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이현경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유학을 다녀와야 양식 요리사가 될 수 있다는 편견을 깬 최현석(43). 그는 고졸 출신 비유학파 이탈리안 셰프다. 올해 셰프가 된지 20년이 된 최현석과 최근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걸어온 길을 하나하나 다시 밟으며 우리시대의 청춘에게 메시지를 던졌다.
높은 스펙을 쌓으려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셰프 최현석이 고한다. 쓴맛, 짠맛, 단맛, 매운맛 등 다양한 맛을 보며 살라. 한 번 사는 인생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 무작정 책상에 앉아 있을 게 아니라 지금 마주한 세상을 다양하게 경험하라는 그의 따뜻한 조언이다.
최현석 셰프가 요리에 입문하게 된 과정은 당시 요리를 하던 친형의 소개였다. 그리고 27세에 결혼을 하면서 가정을 책임지기 위한 생계 수단이 요리였다. 일하면서 재미있었던 건 사실이다. 다만 당시의 그는 요리사가 자신의 천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하게 주어진 일을 해냈던 것뿐이다.
부모님이 요리사인 터라 요리하는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최현석에게 물었다. 요리는 타고나야하는 것이냐고. 이 질문에 그는 “타고나지 않아도 되지만 요리사라면 음식을 먹거나 메뉴 개발하기를 즐겨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노력형 인간이냐는 물음에는 “나는 게으른 편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부추기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그건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을 지인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나는 자존심이 센 편이다. 그래서 나의 안 좋은 면이 공개되는 걸 꺼린다”고 설명했다.
“물론 요리사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후각과 미각이 예민한 편이고 아버지의 그림 실력도 물려받아서 요리하는 데 도움은 되죠. 일본의 유명한 점술가에게서 들은 얘긴데 보통 사람에게 나타나는 직업군이 3~7개 정도 인데 저는 요리사로 딱 하나더라고요. 운명으로 볼 수 있지만 어쨌거나 천재가 아닌 이상 모든 사람은 노력해야 해요. 저도 예전엔 신메뉴를 1000개까지 만들면서 제 자신이 천재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군요(웃음). 천재는 끊임없이 에너지를 쏟아낼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공부는 계속해서 평생 해야 돼요.”
셰프 최현석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스승이다. 그래서 그는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했다. 제자는 스승의 모든 것을 다 닮기 때문이다. 가령 스승이 말을 험하게 하거나 강압적이라면 제자도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최현석의 스승은 ‘기본’을 중시했다. 주방 청결 문제, 식재료를 귀중하게 아끼는 법 등이다. 주방에서의 기본적인 규칙이 최현석이 크리에이티브한 요리를 할 수 있는 초석이었다.
“만약에 스승님이 화를 내고 압박적으로 가르쳤다면 저도 그랬을 거예요. 스승님께서 제게 항상 강조한 것은 ‘기본’이었어요. ‘식재료를 함부로 버리지 마라’ ‘주방을 청결하게 유지해라’ ‘달걀 껍질은 차곡차곡 쌓아서 버려라’ 등이었죠. 저또한 제 주방에서 강조하고 있고요. 제가 ‘크레이지 셰프’로 불리게 된 원동력은 기본을 지키는 거예요. 기본이 탄탄한 상태에서 변화를 줘야 반전이 일어나거든요. 공감 없이 무작정 특이한 걸 선보인다해서 크리에이티브(Creative)로 느낄 수 없어요. 예를 들면 스키니 바지와 여자 속옷을 착용하고 있는 남자, 상상해 보세요. 새로워 보일 수는 있어도 전혀 공감이 없죠?”
스펙 중 학력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최현석 셰프는 고졸 출신에 국내파 이탈리안 셰프다. 그에게 유학을 가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물으니 “먹고 살기 바빴다. 물론 필요했다면 갔을 것이다. 하지만 부족하면 내가 공부를 찾아 하면 됐다”라고 말했다. 특별히 국내파 이탈리안 셰프로서 가지는 자부심이 있냐는 질문에는 “요리사는 접시에 담긴 음식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특별한 자부심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국내파, 해외파를 나누는 건 의미가 없어요. 이력은 사람들이 쉽게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일 뿐이에요. 요리사로서 먼저 가치를 인정받은 후 그 뒤에 히스토리가 깔리는 거죠. 소림사에서 마당만 3년 쓴 사람이 장풍을 쏠 수 있나요? 내공을 닦아야 결과가 나오는 거죠. 사대무림에서도 장풍 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는 거고요.”
분명한 건 최현석이 지나온 셰프의 길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론은 성공적이지만 그가 일구어 놓은 성과만으로 단순하게 ‘대단하다’고만 평가할 문제는 아니다. 그가 학력의 결핍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기 인정’이다.
“고졸이 죄를 지은 건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자랑할 것도 아니지만요. 인정할 건 해야죠. 현실을 직시하면 길은 열리게 되어 있어요. 물론 쉬운 길은 아닐 거에요. 그렇지만 못할 것도 없죠. 해외 유학 경험이 없으면 셰프를 못한다? 그건 말도 안 되는 거고요. 그동안 안한 만큼의 대가를 치러야하는 건 당연한 몫이죠.”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최현석 셰프가 젊은층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요즘 청춘들은 ‘4포 세대’로 불린다. 취업난이 불러온 결과다.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까지 포기하겠다는 청춘의 씁쓸한 선언이다. 이 같은 상황이 펼쳐지게 된 건 사회적인 분위기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다양한 경험과 시도를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의 태도도 꼬집을 수 있다.
“젊은 애들이 독서실에 쳐박혀 사는 걸 보면 참 딱해요. 뒤 돌아봤을 때 농구 1~2시간 더 했다고 해서 인생이 크게 타락하지 않거든요. 좀 더 다양한 것을 보고 느끼고 감성적으로도 촉촉해져야 할 필요가 있어요. 젊은이들이 저희 때보다 엄청 똑똑하고 정보력도 좋은데 자신감이 없어요. 저희는 배운 건 없어도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해낼 거야’라는 막연한 자신감은 충만했거든요.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배경이 만들어져야 해요. 어른들에게도 책임이 있어요. 아이들에게 분명히 강요한 길이 있을테니까요. 획일화된 문화는 시대를 망하게하는 지름길이에요. 모두가 재미있게 즐기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TV에서 과장된 퍼포먼스를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고요(웃음).”
[뉴스핌 Newspim]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이형석 기자(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