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양진영 기자] 소녀팬들은 물론 누나들의 마음까지 훔쳤던 '미소천사' 김재원이 '화정'의 악덕 군주 인조로 꽤나 파격적인 변신을 해냈다. 그간 김재원의 밝고 미소 가득한 비주얼로는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최근 종영한 MBC 월화 드라마 '화정'을 끝낸 뒤, 극중 가장 의외의 면을 많이 보여줬던 배우 김재원을 만났다. 총 50부작의 사극에서 중반부 투입돼 절반 정도를 함께 호흡했으니 웬만한 중편 드라마의 스케줄을 소화한 셈이다. '미소천사'를 벗고 용포를 입었던 소감을 먼저 물으니 못내 아쉬운 듯 한탄을 쏟아냈다.
"연기자가 연기를 하면서 필요한 연기력의 충족도나, 현장에서 김재원이라는 친구가 연기자 포지션으로 해야 하는 역할들이 있잖아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중간 포지션이 해야 할 일들, 스태프나 전체 분위기 흐름들을 위해 다양한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많은 인물들이 나오는 사극 콘텐츠라 그런 면이 더 필요했고요. 또 인조 역을 충실히 표현해내기 위해서는 분명 모자란 부분도 있었죠. 지금 보면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기도 하죠.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지 싶어요."
유난히 흰 얼굴에 수염을 붙여 분장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김재원은 '화정' 첫 등장 당시부터 몰라보게 야윈 얼굴로 걱정을 사기도 했다. 그는 나름대로 인조 캐릭터를 위해 일부러 조절을 하기도 했지만, 연기를 위해 고심을 거듭하다보니 절로 몸에서 거부 반응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인조란 인물이 갖고 있는 내면, 심적 분열도가 높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 스스로의 내면과 부딪히는 점이 많았어요. 그런 심리적인 것들을 몸에 집어 넣었을 때 제 성향과 이질적이라 그런지 몸도 반응하는 것 같았죠. 조민기 선배님은 말라빠진 육포 하나가 돌아다니는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체중 감량도 물론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었고요. 끝나고는 다시 조금 쪘어요. 수라상 받고 죽었잖아요. 그 전에는 인조에 대한 대우가 다들 비루하기 짝이 없었거든요."
'화정'을 찍으며 다양한 시청자들의 의견을 보고, 들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사실 스스로의 만족도였다. 7년 만에 돌아온 사극인 만큼 연기하면서 어떤 점을 느꼈는지, 가장 아쉬운 면은 무엇인지를 자연스레 묻게 됐다.
"TV에 나오는 직업 아니었으면 스스로 얼굴을 때렸을 지도 몰라요.(웃음) 못 보겠더라고요. 너무 가까이 인물에게 다가가려다 보니 어떤 게 정답인지 고민이 많았죠. 알면 알 수록 더 힘들었고요. 결론을 갖고 안에서 막 싸웠어요. 인조라는 사람이 악인이라고 평가되는 후세의 흐름이 있지만 개인의 시각에서 보면 어쩔 수 없이 살아온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요. 끝내고 나니까 지난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말자 하고 있죠. 돌이킬 수 있는 힘이 있다면 하겠지만 가능성이 없으니까 앞으로를 준비하는 게 좋은 선택이잖아요."
심약하고 콤플렉스가 많은 악역 아닌 악역 인조. 김재원은 캐릭터에 애착이라기보다 연민을 드러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실 인조는 현재를 살아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를 하고 되돌릴 기회를 얻고자 하는 누군가가 아니겠느냐는 그의 말에 꽤 공감이 됐다.
"악덕 군주로, 단편적으로만 남아있는 역사가 조금 아쉽고 가슴 아팠어요. 불쌍하기도 하고, 이런 슬픔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을텐데. 어떻게 풀면 이걸 극복하는데 도움을 줄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악인에 대한 모습만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죠. 사람들이 그 안에서도 정과 사랑을 느끼길 바랐고요. 실수는 누구나 하는 거고 잘 몰라서 그런 걸 수도 있어요. 모자람은 또 다른 믿음과 기다림과 따뜻한 가르침으로 채워지면 더 좋은 인재가 될 수도 있는 거고요."
김재원의 적극적인 변신 의지가 반영된 것이든, 아니든 간에 변신은 변신이었다. 그가 과연 '미소천사' 이미지를 벗으려는 것인지, 또 겁은 안났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시원시원하게 나오는 대답에서 부드러운 미소천사이기보다 상남자같은 김재원의 원래 성격이 조금씩 드러나기도 했다.
