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양진영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스틸하트 보컬 밀젠코 마티예비치가 모든 것을 떨치고 한국에 왔다. 미국과 전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던 록스타가 한국에서 활동한 건 전례가 없는 일. 밀젠코는 히트곡 'She's Gone(쉬스곤)'에 보낸 한국팬들의 사랑과 끊임없는 열정을 들며 아시아 무대 중 바로 한국을 택했다.
밀젠코 마티예비치는 8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SR호텔에서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비밀인 듯 비밀리에 진행된 MBC 드라마 '화려한 유혹' OST 참여와 예능 프로그램 '일밤-복면가왕' 출연 비하인드를 직접 밝혔다. 한국 회사와 계약을 맺고 아시아를 주 무대로 활약하고픈 포부도 아낌없이 드러냈다.
스틸하트의 'She's Gone(쉬스곤)'은 말하자면 한국 남성들에게 '로망'인 곡이다. 높게 내지르는 고음과 곁을 떠난 그녀가 돌아오길 바라는 애절한 가사, 애절한 멜로디가 어우러진 명곡으로 고등학생부터 50대 아저씨까지 이 곡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특히 '복면가왕'에 밀젠코의 출연 소식이 솔솔 흘러나오고, 실제로 그가 가면을 벗었을 때 적지 않은 이들은 깜짝 놀랐다. 방송 중 패널인 이윤석은 오랜 팬이던 그를 실제로 영접(?)하고 놀라 무릎까지 꿇을 정도였다.
"'복면가왕' 출연은 현재 소속사가 이거 먼저 해보면 어떨까 제안해서 시작했죠. 사실 많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그게 시작점이 됐고 설레는 경험이었어요. 가면 쓰고 노래한 게 정말 도전이었죠. 그게 굉장히 타이트해서 어려움이 있었고 호흡이 잘 통하지도 않았어요. 끝날 때 쯤에는 가면 뒷부분이 부러져서 고정시키느라, 입 속에 망사 천이 들어가서 고생하기도 했지만. (웃음) 다행히도 방송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죠."
밀젠코라고 처음부터 정체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외국인 가수가 '복면가왕'에 나온다는 소식에 한국팬들은 어쩐지 그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사실 그의 정체보다도 놀라웠던 건 그가 '복면가왕' 무대에서 소화한 한국 곡의 완성도. 첫 번째 듀엣 무대에서 선보인 라디오스타의 'CREEP(크립)'에서 밀젠코의 정체를 확신하던 이들도 솔로곡 무대를 듣고는 반신반의 했을 정도였다.
"'복면가왕' 무대를 준비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았죠. 정말 놀라운 아이디어의 쇼였고, 전부 다 어려웠어요. 한국 노래를 추천받고 배우기 시작했지만 모든 사람들을 속여야 하는 압박감이 심했죠.(웃음) 특히 발음할 때 '으'라든지 ㅂ, ㅍ발음이 무척 어렵더군요. 무대 위에서 외국인이란 사실조차 숨겨야 했으니까요. 처음 '고해'를 배우고 '비와 당신'까지 하게 됐는데 그냥 노래를 부르는 것과 발음까지 완벽하게 준비하는 건 천지차이죠. 정말 고생했어요. 또 녹화 현장에서 한국말을 모르는데 패널들의 질문들이 오가는 상황이 혼란스러웠어요. 그저 '고개 끄덕하라'는 지시를 받고 행동을 해야 했고. (웃음) 하지만 사람들이 긴가민가 외국인인가 하는 상황들이 너무 재밌었고 힘들었지만 즐거웠죠."
밀젠코에게 '복면가왕'으로 한국 활동의 물꼬를 트게 해준 현재 소속사는 배드보스컴퍼니라는 작은 연예매니지먼트 회사다. '복면가왕' 이전에 MBC 월화드라마 '화려한 유혹'의 OST를 부르기는 했지만 그가 작은 한국 회사와 계약하고 '복면가왕'에 나오고, 한국 활동을 시작할 거라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이 과정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현재 회사와 관계는 하늘이 준 기회같이 느껴질 정도로 좋아요. 회사 사람들이 저와 한 약속을 다 지켜줬고 해주기로 한 일들을 해왔고 모든 일에 성실하게 임해줘서 형제같이 돈독한 정을 느끼죠. 한국은 언제나 내게 특별한 곳이었어요. 이곳은 굉장히 편안한 분위기고 히트곡인 'She's Gone(쉬스곤)'이 굉장히 유명하고 인기를 얻었고 그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항상 한국과 스틸하트는 연결돼 있다고 느꼈고, 소통이 굉장히 잘 되는 곳임을 직감했죠."
밀젠코가 '복면가왕'에서 부르기도 했던 'CREEP(크립)'의 주인공, 라디오헤드는 원히트원더의 운명을 만들어준 이 곡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알려졌다. 스틸하트의 'She's Gone(쉬스곤)' 역시 국내에서는 마찬가지인 상황. 밀젠코에게 이 곡에만 열광하는 한국팬들의 사랑이 조금은 부담스럽거나 어디에서도 '쉬스곤'만 찾는 사태(?)가 조금 야속하지는 않을까.
"전혀요. 어디에서든 'She's Gone(쉬스곤)'만 불러달라고 해서 부담스럽지도 서운하지도 않죠. 제겐 영광스럽고 행복하고 마치 선물같은 일이에요. 다만 앞으로 5월 쯤에 신곡들이 나올 예정이고 제가 참여한 '화려한 유혹' OST 곡에도 많은 기대가 돼요. 'My love is gone(마이러브이즈곤)'을 포함해서 새로 나올 곡을 꼭 들어봐줬으면 좋겠고요. 5월엔 일단 영어로 신곡이 나올 예정이에요. '쉬스곤' 외에 이전 곡들 중 추천곡은, 사실 지금 떠오르는 건 'Can't stop loving you(캔트스탑러빙유)'라는 곡이네요. 좋아하는 곡은 너무 많아 다 나열할 수는 없어요. 하하."
