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현경 기자] 대중에게 친근한 매력으로 다가왔던 공형진(47)이 데뷔 25년 만에 악역을 맡았다. 그야말로 배우 공형진의 화려한 외출이었다.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악역을 이번 기회에 속 시원히 해냈다.
최근 종영한 SBS 주말드라마 ‘애인있어요’에서 권력에 눈이 멀었던 민태석을 연기한 공형진은 악역답게 매회 긴장감을 주며 시청자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숱한 화제 몰이 속에서 종영한 ‘애인있어요’였기에 공형진 역시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그는 50부작을 마무리하고서도 석달은 더 하고 싶은 마음이라며 애써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8개월 동안 제작했고 6개월간 방송이 됐죠. 마지막 촬영을 하고 막방까지 했는데 참 섭섭하고 서운했어요. 배우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참 좋았고 제가 지금까지 작품에서 하지 못했던 포지션, 캐릭터를 할 수 있게 돼서 너무나 뜻깊은 시간이었죠. 나름의 기대감을 갖고 시작한 드라마라 그런지 끝나고나니 그 서운함이 쉽게 없어지지 않네요.”
그가 악역에 도전할 수 있었던 건 ‘애인있어요’를 연출한 최문석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공형진은 SBS 공채 1기 탤런트, 최문석은 SBS 1기 PD 출신으로 동기다. 그간 조연출과 배우로, 그리고 기획자와 연기자로 작품을 해왔다. 공형진은 최문석PD가 기획한 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과 ‘엔젤 아이즈’에 출연하는 등 서로의 이름만 보고도 작품을 결정할 만큼 신뢰가 깊다.
그러다 5년 만에 최문석PD가 직접 메가폰을 잡은 드라마 ‘애인있어요’로 다시 만난 두 사람. 최문석PD는 공형진에게 러브콜을 했고 공형진은 친한 형이자 동기인 최문석이 건넨 손을 기분 좋게 잡았다.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최문석의 연출이라는 이유만으로 출연을 결정했다.
“형이 연출하는 드라마라고 해서 ‘무조건 하겠다’고 했어요. 배역도 정해진 게 없었는데 일단 그냥 ‘한다’고 답했어요. 형에 대한 믿음이죠. 형도 의아해 했어요. ‘도대체 무슨 배역인줄 알고 덥석하느냐’고하더군요. 나중에 제 캐릭터에 대해 들었는데 ‘천하에 나쁜놈’이라 했어요. 듣자마자 제게 이런 기회를 준 최문석PD에게 고마웠어요. 그 후 시놉을 읽어보니 더 마음에 들었고요. 민태석이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다가왔거든요. 그래서 기대와 설렘을 안고 시작하게 됐죠.”
‘애인있어요’에서 민태석은 만만치 않은 악인이었다. 그야말로 도덕적 가치관보다 야망이 더 큰 인물이었다. 그는죄책감 하나 없이 자신의 방식으로 사람의 목숨도 좌지우지 하려 했다. 최근 작품 속 악역 못지 않게 주목을 받았다. 최근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나 SBS ‘리멤버 아들의 전쟁’의 남규만 역시 소름끼치는 역대급 악역 캐릭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공형진은 민태석에 대해 “조태오와 남규만과 달리 민태석은 애초부터 아무것도 없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조태오와 남규만도 매력적이죠. 민태석과 다른점은 실세라는 것. 민태석은 사냥개였고요. 신분상승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죠. 그리고 그 한을 풀기 위해 애를 쓴다는게 악수가 거듭됐고 장고하다가도 악순환이 끊이지 않았죠. 아마 남규만과 조태오가 민태석 같은 일을 당했다면 그들의 말 한마디로 금방 풀려났을 거예요. 하지만 민태석은 감옥으로 가죠. 그래서 나름 연민이 생길 수밖에 없는 캐릭터예요.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애인있어요’는 이혼한 도해강(김현주)이 남편 최진언(지진희)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초반 드라마는 불륜, 막장 논란에 시달렸다. 그렇지만 화제성은 높았다. 야구 중계 관계로 결방했을 때 시청자의 불만은 대단했다. 이제 야구 중계는 스포츠채널에서 하고 드라마를 해달라는 시청자의 의견이 쏟아졌다. 공형진은 드라마가 사랑받게 된 이유가 이야기의 신선함과 배우 김현주, 지진희의 열연이라고 자체 분석했다.
“생소한 소재였죠. 불륜 때문에 이혼을 했고 하지만 이혼한 남편과 아내가 다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라는게요. 그런 경우가 현실에서 없지는 않죠. 하지만 보편적이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뚝심있는 흐름이 신선하고 새로웠어요. 그 이야기를 마치 실제인양 연기하는 김현주가 드라마의 흥행에 일등공신이고요. 그리고 남성적이고 부드러운 매력의 지진희의 매력도 만만치 않았고요. 민태석이요? 다른 건 몰라도 긴장감을 주는데 일조하지 않았을까요?”
연기 생활 25년차인 공형진은 연기가 하면할수록 어렵다고 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는 순환이라고. 자신이 연기를 잘했다고 한 작품도 3개월 후에 다시 보면 만족감보다 아쉬움이 샘솟는다고도 했다. 아쉬움만큼이나 연기에 대한 욕심도 상당하다. 자신보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볼때면 여전히 자극이 된다.
“늘 연기하면서 기대되고 설렘은 깊어져요. 덩달아 더 힘들긴 하죠. 순환선처럼 생각 이상의 것들이 생겨나고 더 연구하며 연기해야하니까요. 연기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 큰이 났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죠. ‘연기 못한다’는 소리는 더 듣기 싫으니까요. 저는 톱스타도, 한류스타도 아니예요. 내세울 수 있는 건 연기 단 하나, 그러니 어설프게 할 수 없는 거고요. 이런 마음이 저를 더 긴장시키지만 막상 연기를 하다보면 참 행복하고 즐거워요.”
25년간 연기생활을 하며 자신을 다잡아준 마음 속 한 마디가 있냐는 질문에 그는 “이제 마지막이다. 그렇군. 마지막이군”이라고 했다. 당시 4수생이었던 동생의 노트에 적힌 글이었다. 그걸 보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되뇌고 있다. 그는 언제 올지 모르는 마지막 순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절실함을 갖고 연기한다고 했다.
“동생이 서울대를 가려고 4수를 했어요. 그러다 고대 경영을 가긴 했지만요. 동생의 책상에 놓인 연습장에 뭔가 쓰여 있더라고요. ‘이제 마지막이다. 그렇군. 마지막이군’이요. 언젠가는 마지막 순간이 오겠죠. 그게 언제가 될지라도 그 순간을 오롯이 받아들일 순 없을 듯해요. 그래서 작품을 할 때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해요. 절실한 놈은 살아남거든요.”
[뉴스핌 Newspim]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사진 씨그널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