간 갈등이 있었으나 올해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회사 측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노사합의 과정에서 불협화음도 있었지만 올해는 여느 은행과 비교해도 나쁘지 않다"면서 "올해 초 임단협도 최근 2년분(2010년과 2011년)이 일괄타결됐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도 본사의 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있고 행장도 노조행사에 자주 방문해 대화한다"면서 "노사가 서로 등지지 않고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 중소기업 경기악화로 실적부담 가중
SC은행은 과거 부실화 돼 공적자금이 투입된 제일은행을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인수해 이름을 바꾼 것이다.
구조조정 이후 국내 금융시장 환경은 4대 금융 지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급격히 메가뱅크화하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SC은행은 다른 은행에 비해 '규모의 경제'에서 뒤지며 영업력이 위축되는 모습이었다.
평소 조씨가 담당했던 중소기업 대출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중소기업들이 경기침체 등으로 하나 둘씩 대출 잔고를 급격히 줄이자 조씨의 실적도 하락세로 접어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조씨도 예년과 같은 실적을 유지하기 몹시 버거웠고 이에 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압박감을 느꼈던 상황이었다.
여기에 옛 제일은행 출신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항상 성과를 초과 달성해 온 우수직원으로 동료들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책임감도 극단적 선택의 동기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 금융당국, 성과주의 폐해 면밀히 살펴야
금융당국에서도 이번 사태를 유감으로 받아들이면서 이같은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을 면밀히 주시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는 "은행권이 내부 직원들을 실적 경쟁을 시켜서 하위 평가자들은 후선발령하는 것은 수십년 간의 관행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이는 잘못된 것이지만 최근 경쟁이 심화되면서 과도한 양상을 보이지 않을 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현재 금감원은 이번 자살사건이 난 SC은행에 대해 종합검사를 진행 중인 상황이다. 이에 따라 문제로 언급된 성과평가 시스템 등 실적관리 측면에서, 지점장들에 대한 업무 과중 및 스트레스 등의 면에서도 면밀하게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은행들이 내부적으로 실적 경쟁을 시키고 낙오되면 후선 발령을 내거나 보직없이 연체독촉 등의 업무에 배치한다는 것을 들었다"며 "은행 뿐아니라 어떤 조직도 잘못된 성과 지상주의의 폐해가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외국계 은행의 경우 점포 수 등 규모가 적은 데 비해 동등한 실적을 올리려다 보면 한계에 부딪치는 경우가 있다고 본다"면서 "이 때문에 과중한 압력이 조장되고 있지는 않은 지 면밀히 보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현실적으로는 과당경쟁에 따라 발생하는 불완전판매나 변칙거래 등을 지도감독해 과도한 경쟁은 하지 말라는 쪽으로 계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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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노종빈 기자 (unti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