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도시적이고 섹시한 이미지의 배우 염정아(42)가 이 시대 아줌마와 비정규직을 대표해 스크린 한 가운데 섰다. 그것도 기미를 그린 민얼굴에 아줌마 파마를 하고 큰 키를 움츠리며 쭈뼛쭈뼛. 그의 얼굴에 기미가 가득해질 거라고, 헤어스타일이 지나치게(?) 평범해질 거라고, 170cm가 넘는 우월한 기럭지가 이렇게 쓰일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래서였다. 영화 ‘카트’ 프로모션 인터뷰 차 마주한 그에게 이렇게까지 내려놓을 줄 몰랐다는 평을 가장 먼저 내놓은 것은. 하지만 되레 자신에겐 익숙한 모습이라던 그는 “다른 분들은 낯설어하더라. 많이 당황하셨느냐?”고 반문했다. 이내 “섹시할 틈이 어디 있느냐.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라고 덧붙이며 시원하게 웃었다.
염정아가 2년 만에 신작 ‘카트’를 선보였다. 영화는 대형 마트의 비정규직 직원들이 부당해고를 당한 이후 이에 맞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상업영화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영화는 큰 의미를 지닌다.
“정말 시나리오 보면서 울고 연기할 때 울고 영화 보면서도 울었어요. 제가 봤을 때 어려운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소재가 조금 무거워서 그렇지 영화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영화로 특별히 무엇을 주장하겠기보다 이런 이야기가 있었고 지금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죠. 그냥 많은 공감을 할 수 있는 사람 사는 이야기예요. 착하고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죠.”
극중 염정아가 열연한 인물은 두 아이의 엄마이자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선희. 입사 후 5년 동안 벌점 한번 없이 성실하게 일해 온 비정규직 계산원인 그는 정직원 전환을 눈앞에 두고 회사로부터 일방적인 계약해지 통보를 받는다. 항상 조용하고 소극적이던 선희는 얼떨결에 노조원을 대표해 사측과 맞서게 되고 처음으로 부당한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연기하면서 매 순간 그 감정을 잘못 표현하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고민했죠. 사실 울고불고하면 신파잖아요. 더군다나 선희는 뚝심 있고 성실한 캐릭터지 가벼운 캐릭터가 아니란 말이에요. 그래서 고민을 더 많이 한 거죠. 물론 개인적으로는 엄마로서 느끼는 감정, 울분, 억울함 등이 많이 와 닿았고요. 사실 각자의 입장이나 상황, 사회적 위치가 다를 뿐이지 이 세상 엄마 마음은 다 똑같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저희 아이들을 대입해서 연기한 건 아니에요. 현장에는 제 아들 (도)경수가 따로 있었으니까요.”
영화 속 아들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에게 좀 더 도경수 이야기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도경수는 아이돌그룹 엑소(EXO) 디오의 본명. 이번 영화로 첫 스크린 데뷔를 한 디오는 극중 사춘기 소년 태영을 열연, 염정아와 모자(母子)호흡을 맞췄다. 염정아는 디오가 아들로 출연한다는 소식에 촬영 전 직접 엑소의 ‘으르렁’ 뮤직비디오를 찾아보는 성의(?)를 보였다. 하지만 열두 명이라는 멤버 사이에서 단번에 디오를 찾기가 쉽진 않았을 터. 그는 디오 사진 한 번, ‘으르렁’ 뮤직비디오 한 번 보면서 열심히 아들을 찾았노라 털어놨다.
“그냥 정말 예뻤어요. 지금도 이렇게 홍보활동 하면서 보면 변함없이 예쁘고요. 사실 그렇게 인기가 많은 줄 몰랐어요(웃음). 처음엔 정말 엑소가 그룹 이름인지도 몰랐죠. 아무래도 제 아이들이 아직 아이돌보다는 만화 캐릭터를 좋아할 때잖아요. 일단 제가 겪은 (도)경수는 되게 똑똑해요. 뭐든 금방 받아드리고 순발력도 좋죠. 메인보컬이라서 노래도 되게 잘 부르더라고요. 딸로 나온 (김)수안이 역시 타이밍을 아는 천재성 있는 아이죠. 끼도 많고 춤도 잘 추고요. 얘가 몸에 느낌이 있어(웃음).”
