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범준 기자] 21일 새벽 서울중앙지법(성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은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51)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해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전날 오전 10시30분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된 지 약 18시간 만이다.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은 이날 영장실질심사에서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적 없다"고 계속해서 혐의를 부인했지만 결국 구속됐다.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이 박근혜 정권에 비판적인 '좌파성향'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실질적으로 작성하고 관리에 관여했다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지난 18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법원이 상당 부분 인정한 것이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 이형석 기자 leehs@ |
지난달 26일 박근혜정부 초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유진룡 전 장관이 모 방송사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재임 당시 있었던 문화계 블랙리스트 실체를 폭로하면서 '블랙리스트' 존재가 사실이라는 주장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유 전 장관은 이날 인터뷰를 통해 "리스트를 본 건 2014년 6월경으로 기억하고요. 그리고 리스트 이전의 형태로는 구두로, 수시로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라고 하면서 문체부로 전달됐습니다"고 밝혔다.
그후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결산청문회(7차)에 참석한 조윤선 문체부 장관을 상대로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은 집요하게 "문화 예술인 블랙리스트 문건이 존재하는 게 맞냐"고 추궁했고, 결국 조 장관은 "특정 예술인들의 지원을 배제하는 그런 명단은 있었던 것으로 판단이 되고 있습니다"며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시인했다.
이어 지난 17일 소환조사에서 조 장관이 "모든 것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였다"는 자백을 확보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특검이 이날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을 동시에 소환함으로써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만들었고, 결국 조 장관의 자백을 받아낼 수 있었던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이로써 지난 1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영장청구 기각으로 잠시 주춤해졌던 특검의 수사 동력이 다시 탄력을 받는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가 됐다.
따라서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결정은 '블랙리스트' 관련해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이 앞서 국회 청문회 등에서 했던 말과 증언이 사실상 모두 거짓으로 증명된 것 아니냐는 주장에 힘이 실리며, 그들이 앞서 했던 발언들이 다시 회자가 되고 있다.
◆김기춘의 말말말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블랙리스트'와 최순실 씨와의 친분에 대해 "모릅니다", "기억이 안 납니다", "그런 일 없습니다"며 부인하고 함구했다. 하지만 지난 17일 조 장관이 특검 조사에서 자백한 진술과 엇갈리게 됐다.
또 20일 모 언론사의 보도에 따르면, 김종덕(60·구속수감) 전 문체부 장관이 특검 조사에서 "김 전 실장에게 블랙리스트에 대해 여러차례 대면보고하고 지시도 받았다"고 진술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법원은 증거인멸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따라서 김 전 실장이 앞서 국회 청문회 등에서 했던 말과 증언이 사실상 모두 거짓으로 증명된 것 아니냐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다음은 지난달 7일 국회 국조특위 2차 청문회에서 김 전 실장이 했던 발언들이다.
-블랙리스트 지시 관련 : 블랙리스트니 뭐 '좌파를 어떻게 해라' 저는 그런 얘기한 일이 없습니다.
-고 김영한 민정수석 비망록 관련 : 의원님,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댄데 사법통제 언론통제 그런 것은 안 되는 일입니다.
-최순실 씨와의 친분 관련 : 최순실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청문회 당시 영상 본 이후 : 나이가 들어 기억이 잘 안납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최순실을 모른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 외 증거 인멸 정황 : 지난달 26일 자택 압수수색 전 CCTV 기록 삭제, 가족 동원해 자료 파기, 휴대폰 초기화 등
◆조윤선의 말말말
'블랙리스트' 존재에 대해서는 시인했지만, 여전히 그가 했던 발언들은 거짓이라는 논란에 둘러싸여 있다. 현재 조 장관은 국회 청문회 위증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다음은 거짓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조 장관의 발언들이다.
-(지난해 9월27일 교문위 국정감사) 최순실 씨 친분 및 비선실세 의혹 관련 : 제가 알지 못하는 분이다. 저는 그분의 가족관계 정도만 알고 있다. 의혹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고, 그렇게 판단할 만한 객관적인 사실관계나 증거에 의해 입증이 됐는지 관해서도 저는 모르겠다.
-(지난해 11월1일 국회 교문위 전체회의) 최순실 씨 친분 관련 : 본 적도 없고, 전화한 적도 없다.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 청탁을 받을 일도 없다.
