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리인상까지도 차질 예상"
외국 경제 시장 전문가들은 일제히 '환율전쟁이 시작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따라 대중국 교역량이 많은 한국과 호주 등이 가장 타격을 입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또 중국 정부가 경기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대응한 만큼, 그 파장은 작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11일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달러/위안 고시환율을 6.2289위안으로 제시했다. 전날 고시환율인 6.1162위안보다 1.86% 높은 수준이다.(위안화 가치 하락)
11일 달러/위안 환율 추이 <출처=마켓워치> |
인민은행이 환율을 고시한 이래로 사상 최대 수준의 절하다. 이에 위안화 가치는 3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그 배경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가운데 해외 경제 및 시장 전문가들은 아시아 환율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미국 긴준금리 인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본다.
◆ 환율전쟁 시작됐다
코스피가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 결정에 2000포인트 밑으로 하락한 11일 코스피 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16.52포인트, 0.82% 내린 1,986.65에 장을 마감했다. <이형석 사진기자> |
이에 대해 IMF 중국 담당 대표를 역임한 바 있는 에스와르 프라사드 미국 코넬대학교 교수는 "인민은행이 위안화 약세 움직임과 시장 결정 환율을 더욱 기민하게 결합시켰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스티븐 로치 예일대 시니어 펠로우는 "중국의 움직임이 글로벌 통화 전쟁 위험을 높였다"며 "일회성 조치에 그칠 것으로 믿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는 "취약한 글로벌 경제를 고려한다면 중국이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 1.9%를 웃도는 수준으로 위안화 가치를 내릴 공산이 크다"며 "새로운 글로벌 통화전쟁의 전초전이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의 클라우디오 피론 외환 전략가도 "일회성 조치라는 인민은행의 설명과 관계 없이 환율 전쟁에 대한 논쟁이 재개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위안화 강세가 환율 조정 여지를 부여했다는 해명에 대해서는 "위안화 강세는 그에 대한 대가로 시장에 지속적으로 경고 메시지가 될 것이란 의미"라고 설명했다.
메릴린치는 이번 조치로 호주달러와 뉴질랜드달러, 한국 원화의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중국이 갑작스런 위안화 평가절하를 단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주요 통화들은 미국 달러화 대비로 강세를 보이는 중이었지만, 이번 결정 이후 한국 원화와 대만달러화, 호주달러 등 주요지역 통화들은 일제히 미국 달러화 대비로 1% 내외 약세로 돌아섰다.
일본 엔화 환율도 125엔 선에 접근하면서 2개월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지역 주가지수는 일제히 하락했다. 코스피는 2020선까지 올랐다가 약세로 전환, 낙폭을 확대하면서 1990선까지 내줬다. 또 오전에 2만900선을 돌파하면서 상승하던 닛케이225평균주가지수는 약세로 급반전한 뒤 오후들어 한때 2만600선 아래까지 밀리기도 했다.
다만 이날 유로화와 스위스프랑은 소폭이나마 강세를 유지했다.
◆ 미국 금리인상도 차질 불가피
중국발 환율전쟁이 발발될 경우 미국의 연내 기준금리 인상은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과 달러화 강세로 아시아 주요국들은 이미 상당한 압력에 놓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여기에 위안화 평가 절하는 아시아 주요국 통화에 추가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 중에서도 싱가포르 달러와 한국 원화, 대만 달러가 향후 수개월간 위안화 움직임에 취약할 것으로 제시했다.
스탠다드차타드의 칼럼 헨더슨 외환 리서치 부문 글로벌 헤드는 "중국의 주요 교역국인 한국과 일본, 미국의 수출 경쟁력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중국이 디플레이션을 수출하는 꼴로 아시아 국가 통화에 부정적"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연방준비제도가 연내 금리인상 계획을 연기할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출처=신화/뉴시스] |
그는 "이날 위안화 평가 절하로 미국이 전 세계 디플레이션을 떠앉게 됐다"며 "모든 국가가 물가를 높이려고 통화전쟁에 참전하는 것은 결국 통화가 강세를 보이는 국가에 디플레이션을 수출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달러화가 나홀로 강세에 놓여 가치가 가파르게 절상될 경우 미국 수출기업들이 입을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에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달러화 강세가 더욱 심화돼 수출 기업들에 엄청난 피해가 예상된다.
CME페드와치에 의하면 10일 기준 연준이 9월에 금리인상을 단행할 확률은 54%다.
파이오니어투자의 존 캐리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오는 9월 금리가 아주 소폭 오르더라도 달러화 가치에 미칠 영향은 중대할 것"이라며 "연준의 대응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중국, 경쟁력 저하 막자… 심각성 인식한 듯
앞서 지난달 24일 중국 국무원은 무역 촉진정책의 일환으로 위안화 변동폭을 더 확대할 것이란 방침을 제시한 바 있지만, 이날 급격한 평가절하가 단행될 것이라고 예상한 시장관계자는 거의 없었다. 7월 중국 수출이 8% 이상 급감했다는 소식이 나온 뒤 위안화 강세가 수출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지적은 제기되어 왔다.
특히 글로벌 환율전쟁을 주도해 온 일본과 유럽에 대한 중국 수출액이 급감한 것은 시사적이었다. 1월부터 7월까지 중국의 대일본 수출액은 11%나 급감했고, 대 유럽연합(EU) 수출액도 7.5%나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자물가지수가 6년래 최대폭인 5.4% 하락하면서 위안화 강세에 따른 글로벌 경쟁력 저하가 부담이 됐다는 판단에 확신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경제전문가들은 중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무엇보다도 수출 감소세를 막기 위한 특단책으로 풀이했다. 당장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에 포함되는 절차가 중요하지만 이미 올해는 물건너갔기 때문에, 위안화의 기축통화 편입과 같은 국제화 과제는 좀 더 장기적인 목표로 남기고 당장은 국내경기 방어에 집중하자는 쪽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위안화 평가절하가 당장 중국 증시에는 호재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수출주인 자동차와 전자푸뭉업체가 수혜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항공및 운수업종에는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금융업종에게는 단기적으로 악재이지만, 장기적으로 수출기업 재무여건 개선 등을 통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중국 경기 둔화와 수출 악화에 대한 사후 대응책이란 점에서 큰 호재가 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과 같은 특단책을 사용할 정도라면 중국 경제가 상당히 심각한 상황에 있는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촉발할 수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기선행지수에 따르면 지난 6월 중국 경기선행지수는 19 개월째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주도 경제를 내수 중심으로 전환하는 길은 순탄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은 수출 경기를 부양하는 일이 급해진 셈이다.
한편, 엔화나 유로화와 같은 선진국 주요통화의 경우 중국의 평가절하 조치에도 불구하고 큰 변동성을 보일 것 같지는 않다는 지적이 많다.
이미 유로화와 엔화는 그리스 위기 사태나 미국 금리인상 전망을 환율에 대부분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미국의 시중 금리가 크게 상승하거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경제의 회복에 큰 차질이 없는 이상 이들 주요통화의 변동성도 제한될 것이란 관측이다.
[뉴스핌 Newspim] 배효진 기자 (termanter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