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발의는 의원 고유 권한…의정활동 방해 말아야" 지적도
[뉴스핌=함지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의원입법 규제' 발언을 계기로 '과도한 의원 규제 입법'이 정치권의 쟁점이 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규제관련 의원입법 개선과제' 발간자료에 따르면 의원 발의안과 가결안을 정부제출 법안과 비교해볼 때 규제신설·강화 성향이 더 강한 반면, 규제완화·폐지 성향은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5월 30일부터 2011년 6월 30일까지 18대 국회 발의·가결된 법안을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의원 발의안 중 규제 신설·강화법안 비중(17.8%)이 정부발의안의 경우 (9.4%)보다 높았다. 규제완화·폐지법안 비중 (10.4%)은 정부발의안(14.4%)보다 낮았다.
의원법안 가결건수 중 규제 신설·강화 법안 비중 (17.0%)이 정부안 가결의 경우 (7.4%)보다 높았으며 규제완화·폐지 법안비중 (12.6%)은 정부안 가결의 경우 (13.4%)보다 낮았다.
전경련은 이같은 원인에 대해 "의원입법의 규제성향은 정부제출 법안은 규제영향평가를 실행해 검토 과정을 거치는데 비해 의원발의 법안은 그런 과정이 생략돼 나타난 결과"라고 분석했다.
정부발의안을 제출할 경우에는 제출 전 관계기관과 협의, 입법예고, 규제심사, 법제처심사, 차관회의 심의, 국무회의 심의 등 자체 심사 및 의견 수렴 등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의원입법은 국회의원 10인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발의할 수 있고 입법예고나 심의를 받을 의무가 없다. 예산이나 기금 상의 조치를 수반하는 법안일 경우에만 비용추계서를 첨부하면 된다.
규제법안 뿐 아니라 의원입법 제출 건수도 국회를 거듭하면서 급증하고 있다.의원입법안 제출 건수는 13대 국회에서 462건, 14대 252건, 15대 806건, 16대에 1651건에 불과했다. 17대에 5728건으로 급증한 데 이어 18대 1만1191건으로 늘어났다. 아직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대 국회에서도 벌써 9000여건이 넘었다.
규제법안을 비롯한 의원입법이 급증한 이유로 시민단체들이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평가할 때 법안발의 건수 등 양적인 평가를 하기 때문이라는 점이 제일 먼저 꼽힌다. 여기에 지역구민의 입법수요를 반영하기 위한 지역 선전용 법안도 많아졌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다양한 사회세력을 대표하고, 전문성 있는 국회의원이 많은데다 국회예산정책처와 국회입법조사처 등 입법지원 조직이 갖춰졌다는 점도 꼽힌다.
이런 상황에서 법안내용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없는 이른바 '묻지마 발의'나 정부안을 대신 발의하는 '대리입법' 등의 다양한 비판이 제기된다. 법안 발의는 대표적인 국회의원의 입법권한이자 의무라는 점에서 의원안 발의의 증가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것은 의정활동의 활성화라는 관점에서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 4월 임시국회 마지막날인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3년도 추가경정예산안이 재석226인, 찬성 130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해 '이슈와 논점'을 통해 "의원의 법안발의를 추동하는 요인은 의원 개인의 정책적 관심뿐만 아니라 소속 정당의 입장, 지역구의 이해관계 등 다양하다"며 "최종적으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법안발의는 그 자체가 의원의 입법권 행사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의원입법을 규제하는 것은 국회 고유 권한에 대한 침해 행위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국회측 한 관계자는 "의원의 입법발의는 고유 권한"이라며 "입법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의원 활동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 정부안은 까다롭고 의원입법은 간편한 이유는?
일각에서는 행정권을 가진 정부의 입법이 까다로운 이유도 입법기관과 행정기관 상호 간 벽이 허물어지지 않을도록 하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보기도 한다.
국회 관계자는 28일 뉴스핌과의 통화에서 "정부는 입법기관이 아니라 행정기관이다. 입법권은 의회가 갖는 게 삼권 분립체제의 기본"이라며 "의회는 원래 입법을 하는 곳이므로 의원이 입법을 하는 데 있어 사전에 여러 절차를 밟게 되면 입법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삼권분립의 원칙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입법은 국회의 고유 업무기 때문에 국회의원은 쉬운 입법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입법 제출건수가 많고 일부에서 '날림 입법'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 자체가 국회의원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의원입법이 정부입법에 비해 절차가 덜 까다로워 각종 규제가 양산되고 있다고 보지만, 애초에 업무영역이 다른 두 조직의 입법과정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뉴스핌 Newspim] 함지현 기자 (jihyun031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