-블랙리스트 관련 :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적도, 작성을 지시한 적도, 리스트를 본 적도 없다
-(지난해 11월2일) 정무수석 시절 최씨의 딸 정유라와 함께 찍은 사진 공개 후 : 청와대에 초청된 여러 종목 선수들과 함께 찍은 것일 뿐 정유라와 따로 만난 적은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는 전화통화는 했어도 독대를 한 적은 없는 걸로 안다.
-(지난해 11월30일 국회 국조특위 1차 기관보고) 근무시간에 최씨와 함께 마사지숍에 갔다는 의혹 관련 : 사실이 아니다.
-차은택 씨와 친분 관련 :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 (차씨가) 문화융성위원이 됐다는 것도 제 업무가 아니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지난해 12월15일 국회 국조특위 4차 청문회) 블랙리스트 관련 : 블랙리스트는 없고, 지시를 하거나 보고받은 적도 없다.
-(지난해 12월26일 자택과 문체부 사무실 압수수색 당시)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블랙리스트 폭로 관련 : 전혀 일지 못한다. 유진룡 전 장관이 어떤 말을 했는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현재 특검의 조사 대상에 오른 만큼 성실히 수사에 협조하겠다.
-(지난해 12월28일 인터뷰) 블랙리스트 관련 : 블랙리스트 만들라고 지시를 받은 적도 없고 블랙리스트를 만들라고 지시한 적도 없고 제가 작성한 적도 없습니다.
-(지난해 12월28일 문체부 보도자료) 최순실씨를 재벌에게 소개해줬다는 의혹 관련 :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말해 명예를 심각히 훼손하고 있다. 정말 사실이라면 제보자의 실명부터 떳떳하게 공개하라. 조윤선 장관에 대한 특검의 압수수색과 관련해 일부 언론에서는 피의자로 보도하고 있다. 조윤선 장관은 피의자 신분이 아님을 알려 드린다.
-(지난 9일 국회 국조특위 결산 청문회) 블랙리스트 관련 : (선서도 거부한 채) 국조특위에서 위증으로 검찰에 고발된 상태여서 (블랙리스트 관련) 답변을 드릴 수 없다. 지난번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 관련 질의에 답변한 데 위증 의혹이 있다고 특검에서 고발요청을 했고, 특위에서 저에 대한 고발을 한 상태다. 오늘 어떠한 말씀을 드리더라도 향후 수사 재판과정에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블랙리스트 존재 계속 추궁 당한 후 : 특정 예술인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는 명단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정치적 성향과 이념에 따라서 예술가들을 지원에서 배제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검 조사 과정에서 그런 문서가 있었단 진술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예술인의 지원을 배제한 명단이 있었던 것으로 여러가지 사실에 의해서 밝혀지고 있는 것 같다.
-블랙리스트 존재 인지 시점 관련 : 1월 초 문체부 예술국장이 '해당 직원이 확정적으로 작성했다'고 보고를 해 알게 됐다. 그런 (블랙리스트) 문서를 전혀 본 적이 없다. 작성 경위나 전달 경위는 모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관련) 답변을 드릴 게 없다.
-(지난 17일 특검 조사 출석 시) : 진실이 밝혀지길 바랍니다.
-(지난 20일 영장실질심사 당일) 블랙리스트 자백 관련 : 그렇게 (특별검사팀에)진술한 적이 없다. 자백한 거 아니다.
-그 외 발언 : 저도 빨리 수사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어버이연합을 동원해 반세월호 집회를 열도록 하고, 부산국제영화제의 예산을 전액삭감하라는 지시도 한 적이 없다.
-그 외 증거 인멸 정황 : 지난달 26일 자택 및 문체부 사무실 압수수색 전 새 PC 하드디스크 교체 등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9일 청와대에서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제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후 브리핑룸을 나서고 있다.<사진=뉴시스> |
한편, '블랙리스트'에는 정권에 비우호적인 문화계 인사 약 1만명 명단이 포함돼 있으며 각종 정부 지원 선별 과정에서 이 리스트를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검팀은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5월 처음으로 '좌파(左派)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정부 예산이 지원되지 않게 관리하라'는 지시를 김 전 실장에게 내린 것으로 파악해 이를 구속영장에 포함시켰다고 전해졌다.
박 대통령 역시 부당하게 직권을 남용해 문체부가 지원을 배제하도록 했다는 직권남용 혐의의 피의자로 조사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뉴스핌 Newspim] 김범준 기자 (nunc@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