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투자·대기업 지원이 대부분… 숫자 부풀리기 급급
[세종=뉴스핌 최영수 기자] 정부가 의욕적으로 내놓은 수출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해 '소리만 요란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00조원에 가까운 민간기업의 투자계획을 정부 대책으로 포장하는가 하면 중소기업 무역금융 지원도 실상은 엉터리라는 것. 뾰족한 대안이 없는 정부가 정책 '재탕'도 모자라 엉뚱한 내용으로 숫자만 부풀렸다.
◆ 민간기업 투자계획이 정부 대책인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 첫번째)이 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제8차 무역투자진흥회의 결과를 관계부처 합동으로 브리핑하고 있다.<사진=산업통상자원부> |
대책 중 하나는 '제조업 혁신을 통한 주력산업 경쟁력 제고'다. 이 내용엔 '민간은 현재 시장지배력이 큰 주력품목 경쟁력 제고를 위해 91조원 규모의 선제적 설비투자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산업부는 밝혔다.
이 91조원의 근거는 산업부가 지난 2월 주요기업 투자간담회에서 기업들이 밝히 올해 착수 예정인 투자계획 34조4000억원과 올해와 내년 착수하는 주요 설비투자 프로젝트 등을 합한 것이다. 정부는 하는 것 하나 없이 민간의 투자계획을 집계해 '주력산업 경쟁력 제고'란 이름을 갖다붙인 셈이다.
'민간투자를 정부대책으로 볼 수 있냐'는 지적에 대해 박일준 산업부 산업정책실장은 "업종별로 민간에서 투자계획 등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성과를 내는데)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민간협의체를 구성해 적극 지원하고자 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런 방식이라면 91조원이 아니라 몇 백조원 규모의 수출대책을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김영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지역무역협정팀장(연구위원)은 "수출 대책의 전반적인 추진방향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정부가 조급한 마음에 지나치게 정부주도의 정책을 펼치는 것 같다"면서 "정부는 물꼬를 트는 역할만 해야 하는데 급한 마음에 물까지 퍼 나르려는 모습 같다"고 지적했다.
대규모 설비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입지규제 완화가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승관 국제무역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정부가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대책을 내놨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대규모 설비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수도권 입지규제 완화' 등 투자환경 개선이 동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중기 무역금융 16.2조…대부분 대기업 지원용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네번째)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 두번째) 등 관계부처 장관들이 9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제8차 무역투자진흥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김학선 사진기자> |
우선 16.2조원 중 서비스 수출금융 5조원은 ▲글로벌 제약단지 조성시 투자금 지원 ▲ 한국형 병원의 해외진출 지원 ▲제조업과 금융기관 동반진출 지원 등에 쓰일 예정이다. 이는 한눈에 봐도 중소기업의 영역이 아니다.
해외건설 및 플랜트 정책금융 2.5조원(수출입은행 1조원, 무역보험공사 1.5조원)도 고수익 해외건설 및 플랜트 사업을 공동 발굴하겠다는 것으로서 사실상 대기업 지원용이다.
해외 금융기관과 연계한 전대(轉貸)금융 6.6조원도 초보적인 수출중기보다는 이미 해외에 진출한 대기업이 이용하기에 수월하다.
중소기업들이 체감할 수 있는 것은 환율 피해기업 지원액 1500억원과 수출부진 품목 지원액 5000억원, 수출 급성장기업 보증대출 3000억원 등으로 1조원이 채 안 된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독자적인 해외진출이 쉽지 않기 때문에 대기업과 동반진출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라며 궁색한 해명으로 일관했다.
김 팀장은 "(국제유가가 급락한)현 상황에서는 수출대책에 뾰족한 수가 없는 게 사실"이라며 "민간에서 스스로 해야 할 일도 이번 대책에 많이 포함됐는데 효율성과 파급효과를 감안해 정부 예산을 신중하게 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실장도 "대규모 설비투자를 통해 수출경쟁력을 제고하려면 정부가 제시한 4대 구조개혁이 우선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대규모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힘들 것"이라고 조언했다.
[뉴스핌 Newspim] 최영수 기자 (drea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