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가스 수출·식량 수입 등 금 결제도구로 활용
[뉴스핌=노종빈 기자] 최근 미국 등 서방진영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당한 이란이 대외결제 수단으로 화폐가 아닌 금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방세계의 대이란 제재는 최근 유럽을 포함한 서방 진영의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이란이 이 난제에 대처해온 과정이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이란 내 주요 천연가스전 위치도.[자료: 위키미디어]
◆ 美 이란 경제 제재…대외 무역 봉쇄
미국은 지난 2012년 3월 이란에 대해 핵무기 개발 중단을 요구하며 약 16개월간 경제제재를 통한 무역봉쇄 조치를 취한 바 있다.
당시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글로벌 자금결제 네트워크인 '스위프트(SWIFT)'에서 이란과의 거래를 전면 차단했다.
미국의 주된 전략은 급속도로 이란내 통화가치를 폭락시켜서 막대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고 은행들에는 뱅크런을 발생토록 하는 것이었다.
대외 거래가 막히면 자연히 물가급등으로 이어져 음식료 가격을 급상승시키고 휘발유와 일반 소비재의 가격도 폭등시켜 사회적 혼란을 부추긴다는 것이었다.
◆ 대외 결제도구로 활용된 금
그러나 이란은 외환 거래가 막히자 결제수단으로 금을 긴요하게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짐 리커즈 옴니스 수석전략책임자의 최근 저서 '돈의 몰락(The Death of Money)'에 따르면 경제 제재가 시작된 지난 2012년 3월 터키에서 이란으로의 금 수출은 직전달에 비해 2배 증가했다. 이는 12개월 전보다 37배나 급증한 것이다.
천연가스는 터키 전력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웃 이란의 천연가스 수출량 가운데 90% 이상 거의 대부분은 터키로 수출되고 있다.
이란은 천연가스를 수출하고 터키로부터 금으로 대금을 결제받았고 다시 인도나 중국으로부터 식량을 수입하면서 금을 결제도구로 활용했다.
미국이 이를 눈치챈 것은 1년 여 뒤인 지난해 7월이었다. 미국은 즉각 이란으로의 금 거래도 금지시켰다.
이는 미국 정부가 금에 대해 화폐의 교환가치를 암묵적으로 인정한 흔치 않은 사례다.
금 결제가 막히자 이란이 취한 방법은 인도로 원유수출을 한 뒤 인도 루피화로 결제를 받아 인도 내 은행에 자금을 예치시키는 것이었다.
또한 이란은 스위프트에 가입된 중국과 러시아 은행들을 활용해 자금을 송금받기도 했다. 스위프트 규정에는 수취 계좌를 밝히지 못하도록 돼 있어 가능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금 결제보다는 훨씬 까다롭고 복잡했다.
◆ 글로벌 파생상품 시장 해킹…혼란 유발
이란은 해킹과 같은 사이버전을 통해 미국의 입김이 강한 글로벌 금융시장에 대한 비대칭적 공격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란의 전략은 글로벌 에너지 업체 전산망에 침투 원유와 천연가스가 운송되는 파이프라인 관리 프로그램을 조작, 일대 혼란을 유발시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실제 물류 상의 혼란은 물론 원유와 천연가스 등을 기반으로 한 에너지 파생상품 시장 거래도 큰 소동을 겪었다.
미국은 지난해 말 이란과의 핵개발 관련 대화를 재개하면서 이란에 다름아닌 금 판매 금지조치를 해제하는 선물을 안겨줬는데, 이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 통보하지 않고 취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결정이었다.
1년 여 짧은 기간에 불과했지만 이란으로서는 전통적 전투전력 상으로는 절대 약세일 수밖에 없는 미국에 맞서 버틴 결과였다.
이란은 지난 2003년 164개의 핵 원심분리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10년 뒤인 지난해 이란이 보유한 핵 원심분리기는 1만9000개로 크게 증가했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이란은 10년 전에 비해 더 강력한 카드를 쥐게 된 셈이다.
주이란 미국대사를 지낸 바 있는 이란 전문가 윌리엄 밀러는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경제 제재 조치는 더 큰 반발을 일으키게 된다"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노종빈 기자 (unti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