밀젠코를 만나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역시 '쉬스곤'을 향해 유난히 강력한 한국팬들의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 한국 음악팬들이 완벽한 '고음'을 선호하긴 하지만 세계 유수의 뮤지션들이 고음 하나만으로 '쉬스곤'처럼 전세대에 걸친 사랑을 받지는 않는다. 그에게 고음이란 음악을 할 때 얼마나 중요한지, 과연 고음 외에 한국인에게 먹힌(?) '쉬스곤'의 매력은 어떤건지 밀젠코에게 직접 이를 물어봤다.
"음악은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해요. 영혼들끼리 연결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죠. 내 생각과 영혼을 밖으로 모두 표출하는 것이 제 음악이에요. 저음을 통해서도 충분히 많은 것들을 표현할 수 있고 고음을 내는 것조차도 하나의 표현에 불과하다고도 봐요. 하지만 동시에 고음에서는 바닥에서 끌어올리는 힘이 있고 질렀을 때 나오는 에너지를 많이 느끼고 사랑해주죠. 한국의 음악과 제가 가장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열정적이라는 점. 그게 쉬스곤에서 많이 나타나죠. 사실 많은 한국팬들은 감정적인 부분에서 공감하는 거겠죠. 가사도 당연히 중요해요. 모두 제 경험에서 나온 얘기고, 겪은 일들이고 제 삶과 내 감정들을 나타내주죠. 그래서 전연령층의 남자들이 공감하고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스틸하트로 활동 중인 그는 현재 한국에서 활동을 예고했지만, 언제든 밴드가 다시 모일 수 있음을 상기했다. 과거 머리 부상으로 고생했던 밀젠코는 끔찍했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지금은 다 괜찮아졌다"고 걱정하는 팬들을 안심시켰다. 그는 "추천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부상으로 인해 내 인생은 송두리째 달라졌고 지금 굉장히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한 상태"라고 말했다.
"머리 부상은 지금은 많이 나아졌고 현 시점에서는 그간 느낀 중 가장 건강한 상태예요. 당시에는 굉장히 힘들었죠. 7개월간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고 기억력도 많이 잃었으니까요. 오래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도 못했지만 지금은 많이 극복했죠. 스틸하트는 현재 전혀 해체 상태가 아니에요. 바로 1년 전에도 공연을 함께 했고, 만약 한국팬들이 스틸하트를 다같이 보길 원한다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있어요. 하자고 제안을 할 수도 있고 한국 측에서 밀젠코의 아시아밴드를 결성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 오고가기도 하고요. 하하."
당장 5월에 낼 신곡과 '복면가왕'과 비슷한 곤셉트의 TV쇼를 예정하고 있다는 밀젠코 마티예비치. 직접 부른 '화려한 유혹' OST 'My love is gone(마이러브이즈곤)'의 뮤직비디오를 바로 전날 찍었다는 그는 "실제 뮤직비디오에 여자친구와 함께 출연한다. 실연에 아프고 낙심한 상태로 찍어야 해서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자고 수염도 못깎았다"고 말하며 웃음을 줬다. 한국에서 경험한 음주, 음식 문화를 이야기하던 그는 '쉬스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노래방에 관한 이야기에 역시 웃음을 터뜨렸다.
"소주는 초록색 악마예요. 맛봤을 때 정말 악마같았죠. 건강과 목소리를 관리하기 위해 술을 취하도록 마시지 않고 담배도 안피우고 마약도 안해요. 재능이 있는데 관리하지 않고 소홀하면 빼앗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가끔은 술을 즐기지만 취하지 않는 선에서만. 한국 음식은 국이나 찌개도 좋고 돼지고기 등 많은 것을 맛봤죠. 가장 신나는 건 어느 식당에 갔을 때 100가지 접시가 넘는 음식이 나와 골라 먹을 수 있다는 거예요. 노래방은 사실 몇년 전에 친구들과 가본적 있지만 '쉬스곤'은 무대에서만 부를래요.(웃음) 혹시 모르죠. 제가 술에 잔뜩 취하면 노래방에서 불러볼지도."
밀젠코 마티예비치는 지난해 스틸하트로서 록 페스티벌 무대에 선 이후 올해에도 다양한 곳에서 한국팬들을 만나길 소망했다. 지독한 부상을 겪고, 현재 스틸하트와는 별개로 한국 활동으로 어쩌면 제2의 음악 인생을 선언한 밀젠코. 그는 한국의 환대를 향해 무한히 애정을 드러내며 음악 외에 모든 부담감을 떨치고 싶은 바람을 내비쳤다. 여유와 관록의 록스타가 아시아의 작은 나라를 택한 이유였다.
"항상 한국의 환대가 좋았어요. 한국인들이 음악적으로 까다롭게 받아들인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를 투명하게 그대로 봐주고 받아들여주는 모습이 좋았죠. 그게 고스란히 느껴지니 자꾸만 한국에 오고 싶어요. 음악에 몰두해있는 일 외에 현재로서는 자유롭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죠. 미국에 있는 집도 팔아버리고 여행도 다니고 무게로 느껴질 만한 것들은 다 버리고 싶어요. 어떤 부담감도 느끼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이루고 싶은 일에 도전할 겁니다."
[뉴스핌 Newspim]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 · 이형석 기자(leehs@newspim.com) 페이스북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