"변신이든 뭐든 겁은 안나요. 잘못했으면 혼나면 되니까요. 못하든 잘하든 부딪혀 보는 건 좋잖아요. 잘하는 날도 있고 못하는 날도 있죠. 남자가 체면이 있지, 쫄지는 않아요.(웃음) 미소천사요? 왜 그걸 벗으라고 할까요. 누구든 입혀진 이미지를 벗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시선들을 잘 추스려보면 좋은 것들도 많아요. 제겐 미소천사 시절이 너무도 좋았던 때거든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수식어를 왜 버리겠어요. 고이고이 잘 간직했다가 힘들 때 어려울 때 떠올리면서 에너지를 받아야죠."
지난 2013년 '스캔들' 이후 '화정'까지, 과거 '로망스'나 '내 마음이 들리니'에 비해 다소 어두운 역할을 선택한 김재원. 조금씩 쌓이는 나이와 연륜 탓일까. 그의 팬 중에는 밝은 이미지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최근 잇달아 젊은 남자 연기자들이 각광받고 있기에 그의 '트렌디 드라마 복귀' 의사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배우로서 보여줄 수 있는 폭이 있는데 그것과 맞는 콘텐츠를 만나면 기분 좋게 참여하게 돼요. 밝은 트렌디 드라마요? TV를 보는데 물론 아직 저도 젊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의 연기를 딱 보는데 못하겠더라고요. 연애나 사랑, 감정 표현도 클래식한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좀 다양해진 것 같고 변화가 느껴져요. 약간 남성적인 느낌이 덜해졌다고 할까요. 사극하면서 400년 전 거 말투 읽다 보니까 안그래도 올드패션이었는데 너무 옛날로 갔어요. 이제 다 씻어 내고 새로운 세대를 맞이해죠. 사실 마음같아선 '뽀뽀뽀'에도 출연할 수 있다니까요. 하하."
김재원은 '화정'에서 신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모두 쏟아낸 만큼 일단은 쉬고 싶다고 했다. 연기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아내와 아들을 둔 가장인 만큼 가정 생활에도 충실할 시간도 필요해 보였다.신비주의는 아니지만, 그는 배우, 남편, 아버지라는 역할에 대해 꽤 확실한 선을 그었다. 그리고 배우로서 가야할 길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얘기했다.
"꿈에는 수많은 상상력이 필요하죠. 다 같은 김재원이어도 연기자 김재원이 이루고 싶은 꿈은 가정 안에서, 외부에서 갖는 생각과는 좀 다를 거예요. 연기자로서는 그냥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에요. 천재 중에 가장 멋있는 게 노력형 천재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잘 쓰고 싶어요. 노력에 대한 결과에 대해서는 언젠가 올바른 콘텐츠, 만족도 높은 컨텐츠로 지혜롭게 보여드리고 싶어요."
'숨겨진 유부남' 김재원? "연기자의 삶와 가정 생활은 별개" 지난 2013년 지금의 아내와 결혼식을 올린 김재원은 벌써 3년차 유부남이다. 얼마 안돼 득남 소식까지 밝혔지만 아직까지 그가 기혼임을 모르는 이들도 많다는 건 내심 뿌듯해할 일일지도 모른다. 육아 예능을 통해 연기와 예능, 가정 생활까지 두루 공략하는 '유부남 배우'들도 늘고 있지만 김재원은 둘 사이에 정확한 선을 긋고 싶어 했다. "연기자와 가정의 교집합을 보여드릴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아요. 배우로서 내가 생각하고 가려고 하는 길과 꿈, 계획이 있는데 가정에서는 약간 달라요. 개인적으론 늘 제안이 들어온다면 모르지만 나서서 어필하거나 부탁을 하는 건 잘 못하기도 하고요. 나로서의 모습으로 충분히 영역을 넓힐 수 있을 거라 봐요. 그렇게 하는 게 또 제 몫이고요. 아들이요? TV에 아빠 나오는 거 보면 알아보고 좋아하기도 해요. 눈 높이에 맞추기보다, 분명히 이해를 못할 거라는 걸 알지만 계속해서 설명을 해줘요. 뭐든지 받아들이기에 따라 다를 수 있잖아요. 난이도에 맞는 어린이 드라마보다 어려운 콘텐츠를 그냥 같이 봐요. 아마 재미가 없겠지만 뭐 하나의 포인트에 재미를 느낄 수 있게끔 유도하는 편이에요." |
[뉴스핌 Newspim]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 [사진=윌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