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나는 너다’ 개막을 앞둔 배우 송일국을 만났다. 무대 의상인 제복을 입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등장했지만, 삼둥이 대한민국만세 이야기를 하던 중 절로 흘러나오는 아빠미소는 숨기지 못했다.
1998년 MBC 27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송일국은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지만 처음부터 큰 주목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그의 인기를 단번에 끌어올린 것은 사극 ‘해신’(2006)과 ‘주몽’(2007) 두 편의 사극을 연달아 찍으면서부터다. 이후 ‘바람의 나라’(2009)로 다시 한번 사극에 강한 배우임을 확인시켰다.
‘장군’이나 ‘왕’으론 부족했던지, 지난 2010년에는 드라마 ‘신이라 불린 사나이’를 통해 신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런 송일국이 지금은 ‘아빠’의 모습으로 대중과 만나고 있다. 그를 ‘삼둥이의 아빠’라 불리게 해준 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송일국은 지난 2010년 초연, 이듬해 재연한 연극 ‘나는 너다’로 처음 연극에 도전했다. 이번 2014년 공연에는 그 때와 달리 ‘애아빠’가 돼 참여한다. 아버지로서 알게 된 새로운 감정과 느낌은 ‘배우’ 송일국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줬다. 송일국은 “초연 땐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몰랐던 느낌이 있었다면, 이번엔 아이들(대한, 민국, 만세)이 생긴 만큼 표현에 있어 달라질 것 같다”는 두루뭉술하지만 일리 있는 표현으로 이번 연극을 기대하게 했다.
첫 연극도전에 1인2역. 대본 상으로도 쉬운 작품은 아니었다. 특히, 송일국이 가장 걱정한 부분은 ‘내가 안준생을 욕되게 하는 것은 아닐까’란 우려였다. 안준생은 아버지 안중근과 달리 친일 행각을 했다는 불명예스런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일제 치하 속 ‘범죄자의 아들’ ‘죽어 마땅한 놈’이란 낙인이 찍힌 채 살아야 했던 안준생의 삶과 감성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 동시에, 이같은 고민과 걱정에도 불구하고 ‘안준생’은 송일국이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괜히 같은 독립유공자 후손이 나섰다가 안준생을 욕되게 하는 건 아닐까 우려도 들었고, 그를 지키지 못한 것 또한 우리의 책임이 아닌가란 의문도 들었고…. 하지만 안중근 역할만 있었다면 아마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안준생이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제가 외할머니 손에 자랐는데, 어릴 적 한번도 증조부(김좌진 장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어요. 저희 어머니도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눈물 한 방울 안 나왔다 하시더라고요. 참 많이도 가족들을 고생시키셨는지(웃음). 그런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 안준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지난 2011년 공연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안준생에 대한 감을 잡았다. 연극 ‘나는 너다’의 마지막 지방 공연이었던 홍성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송일국은 ‘대한민국 만세!’라 외치는 대사를 뱉으면서 다른 때와 달리 너무 과하게 힘을 쏟아 부었고, 눈앞이 아찔할 정도의 현기증을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망했다’ 생각한 그 순간 비로소 캐릭터에 성큼 다가갈 수 있었다. 이를 두고 송일국은 “’그분’이 오셨다” 표현하며 웃었다.
“그 때 사실 디렉션 대로 못했어요. 뇌출혈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격앙됐거든요. 근데 그렇게 하고 나니까 ‘아! 안준생을 이렇게 해야 되는 거구나’ 딱 느꼈죠. 지금까지 안준생의 흉내만 냈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 왜 지금까지 이걸 몰랐을까 너무 아쉽고.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로 연기를 하느라 표현이 제대로 안된 것 같았는데, 마지막 쓰러질 듯한 상황에서 마침내 그걸 할 수 있었어요. 다시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같았는데 마지막 지방공연의 마지막 무대였으니(웃음). 그런데 이렇게 다시 기회가 왔으니 진짜 잘 해보고 싶어요.”
안중근/안준생 역의 송일국을 비롯해 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 역에 배우 박정자와 예수정이 함께 한다. 지킴이 역에 한명구, 판사 역에 원근희 등 탄탄한 중견 배우들이 힘을 보탠다. 안중근의 처 김아려 역에는 배우 배해선이 출연하며, 대한의군 역으로 10여 명의 배우들이 함께 한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극의 중심을 잡아 주시니 참 감사해요. 아, 박정자 선생님은 어머니(김을동)의 동아방송 성우 1년 선배세요. 그래선지 정말 자식처럼 대해주세요. 아들처럼 예뻐해 주시고, 가끔 제가 혼날 짓을 해도 제 체면 세워주려 살짝 불러서 조용히 이야기해 주시고…. 또 우리 대한의군들. 전 형제가 없지만, 10명의 형제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제 형제들처럼 지내고 있어요.”
‘나는 너다’ 팀의 남다른 우애를 언급하던 중 항일유적지 탐방에 얽힌 이야기가 나왔다. 송일국은 매해 국내외 대학생들과 함께 항일유적지를 돌아보고 항일독립선열들의 뜻을 기리는 ‘청산리역사대장정’에 참여하고 있다. 초연 때에는 우연히 일정이 맞은 덕분에 ‘나는 너다’ 팀과 함께 청산리역사대장정을 가게 됐다.
“그런 면에서 연출님이 정말 대단하세요. 연극을 준비하는 와중에 그런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유적지를 돌아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유적지를 둘러보고 나서의)느낌이 연극에도 녹아났다고 생각해요. 사실 전 크게 달라진 점을 느끼진 못했는데 (배)해선씨가 그러더라고요. 아이들(대한의군 역)의 눈빛과 발성과 느낌이 달라졌다고.”
이번 2014년 공연 개막을 앞두고 송일국을 비롯한 ‘나는 너다’ 팀은 또 한번의 항일유적지 견학을 계획하고 있다. 기존에 대한의군 역할을 소화한 배우 5인에 새로 다섯 명의 배우가 투입됐는데, 이들 새 멤버를 위해 계획한 일정이다. 송일국이 자비를 들여가면서 작품의 정신을 추구하는 것은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 또 배우로서 느끼는 애착 때문이다.
“‘신이라 불린 사나이’를 마칠 때쯤이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제가 내면보단 겉으로 보이는 것에 치중하고 있더라고요. 그 작품의 성격도 그랬지만, 저 스스로도 몸 만드는 거나 패션에나 신경 쓰고… 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웃음). 그 시기에 이 연극을 하면서 확 달라졌어요. 연기에 새롭게 눈을 뜬 것 같기도 하고…. 배우로서 받은 큰 선물이에요. 배우는 선택하는 직업이 아니라 선택 받는 직업인 만큼 원하는 역할을 다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좀더 다양한 역할에 제가 떠오를 수 있도록 스펙트럼 넓은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다행히 그렇게 되어가는 것도 같고(웃음).”
“대한민국만세가 저만 안 닮았으면 좋겠어요.” |
[뉴스핌 Newspim] 글 장윤원 기자 (yunwon@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