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 비난 심히 유감스런 일
[뉴스핌=최헌규 중국전문기자] 리자청(李嘉誠 리카싱) 운전수가 30년간 일한 뒤 퇴직하게 됐다. 리자청은 전별금으로 200만홍콩달러(약 3억원)를 건넸다. 그러자 기사는 거액의 전별금을 정중히 사양하며 "이미 회장님은 제게 1000만~2000만 홍콩달러(15억~30억원)를 주셨다"는 뜻밖의 말을 했다. 의아하게 생각한 리자청이 "매달 5000~6000 홍콩달러(75만원~90만원)의 월급을 주었을 뿐인데 어찌 그렇게 많은 돈을 받았다는 말이냐"고 묻자 기사는 "늘 회장님의 통화 내용을 듣고 회장님이 사는 주식과 땅에 조금씩 투자해서 그만큼 벌었으니 회장님이 주신거나 마찬가지"라고 대답했다.
이 일화는 리자청 회장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투자의 풍향계이며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곧 돈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이다. 이 얘기는 최근 리자청의 귀신같은 투자 감각을 웅변하는 고사로서 중화권 경제계에 회자되고 있다. 실제 그가 어떤 자산을 사고 파는지, 어느 나라에 투자하는지는 한국을 포함해 세계 모든 투자자들 초미의 관심거리다. 이런 리자청이 올초부터 중국 본토 부동산 자산을 팔고 유럽 등 해외 자산매입에 열중한다고 중국내에서 비난이 들끓어왔다. 관영언론까지 나서서 이런 부정적인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9월 들어서는 '도망자, 먹튀'라는 인신공격성 비난까지 나왔으나 리자청은 일체 응대를 하지 않았다.
침묵하던 리자청이 9월 29일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는 성명을 통해 마타도어식 공세를 가하는 여론이 참으로 무섭고 심히 유감스런 일이라며 섭섭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동시에 연일 쇄도하는 비난에 왜 대응을 안했는지, 중국부동산을 팔면서 왜 철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지, '비 애국자'라는 공격, 중국 공산당과의 불화설 등 온갖 의구심과 논란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한마디로 "중국시장 자본철수는 왜곡된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그동안 비난에 대해 침묵한 것은 시진핑 주석의 방미에 잡음이 될까봐 자제한 것이다"고 털어놨다.
리자청은 자본도피의 대표적 사례로 의혹이 집중되고 있는 역외 기업 설립에 대해서도 "홍콩 상장기업중 국유기업을 포함해 70% 넘는 기업이 역외에 기업을 설립하고 있다"며 일부에서 제기하는 '먹튀'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관계 기업 해외 설립은 기업 현대화를 위한 구조재편의 목적으로서 홍콩 등록 및 거래소 상장, 주주 이익에는 어떤 변화도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상장기업 재편을 통해 관계사를 버뮤다 등 해외에 등록 이전하는 방식으로 중화권 자본 철수를 꾀하고 있다는 논란에 대해서도 리자청은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해외 투자 이익은 모두 홍콩 상장사에 귀속되며 주주들이 최대 수혜자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 애국자' 운운하는 세간의 비난에 대해 리자청은 고대 시인 소동파와 백거이의 시까지 인용해 가며 '마음이 편안한 곳(중화)이 내가 머물 곳'이라는 심경을 토로했다.
리자청은 또 성명서에서 1980년에 설립한 기금회가 현재 세째아들 소유로 돼 있으며 현재 90억달러가 넘는 자금이 기금회에 투자돼 있다고 소개한 뒤 이 기금회는 그동안 170억홍콩달러를 사회에 기부했고, 그중 87%가 대부분 중국에 집중됐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공산당과의 불화설은 사실무근이며 자신이 ' 도망자' '비 애국자'라는 비난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해명이다.
리자청은 사람들이 말하는 중국 부동산 매각 처분과 관련해서도 사실관계를 비교적 소상하게 밝혔다. 무엇보다도 그는 투기적 목적으로 토지를 매점하지 않았고 공개 입찰에 참여해 토지를 매입한뒤 정상적인 영업활동의 일환으로 건물을 지어 분양했다고 밝혔다. 또한 시장 앞날을 예측해 부동산 투자 비중을 줄인 것을 놓고 마치 불온하게 중국 본토 투자를 줄이고 자본을 빼내가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궤변이나 다름없다고 반박했다.
부동산 경기는 경제 바로미터와 같은 것으로, 홍콩과 중국의 부동산 앞날을 밝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토지와 빌딩 등 부동산 매각 포지션을 강화하고 나섰다는게 리자청의 항변이다. 리자청은 2015년들어 보유 부동산을 처분하고 현금을 확보하는데 한층 속도를 냈다. 장강실업이 현재 보유한 투자 목적 부동산은 총 150만평방미터로 줄어들었다. 동시에 리자청은 토지 비축량도 대폭 줄였다.
홍콩부동산은 2003년 부터 무려 12년 연속 상승하며 부동산 불패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최근 홍콩 경제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고 주력 산업인 관광 소매업 성장세가 위축되면서 홍콩 부동산 시장에도 점차 버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리자청 '먹튀'논란이 한창인 와중에 스위스은행 중국홍콩부동산 연구소 책임자는 한 매체 인터뷰에서 "홍콩부동산이 오는 2017년말 까지 25~35% 떨어지면서 장기 조정사이클로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콩 경제계 일각에서는 "리자청은 비범한 투자 감각으로 이런 추세를 사전에 내다보고 시의 적절한 경영적 조치를 취한 것"이라며 "오히려 주주나 기업 사회로 부터 칭송을 받을 일이지 결코 도망자라고 비난 받을 일이 아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뉴스핌 Newspim]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ch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