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홍승훈 기자] "이런 산꼭대기에 웬 호수". 잠시 들러 썰렁하다는 느낌만으로 돌아섰던 경기도 가평 호명산 위에 자리한 호명호수. 5년전 무심코 지나쳤던 이 호수에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지난 4일 한국수력원자력 조석 사장과 산업통상자원부 출입기자단이 함께 찾은 뒤에야 필자는 그 답을 찾았다.
15만㎡의 면적에 267만t의 물을 담고 있는 이 호수는 전력공급을 위해 청평댐 물을 끌어올려 만들어진 인공호수다. 산 아래 청평호와 어우려져 2층 호수같은 독특한 경관을 연출하고 있는 이 곳에서 산 아래로 2~3km를 내려가자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청평 양수발전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동양에선 두 번째다.
1980년 전력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준공된 이 발전소는 지금까지도 매일 새벽이면 청평댐 아래의 물을 끌어올려 전기를 만드는 일을 한다. 설비용량은 40만kW(20만kW 2대). 다른 발전소들에 비해 다소 작지만 수도권 전력비상 상황시 없어서는 안될 발전소다.
양수발전소 내부를 가기 위해 지하터널 입구에서 1킬로미터 남짓 미니버스로 더 들어가자 지하발전소가 나왔다.
설동욱 청평양수발전소장은 "양수발전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전력계통 안정화입니다. 정지 상태서 최대 출력에 이르기까지 불과 3분이면 가능해요(보통 원전은 40시간, 석탄발전은 14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돌발사고 등의 갑작스런 부하 변동시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양수발전입니다. 이처럼 가장 신속하게 전력공급을 할 수 있어 양수발전을 전력계통의 '3분 대기조' '구원투수'라고들 합니다"고 설명했다.
전기는 저장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통상 전기사용이 가장 적은 심야시간대에는 공급이 수요를 초과해 이 때 기저부하를 담당하는 대형 석탄화력이나 원전 등의 발전량을 줄이거나 정기시켜야 한다. 다만 이를 위해선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등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다.
여기서 양수발전이 진가를 발휘한다. 전력수요를 늘려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양수발전은 전력수요가 적은 심야의 잉여전력을 싼값이 사서 하부댐의 물을 퍼올려 상부댐에 저장했다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낮 시간때 물을 낙하(낙차 489m)시켜 전력을 생산하는 것이다.
양수발전소가 새벽에 잉여전력을 사는 전기가격은 kW아워당 120원, 이를 낮시간대 210~220원 가량에 팔아 약 100원 가량을 남긴다. 다만 정부가 가격조정을 인위적으로 하기 때문에 양수발전 전체로는 소폭의 적자를 내고 있지만 발전소 경영상의 문제는 아니다.
특히 양수발전은 외부 도움 없이도 스스로 신속하게 전력을 생산할 수 있어 우리나라 전체 전력공급이 중단됐을 때 이 곳에서 생산된 전력은 인근 대용량 발전소가 정상 가동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존재가치는 충분하다고 설 소장은 강조했다.
조석 한수원 사장 역시 이에 대해 "양수발전은 경제성 보다는 전력 피크관리가 포인트"라며 "유사시에 대비할 수 있고 현재 한국의 경제구조상 전력피크 관리에 양수발전이 가장 유용하다"고 부연했다.
현재 국내에는 청평을 비롯해 삼랑진, 청송, 산청, 무주, 양양, 예천 등 7곳의 양수발전소가 있다. 총 설비용량은 470만㎾로 원자력발전소 5기의 용량과 맞먹는 수준이며, 국내 전체 발전 설비용량의 5.7%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이날 현장견학을 마친뒤 늦은 오찬에서 조 사장은 최근 6개월 현장경영과 관련 "원전비리 이후 상황정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해현경장(解弦更張, 거문고 줄을 풀어 고쳐 맨다는 뜻)의 자세로 지금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다만 비리척결은 단호하게 하면서도 만여명 임직원의 사기 문제도 있어 긴장과 긍정의 동기를 균형있게 가져갈 생각"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초기엔 직원들이 나를 점령군으로 인식하더라. 아마도 2004~2005년 원자력국장 시절 방패장과 관련해 한수원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고 전제한 뒤 "다만 사장으로 와보니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됐다. 그간 한수원은 외부 혁신대책을 수행하면서 절실함이 없었다. 혁신은 내부에서 이뤄지는게 옳다고 생각하고 내부로부터의 혁신을 고민하고 있다"고 신발끈을 한껏 조여매는 모습이다.
[뉴스핌 Newspim] 홍승훈 기자 (deerbea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