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김세혁 기자·사진 강소연 기자] 배우와 캐릭터가 일체가 되는 메소드(method) 연기는 상당한 칭찬이다. ‘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이나 ‘달콤한 인생’의 황정민, 그리고 ‘추격자’의 하정우 등 극소수에게만 메소드 연기자라는 근사한 훈장이 주어졌다.
배우 온주완(30)과 마주하며 메소드 연기를 언급했더니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친다. 메소드 연기를 하려면 한참 멀었다며 겸손해하면서도 표정은 싱글벙글이다. 특유의 천진난만한 웃음 속에는 연기에 대한 욕심과 자신감이 뚜렷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최근 쌓아온 온주완의 이미지는 악역과 가깝다. ‘별순검’ ‘무림여대생’ 등에서 진중하고 밝은 캐릭터도 선보였지만 2011년 KBS 일일극 ‘내 사랑 내 곁에’의 고석빈 캐릭터가 워낙 강렬했다. 정연식 감독의 최신작 ‘더 파이브’에서 그의 사악한 연기는 정점을 찍었다.
온주완이 영화 ‘더 파이브’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들은 건 올해 1월이었다. 10개월 만에 나온 결과물은 꽤 괜찮았다. 동명의 웹툰을 스크린에 옮긴 ‘더 파이브’에서 온주완은 섬뜩한 사이코패스 인형작가 재욱으로 변신했다. 어째 주인공 김선아보다 비중이 크다. 간절히 원했던 캐릭터인 만큼 분석이 남달랐다. 이런 노력은 고스란히 작품 속에 녹아있다.
“정말 끌렸어요. 꼭 캐스팅해 주십사 졸랐죠. 노개런티도 불사할 생각이었어요. 완벽주의자인 재욱은 기존 살인마들의 무지막지한 잔인함은 물론 아름답고 섹시한 면을 가졌어요. 고정된 살인마의 이미지를 깬 인물이어서 꼭 연기해보고 싶었어요.”
원했던 배역이니만큼 공도 많이 들였다. 자신의 분석을 토대로 재욱을 섬세하게 다듬었다. 심지어 재욱의 옷들도 직접 조달했다. 사이코패스나 비슷한 설정이 등장하는 작품을 들여다보며 공부도 했다. '더 파이브'를 찍으면서 온주완은 버리고 오직 재욱으로 살았다. 그래서 온주완에게서 메소드 냄새가 슬쩍 났던 건 아닐까.
“한니발 렉터가 나오는 작품(양들의 침묵, 레드 드래곤 등)과 영화 ‘향수’를 유심히 봤어요. 비슷한 점이 있나 자세히 봤죠. 재욱은 평소엔 반듯하지만 원하는 것을 위해 살인마로 돌변하는 이중성을 가졌어요. 색으로 치면 회색이죠. 언제라도 백색과 흑색을 오갈 수 있는 사이코패스거든요. 흔치 않은 캐릭터라 분석이 쉽지 않았어요. 순간 180도 달라지는 캐릭터였기에 무엇보다 집중이 필요했죠.”
영화 ‘더 파이브’는 재욱에게 남편과 딸을 잃은 여성 은아(김선아)가 네 인물의 도움을 얻어 복수극을 계획하는 이야기다. 재욱은 네 인물 중 대호(마동석)와 물리적으로 부딪히며 아찔한 액션을 보여준다. 운동 마니아로 유명한 두 사람은 양보 없는 주먹다짐을 펼쳤다.
“원래 설정에서 재욱은 몸이 안 좋은 인물이었어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죠. 머슬맨과 상대하는데 몸이 약하면 어쩌겠어요. 더구나 재욱은 자기관리가 철저한 인물이라 몸을 어느 정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죠. 동석이 형은 물론 저도 운동을 오래 하다 보니 촬영은 괜찮았어요. 생각이 통하니 거친 장면도 사고 없이 찍었고요.”
프로급 춤 실력을 자랑하는 온주완은 소문난 스포츠 마니아다. 겨울에는 스노보드를, 여름에는 웨이크보드를 즐긴다. 쌀쌀해지면 실내에서 클라이밍을 하는 것도 좋다며 웃었다. 운동을 찾아서 할 정도니 ‘더 파이브’ 흥행 공약도 애초에 운동으로 내걸었다.
“원래 영화가 10월경 개봉할 예정이었어요. 555만 관객을 동원하면 한강을 헤엄쳐 건너겠다 공약하려 했죠. 아시다시피 지금은 겨울이라 춥잖아요. 어휴, 수영은 힘들지 않을까요? 대신 영화가 잘된다면 여러 곳을 다니며 봉사하려고 합니다.”
바쁜 배우활동에 둘도 없이 의지가 되는 건 역시 가족이다. 멀리 지방에서 아들을 응원하는 온주완의 부모는 든든한 조력자이자 냉정한 평가를 아끼지 않는 평론가다.
“하고자 하는 일을 편안하게, 그리고 집중하게 해주세요. 솔직히 누가 받쳐주지 않으면 어떤 일이든 집중하기 어렵죠. 전 정말 행복한 거예요. 생활에 치여 촉박해지지 않고 일에 파고들 수 있게 해주시거든요. 무척 쿨한 분들이라 칭찬도 간결하세요. 잘 하더라 소문나면 고개 끄덕여 주시고 잘못했다 싶으면 아낌없이 지적하시죠. 평론가처럼요.”
문득 연애관이 궁금했다. 2011년 잠깐 열애설이 나더니 여태 뜸하다. 옆구리가 시린 겨울, 어떤 여자가 이상형이냐고 물었더니 대뜸 나이 이야기부터 꺼냈다.
“20대 때는 애교 많고 절 많이 아껴주는 여자가 좋았어요. 얼굴이요? 물론 예쁘면 좋죠.(웃음) 이제 막 30대로 들어서 보니 생각이 확 달라졌어요. 무엇보다 서로를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거니 받거니 챙겨주고 쓰다듬어주는 친구 같은 여자가 좋아요. 어디 그런 여자 없나요?”
온주완 최고의 원 신(one scene) 알려진 것처럼 온주완은 연기는 물론 춤에 노래까지 능하다. 당연히 무대 욕심도 난다. 언젠가 뮤지컬 무대도 서보고 싶다는 그가 일단 연기를 결심한 계기는 2004년 영화 ‘발레교습소’였다. 끼 많은 온주완이 왜 영화에 스스로를 한정했을까. 그만한 계기가 있었다. 9년이나 지났지만 온주완은 당시 기억을 또렷하게 간직하고 있다. “(윤)계상이 형과 (김)민정이 누나가 주인공이었고 전 조연이었어요. 영화 촬영현장에서 카메라와 주연배우 사이의 거리를 잴 때 지금은 레이저 포인터를 쓰잖아요. 근데 당시만 해도 천으로 된 줄자를 썼어요. 당연히 제 몸엔 줄자가 닿을 일이 거의 없었죠. 딱 한 장면 빼고요. 수산시장에서 계상이 형이랑 부딪히는 신 만큼은 제가 주인공이었어요. 멀리서 줄자가 ‘탈탈탈탈’ 풀리면서 다가오는 소리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꿈 속에 시간이 멈춘 듯했죠. ‘아, 이게 연기구나’ 싶었어요. 그 때 배우를 해야겠다 결심했죠.” |
[뉴스핌 Newspim] 글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사진 강소연 기자 (kang1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