영화 속 아들·딸 자랑에 침이 마를 새 없는 팔불출(?) 엄마에게 집에 있는 진짜 아이들에게는 어떤 모습의 엄마냐고 물었다. 지난 2006년 정형외과 전문의 허일 씨와 결혼한 그는 실제 일곱 살 딸과 여섯 살 아들을 뒀다. 촬영이 없는 날이면 매일 마트에 들려 아이들과 남편의 반찬거리를 산다는 염정아는 그야말로 평범한 주부였다. 아이들 학원 앞에서 간식 들고 기다리는 것도 그의 몫이란다.
“그냥 아이들을 많이 웃겨주려고 해요. 우리 엄마가 제일 좋은 건 웃겨서라고 할 정도죠(웃음). 물론 대부분이 몸 개그나 표정으로 웃기는 거지만요. 사실 저도 모르는 개그 본능이 제 안에 있거든요. 항상 참고 있어서 그렇지, 친한 지인들은 많이 알고 있을 거예요. 이번에도 선희 역에 그런 엉뚱한 면들, 넘어진다거나 이런 허점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감독님이 그건 아니라고 해서 살리진 못했죠(웃음).”
그의 말마따나 염정아는 뜻밖에 재밌는 면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따금 농담도 던지며 분위기를 끌어나가는 유쾌함도 있었다. 이참에 정통코미디 한 번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에도 선뜻 “상황과 조건이 맞는다면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개인적으로 ‘여선생 VS 여제자’(2004) 느낌의 코믹한 캐릭터를 좋아해요. 하지만 촬영 전에 또 많은 걸 고려해야 하니까요. 감독님, 제작사부터 시나리오, 캐릭터까지 정말 많죠. 제가 특별히 욕심내는 건 없는 듯해요. 다만 좋은 작품을 기다리면서 어떤 역할이 올까 그걸 기대하고 그때의 설렘이 좋죠. 지금은 특별히 고민하고 있는 작품은 없어요. 새로운 역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죠. 좋은 작품 만나서 지금처럼 차분하게 좋은 연기하면서 보내는 게 언제나 저의 계획입니다(웃음).”
“뛰고 땀나는 운동이 제일 싫어…액션도 못할 걸요?” 여전히 큰 키에 늘씬한 몸매를 유지하며 뭇 여성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는 염정아는 3kg 정도 체중이 증가한 상태에서 이번 영화를 찍었다. (믿고 싶지 않지만) 그의 인생 최고(?)의 몸무게다. 그게 어떻게 살이 찐 거냐는 타박에 꽤 진지한 표정으로 “키가 크면 다르다”며 받아치는 그다. “이게 정말 키가 큰 여자들은 조금만 살이 쪄도 체격이 커진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당연히 신경이 쓰이죠. 이번에는 일부러 찌우려고 찌운 건 아니고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었어요(웃음). 물론 역할을 고려했을 때도 그게 맞았고 체중이 늘어나는 걸 조심해야 할 이유도 없었죠. 당연히 지금은 다시 관리하면서 조심하고 있고요. 운동도 열심히 하고 밥도 줄이고 그래요. 근데 또 제가 뛰고 땀나는 걸 아주 하기 싫어해요(웃음). 그래서 기구 이용해서 가만히 누워있을 수 있는 필라테스를 꾸준히 하고 있죠. 정말이지 유일하게 들어와도 할 수 없을 듯한 영화 장르가 액션일 정도죠. 그건 정말 체력 때문에 못할 듯해요(웃음).” |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