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박민선 기자] 여의도 증권가에서 때아닌 눈치게임이 한창입니다. 각 증권사의 파생결합증권(ELS) 담당자들이 수차례 모여 머리를 맞댔지만 이렇다 할 묘책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증권사들은 위로는 당국, 옆으로는 경쟁사들의 분위기를 살피며 복잡한 계산에 들어갔습니다.
바로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이하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지난 8월 금융위원회는 급격히 불어난 ELS 시장에 대해 점검하는 자리에서 홍콩 H지수로의 쏠림현상에 대해 지적했었죠. 당시 중국 증시의 하락 등으로 지수형 ELS의 녹인(Knock-In) 우려가 제기되자 당국은 "특정지수로의 쏠림현상은 문제가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해법은 업계가 자율적으로 마련하라며 공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업계 입장에서 당국의 눈높이에 맞는 '자율적 대안' 마련이라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몇가지 대안(H지수 ELS 발행을 전체의 30% 미만으로 유지하는 방안 등)이 물망에 올라 있지만 특정 기준치에 맞춰 발행량을 조율하는 자체가 시장 간섭인 만큼 그들이 생각하는 '자율'과는 동떨어진 조치니까요.
또 업계가 내놓는 대안을 당국이 그대로 수용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표면상으로는 업계의 의견을 듣겠다고 했지만 당국의 '심사'에서 적정 수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거절될 확률을 배제할 수 없으니 자꾸 당국의 눈치만 살피게 됩니다.
실제 금융위원회는 "쏠림현상을 줄일 수 있는 충분한 방안을 업계가 만들어와서 우리와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방안이 만들어지면 이에 대해 들어봐야 할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이같은 이유 때문에 업계 일각에선 당국이 보다 정확하게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시장 논리에 완전히 맡기는 자율도 아니고, 규제에 대한 아무런 적정 기준이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율을 강조하는 것은 되레 시장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지적이죠. 더구나 논의가 시작된 계기 자체가 업계의 자발적인 문제제기에 의한 것이 아닌데 자율적 대안을 만들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의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NH투자증권, KDB대우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은 9월 한달간 중단했던 H지수 ELS 발행을 일부 재개했습니다. H지수가 고점대비 30% 가량 하락하면서 조기상환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규 발행 물량의 경우 반대로 투자 메리트가 이전보다 더 높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증권사들은 이들 ELS의 안정성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기초자산 최초기준가격의 50~65%였던 녹인구간을 45~55% 수준으로 내려 잡았습니다. 희소성에 투자 메리트까지 더 높아지자 시장의 반응은 예상보다 더 뜨겁습니다. 다른 중소형사들에서도 발행 재개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당국의 눈치를 살피느라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당국이 요구한 '자율적 방안' 마련과 수익성이 창출되는 '고객 수요' 사이에서 증권사들이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시간은 하릴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한 증권사 임원은 H지수 ELS를 둘러싼 작금의 혼란이 시작부터 어긋난 규제의 부작용이라고 말합니다. "당국이 문제를 제기한 타이밍 자체가 시장의 건전한 성장을 위한 사전조치가 아닌, 책임 회피를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뒷북 지적의 성격이 강했던 탓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는 "시장이 자연스럽게 조율될 수 있도록 폭넓은 범주에서 관리 감독하는 것이 당국의 역할인데 뒤늦게 억제시키려다보니 엇박자가 나고 있는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시장의 혼란과 애매모호한 당국의 태도로 인한 피해는 또다시 투자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당국이 지적했던 쏠림현상에 따른 부작용이 위험 수위에 도달한 것이라면 일부 증권사들의 ELS 발행 재개는 리스크에 노출되는 투자자를 더욱 늘리고 있는 일입니다. 반대로, 지수 하락에 따른 투자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눈치게임으로 인해 상품 발행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라면 투자자들의 투자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셈이죠.
임종룡 금융위원장 취임 이후 금융당국은 유난히 자율성을 강조하며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는 자율이 아닌,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규제가 필요한 경우까지 자율을 강조하는 것은 '악수'가 될 수 있습니다.
"특정지수로의 쏠림현상은 투자자 손실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제기가 이뤄진지 어느덧 50여일이 지났습니다. 당국이 처음 의도했던 '자율적 규제'의 기준에 대해 보다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면 시장의 방황은 한동안 더 지속될 공산이 높아 보입니다.
[뉴스핌 Newspim] 박민선 기자 (pms071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