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안정 위한 미세조정...미국 정치적 스탠스 부담
[뉴스핌=허정인 기자] 미국 재무부가 환율보고서를 곧 발표한다. 4월과 10월, 연 2회 발표하는 이 보고서는 주요 교역 대상국의 환율정책을 평가한다. 당국 개입 등 인위적인 힘으로 자국 통화를 절하시키는 국가를 제재하기 위해서다.
이 보고서가 발표될 때마다 한국 정부와 시장은 긴장한다. 보고서에서 '환율조작국'으로 지목되면 미국과의 교역에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2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외환당국은 올들어 총 76거래일 중 절반 가량인 31거래일 동안 미세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외환시장의 등락폭이 커지면 환율이 특정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외환당국이 나서는데, 이를 미세조정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 제이콥 루 미 재무부 장관은 지난 15일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한국의 환율 정책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정책 투명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춘계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는 제이콥 루 미 재무장관 <사진=블룸버그> |
◆ "환율 조작 아닌 금융시장 안정 목표로한 미세조정"
외환시장도 긴장하고 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 의회는 우리나라에 제재를 가할 수 있다. 원화가치는 오를 수밖에 없다. 환율조작국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달러/원 하락(원화강세)을 방치해야 하고 이때 투기세력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위안화의 프록시 통화(대리 통화)로 여겨지는 원화다.
다만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대체로 "환율조작국으로 선정될 확률이 적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당국 개입으로 원화 강세도 막았지만 과도한 약세도 막았기 때문이다. 즉 수출 증진을 위해 원화 약세만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 외환시장이 과도하게 출렁일 때 당국이 금융안정에 나섰다는 얘기다.
서대일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과 선물환 포지션 증감액을 통해 외환시장의 개입 정도를 간접 추정해 보면 한국의 외환정책은 작년 하반기 이후 금융안정을 우선시한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이 한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평가할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환율보고서에 우리나라가 환율조작국 대신, 심층대상국(환율조작의심국)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 유독 한국만 긴장하는 이유?
오히려 시장전문가들이 민감하게 고려하는 사항은 미국의 정치적 스탠스다. 미국 재무부는 환율조작국을 선정할 때 세 가지 기준을 둔다. 과도한 대미 무역흑자, 과도한 경상수지, 한 방향으로 외환시장에 개입 여부다. 모두 미국을 대상으로 한다.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 대만과 함께 대표적인 대미 무역흑자국이다. 하지만 유독 긴장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일본은 '엔고' 현상이 두드러져 조작국으로 꼽힐 가능성이 적고, 중국은 경제규모가 워낙 커 미국의 개입이 쉽지 않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은 사실 미국이 건드리기 쉽지 않은 국가"라면서 "독일도 흑자가 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 초점이 맞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설화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이 환율조작국에 선정된다면 중국도 선정되는 게 맞다"면서 "중국이 작년 8월 환율제도를 변경하면서 개입강도는 완화됐다고 볼 수 있지만 여전히 한국에 비해중국이 많이 개입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뉴스핌 Newspim] 허정인 기자 (jeongi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