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강소연 기자] 시작부터 앤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눈물 바람이다. 옆자리의 관객이 지치지도 않고 울면 짜증날 법도 한데 같이 흐느끼느라 정신이 없다.
배우 박철민의 첫 주연작 ‘또 하나의 약속’이 드디어 관객에게 선보일 채비를 마쳤다. 영화는 모 전자회사 반도체 공장에 입사해 2년 만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사망한 고(故) 황유미 씨와 그의 아버지 황상기 씨의 실화를 담았다.
“이병헌보다 쉽게 스킨십할 수 있는 배우”라고 자신을 소개한 박철민은 예상대로 타고난 언변가였다. 지금까지 보여준 코믹한 연기는 그의 유쾌한 말솜씨에 기인한 모양이다. 인터뷰 시작부터 육성으로 웃음이 빵빵 터졌다. 하지만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가슴이 먹먹한 듯 슬픈 미소를 짓는 박철민이 자주 포착됐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 황상기 씨 이야기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듯 눈가가 촉촉해졌다. 스크린 속 나약하고 작은 어깨를 가진, 그럼에도 딸을 위해 무서운 세상과 맞서는 유일한 존재, 아버지 한상구(박철민) 이미지가 교차됐다.
“박철민이 눈물이라니 의외죠?(웃음) 십 수년간 연기하면서 제 캐릭터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너무 정형화됐어요. 박철민 하면 까불고 능청스러운 편안한 이미지잖아요. 물론 장점일 수도 있지만 반복되다 보니 스스로 지겹기도 하고 한계도 느꼈어요. 그래서 벗어나 보려 고민하던 차에 아직 가보지 못했던 캐릭터를 만난 거죠. 외압에 대한 걱정보다 설레고 신나는 마음이었어요. 물론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고 쉽게 불붙을 수 있는 작품이죠. 하지만 사회고발영화라기보다 가족애를 담은 휴먼 드라마이자 아주 작고 나약한 한 아빠의 성장담입니다.”
박철민에게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두 딸이 있다. 올해 대학교 2학년인 큰딸과 중학교 2학년 막내딸. 그는 자신도 딸을 둔 아버지이기에 감정이입에 도움이 됐지만, 그렇기에 한없이 먹먹했다고 털어놨다. 본인도 황상기 씨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거 같으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감정이 아주 깊이 들어가는 날이 있지 않습니까? 가끔 그 아픔의 크기가 재단이 안됐어요. 그럴 때 캐릭터에 우리 딸을 입히면 도움이 됐죠. 사실 이런 판단이 쉽지 않잖아요. 실화가 아니었다면 우리 영화는 너무 작위적이었을 거예요. 그 정도로 아버님은 보편적인 생각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 가신 거죠. 저는 그렇게 못했을 거예요. 물론 그런 일이 있다면 훨씬 더 크게 분노하고 통곡하고 행동했겠죠. 그러나 훨씬 짧게, 한방에 무너졌을 겁니다. 전 외향적이고 공격적이지만, 나약하고 비겁한 아버지거든요.”
단언컨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앤딩크레딧이다. 까만 화면에 하얀 글씨가 빼곡하게 올라갈 때 관객은 가슴이 미어짐을 느낀다. 이 이름의 주인공들은 영화제작에 십시일반 힘을 보탠 시민들이다. ‘또 하나의 약속’은 전문 투자사가 아닌 제작 두레 형식으로 제작비를 100% 마련했다. 1만여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함께 모은 제작비는 무려 10억 원. 막내에게는 최소한의 출연료를 지급하자는 원칙 아래 막내를 제외한 스태프, 배우 모두 노개런티로 참여했다. 박철민은 “우리 작품의 자랑이자 특징”이라며 행복하게 웃었다.
“존경스럽기도 하고 벅찬 마음에 목이 메고 울컥해요. 이분들은 도대체 무슨 가치관과 생각을 가졌기에 힘을 보태면서도 미안해하고 고마워할까 싶죠. 그래서 간혹 저를 용기 있다, 개념 있다 칭찬해 주시면 부끄러워요. 전 그냥 작품과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 배우의 욕심으로 참여했거든요. 전 속물이고 통속적인 인간이고 잡스러운 놈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포장되면 안될텐데란 생각을 하죠. 짧은 기간에 만든 가난한 영화지만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퀼리티를 자랑하게 된 이유 역시 제가 아니라 곳곳에서 온 큰 마음이라 생각해요.”
개봉을 앞둔 지금, 영화는 ‘제2의 변호인’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손익분기점이 60만~70만명인 작은 영화지만, 사회적 이슈이자 실화를 다뤘다는 점에서 예비 관객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말을 처음 듣는 건 아닌 듯 껄껄 웃던 박철민은 “제2건 제3이건 어떠냐. 흥행의 십 분의 일만 따라가도 행복하겠다”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다른 점도 있어요. ‘변호인’은 거인을 다룬 이야기고 우리는 소시민의 이야기거든요. 제일 다른 점은 ‘변호인’에는 영화계의 엄청난 티켓파워를 가진 배우가 등장한다는 거죠. 전 열장도 안 되잖아요. 그 부분에서 스스로 굉장히 아쉽고 부끄럽고 화도 나요. 사실 송강호라는 엄청난 배우에 대한 신뢰로 ‘변호인’을 선택한 사람도 있잖아요. 절 보고 선택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저한테 돈 빌려서 안 갚은 놈이나 누나, 처남, 야구단 식구들 정도겠죠(웃음). 사실 그래서 감독님한테 왜 저를 캐스팅했느냐고 푸념도 했어요. 그래도 따뜻하고 예쁜 영화니 많은 관심 가져주셨으면 해요.”
아직도 영화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듯 그는 자리를 떴다가도 몇 번이고 다시 앉았다. 다음 일정 때문에 빨리 이동해야 했지만, 아프고 착한 이 영화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간절했다. 인터뷰 시간을 한참 넘기고서야 힘들게(?) 자리를 뜨던 박철민은 “오늘은 여기서 이별해야겠다”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어느 가정이나 아픔은 있어요. 즐거운 모습 이면에는 숨기고 싶거나 멀리하고 싶은 일이 있죠.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큰일이 한상구한테 온 거예요. 비록 딸의 죽음으로 가족이 해체됐지만, 다시 돌아와 힘이 되잖아요. 저는 그게 가족인 거 같고 우리 영화의 또 다른 메시지라 생각해요. 그래서 영화를 보고 이 사건을 응원해주는 동시에 자신들 가정의 갈등 역시 더 성숙하고 예쁘게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이죠. 집에 가서 서로 보듬어 주고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꼭이요.”
“우선 설 당일엔 일정이 없는데 잘 모르겠어요. 드라마 ‘감격시대’ 스케줄이 어떻게 될지는…. 그래도 이번 연휴에는 한 2~3일 스케줄 안 잡고 어머니 아버지 실컷 보고 딸들이랑 보내고 싶어요. 세배도 하고 떡국도 먹고 갈비는 최소한 적게 먹고요(웃음). 만화책도 봐야 해요. 제가 음식이나 술에 관한 만화나 책을 정말 좋아해요. 그런 건 보든 안 보든 신간이 나오면 무조건 사놓죠. 지금 또 ‘술 한 잔 인생 한 입’이라고 ‘식객’과 비슷한 일본 만화를 사놨어요. 근데 그 책을 사놓고 계속 바빠서 5권 이후로 못 봤거든요. 그거 꼭 다 읽고 싶네요. 이거 내가 너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나?(웃음)” |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강소연 기자 (kang1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