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이현경 기자·사진 김학선 기자] “그냥, 너무 외로웠다. 이 세상에 혼자서만 숨을 쉬는 기분. 그게 너무 서러워서 엄마를 보면 좀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최근 종영한 SBS ‘마을-아치아라의 비밀’ 중 김혜진(장희진)의 명대사 중 하나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친엄마 윤지숙(신은경)에게 혜진이 쏟아놓듯 꺼내는 말이다. 성폭행을 당해 낳은 딸 혜진, 그리고 딸을 볼 때마다 악몽이 떠오르는 엄마 지숙. 이 두 사람의 안타까운 인연은 보는 사람까지 먹먹하게 했다.
올 하반기 화제의 드라마 ‘마을’은 평화로운 마을에 암매장된 시체가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추리극이다. 폭넓은 시청자를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마니아들에게는 널리 호평을 받았다. 칭찬이 잇따랐던 이유는 탄탄한 스토리 아래 사연 많은 인물들이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한 많았던 인물들의 메시지는 극의 재미를 높였다.
그중에서도 살인 사건의 피해자였던 혜진에 시선이 쏠렸다. 주로 회상신에 등장한 그는 신비하면서 묘한 분위기로 의문의 죽음에 대한 단서를 던져줬다. 혜진 역을 맡은 장희진은 ‘마을’ 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은 작품이 오랜만이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매 장면 쉽지 않았어요. 혜진의 말 한마디가 극의 복선이라 대사 한 마디, 눈빛 하나라도 염두에 두고 연기했어요. 특히 극 말미로 갈수록 몰입도가 높아져서 혜진의 임팩트도 덩달아 커졌죠. 사실 시작할 때부터 감독님은 분량이나 캐릭터에 대해 확신을 줄 수 없다고 했어요. 그래도 저는 무조건 작품의 힘을 믿었어요. 그냥 큰 그림만 보고 따라간 거죠. 그 결정에 후회 없어요. 굿 초이스였죠.”
장희진이 ‘마을’에서 가장 기억나는 장면은 엄마와 만나는 신이다. “엄마를 찾고 싶었던 이유는 핏줄 때문도, 꼭 살고 싶어서도 아니야. 그냥 외로웠어.” 이 대사가 주는 무게감은 장희진에게도 컸다. 대사를 보는 순간 울컥했다. 혜진의 숨겨왔던 아픔이 터진 이 장면은 장희진에게 고스란히 와닿았다. 그래서인지 NG 없이 한 번에 갔다. 특히나 가장 마지막 촬영 장면이라 더욱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대사를 읽기만 해도 슬펐어요. 연기하면서도 혜진이가 너무 안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집중도 더 잘 됐고 NG 없이 한 번에 갔죠. 신은경 선배가 제게 처음으로 잘했다고 칭찬해 준 장면이기도 하고요. 정말 3개월간 혜진이로 살면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에요.”
혜진이를 생각하면서 그 또한 자신이 가장 외로운 순간을 떠올렸다. 장희진은 “항상 외롭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이유도 여러 가지다. 서른을 넘기면서는 결혼에 대한 생각도 많아졌고 아무래도 감정을 많이 쓰는 배우 일을 하다 보니 외로움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됐다.
“항상 외로워요. 지금도 그렇고요. 남자친구가 없거든요(웃음). 최근에 첫 눈 오는 날에 집에 혼자 있는데 엄청 쓸쓸하더라고요.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리는데 같이 볼 사람도, 얘기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옆에 누구라도 있으면 행복했을 텐데 말이죠. 그런 생각을 하니까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왔죠. 30대가 되니 20대 때 느꼈던 외로움과 또 다른 의미의 외로움이 느껴져요. 이제는 함께할 누군가와 이 외로움을 나누고 싶네요.”
장희진은 ‘마을’에 참여하면서 가족에 대한 진한 소중함을 느꼈다. 극중 혜진의 소원은 행복해지는 것. 혜진의 행복이 가족이었듯 장희진의 행복도 마찬가지다. 그는 최근 독립하면서부터 엄마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엄마의 빈자리를 더 크게 느끼고 있다며 전보다 자주 연락하고 집에 가서 엄마와 더 시간을 보낸다.
“작품하면서 엄마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아마 독립한 지 얼마 안 돼서 더 그런 듯해요. 저도 서른이 넘었고 엄마 곁에 계속 있을 수 없단 생각이 들어서 혼자 나와서 살게 됐어요. 물론 경제적으로도 독립했고요. 확실히 떨어져 있어야 서로의 소중함을 아나 봐요. 그래서 엄마와 가족을 더 챙기려고 해요. 그러면서 제 주변인들까지 돌아보며 연락하고 있어요.”
어느새 데뷔 13년 차인 장희진.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흐른 지도 모른 채 앞만 보며 달려왔다. 매번 상처를 주거나 질투하는 역할을 맡았던 그는 이젠 사랑받는 캐릭터를 희망했다. 쉬지 않고 작품과 함께한 장희진의 연기 열정은 물론 앞으로도 계속된다.
“10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갔나 싶어요. 정말 쉬지 않고 연기했어요. ‘마을’에 들어가기 전 MBC ‘밤을 걷는 선비’에 출연했는데 10년 넘게 연기를 해왔는데도 저를 처음 봤다는 스태프들이 많더라고요. 저에 대해 관심 없는 사람들은 제 대표작을 찾아보지 않으니까 당연하죠. 그래서 ‘섭섭하다’면서 ‘제 작품 좀 찾아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죠.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이번 ‘마을’로 탄력받고 용기내서 맘껏 연기하고 싶어요. 이제는 사랑받는 역할이 많이 들어오면 좋겠어요.”
하필이면 SBS ‘마을’의 상대작 MBC ‘그녀는 예뻤다’에도 김혜진이 등장했다. 동명이인, 그러니까 이름은 같지만 다른 인물. 게다가 캐릭터도 정반대였다. 장희진이 맡은 ‘마을’의 김혜진은 아픔이 많은 비운의 여주인공이었다면 ‘그녀는 예뻤다’의 황정음이 맡은 김혜진은 외모 역변의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 비타민’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활기 넘치고 정 많고 보기만 해도 웃음이 터지는 그런 여자. 사실 시청률에서는 ‘그녀는 예뻤다’가 ‘마을’에 훨씬 앞섰다. 하지만 인기나 화제성 만큼은 ‘마을’도 만만치 않았다. 동시간대 경쟁작 ‘그녀는 예뻤다’를 본 적이 있냐고 물으니 장희진은 “재미있게 봤다”면서 “시청률이 잘 나올 만하다”고 했다. 이어 “이름도 유행을 타나”라며 극중 자신과 같았던 김혜진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망가지는 캐릭터에 대한 관심도 드러냈다. “상대작 ‘그녀는 예뻤다’는 저도 가끔 봤어요.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또 다른 김혜진 역할의 황정음 씨 연기가 정말 통통 튀고 잘 살더라고요. 황정음 스타일의 로맨틱 코미디가 이제는 특화된거죠. 음, 저도 망가지는 연기 할 수 있냐고요?(웃음) 그럼요. 물론 정음씨와 다른 스타일이겠지만요. 저는 완벽하기보다 부족함이 보이는 사람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마음 푹 놓고 망가지는, 혹은 역변 캐릭터도 연기해보고 싶어요. 좀 더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면 좋겠어요. 장희진의 로맨틱 코미디가 궁금하지 않나요?(웃음)” |
[뉴스핌 Newspim] 글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사진 김학선 기자(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