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강남에서 개업했다가 쫄딱 망했다.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아파트에 외제차, 양육권까지 모두 내줬다. 이후 선배의 제안으로 경기도 신도시에 있는 병원 계약직 의사로 취직, 하루하루를 버텼다. 더는 남아 있는 불행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또 다른 악몽이 시작됐다. 주인집 정노인이 수면내시경 도중 살인을 고백한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시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자신을 만나러 왔던 전처까지 사라져버린다.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남자 배우 조진웅(41)이 올해 첫 영화를 선보였다. 이번 작품은 심리스릴러 ‘해빙’. 지난 1일 개봉한 ‘해빙’은 얼었던 한강이 녹고 시체가 떠오르자 수면 아래 있었던 비밀과 맞닥뜨린 한 남자를 둘러싼 이야기를 담았다. 극중 조진웅은 한 남자, 승훈을 연기했다. 살인사건의 공포에 빠지는 내시경 전문 내과 의사다.
“전후 사정 따지지 않고 일단 시나리오가 재밌었어요. 이게 영화화돼도 관객들이 분명 좋아할 거란 생각을 했죠. 근데 감독님 만나고 작업 시작하는데 그 산이 너무 높은 거예요. ‘어떻게 넘어야 하지?’ 고민이 많았어요. 기존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들이 분명 존재했죠. 독특했어요.”
고민 끝에 조진웅의 내린 결정은 이랬다. 계산하지 말 것. 계산보다는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몸짓과 말들이 승훈 캐릭터를 더 잘 살릴 것이라 확신했다.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작업이었죠. 하지만 즉흥적인 반응을 챙겼어요. 계산하면 재미가 없어지는 작업이니까 즉흥성의 연속이었죠. 마치 진짜 우리의 삶처럼 지나갔어요. 언발란스하고 언플러그드한 느낌이었죠. 대사도 많이 바꿨고 말이 안 나올 때도 있었어요. 단연코 이야기하는데 배우로서는 굉장히 신명 나는 작업이었어요.”
신명 나는 작업일지라도 쉽지는 않았을 거다. 특히 이견 조율에 있어서. 즉흥적인 연기가 이어지다 보면 감독과 배우, 또는 배우와 배우 간의 충돌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중요한 지점은 정확히 짚고 넘어갔어요. 모호해지면 안 되니까 작업자들끼리 슛 들어가기 전까지 상당히 이야기를 많이 했죠. 장르적인 부분은 또 감독님이 특출나세요. 이수연이란 메인 셰프의 시그니처 메뉴죠. 주재료는 저고요. 아무튼 주재료인 전 너무나 즐거웠다는 거죠. 전 인류는 연기해야 한다니까요. 세상에 연기만큼 재밌는 게 없는데 왜 기자를 하냐니까(웃음).”
이후로도 조진웅은 한참 연기 예찬론을 펼쳤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말은 비극적(?)이었다. 마주한 조진웅은 꽤 진지한 표정으로 연기를 오래 할 생각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다지 오래 연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계속하라고 하면 못할 거예요. 기능적으로 하면 다행인데 기계적으로 하고 싶진 않거든요. 다만 몇 년이 될지 모르겠으나 제 꿈은 항상 해야 할 작업을 잘해내는 거예요. 언젠가 기가 막힐 게 있을 거고. 매 순간 다음 역할이 그런 거겠죠.”
조진웅이 말한 기가 막힌 것들은 우선 이렇다. 올해 개봉을 앞둔 로컬 수사극 ‘보안관’과 독립운동가 김창수의 이야기를 담은 ‘대장 김창수’, 그리고 남북 권력층 간의 첩보전을 그린 ‘공작’이다.
“‘보안관’과 ‘대장 김창수’ 촬영은 끝났어요. 지금은 윤종빈 감독 ‘공작’ 촬영하고 있죠. ‘공작’ 팀은 지금 다들 대만 가 있어요. 전 ‘해빙’ 홍보도 있고 대만 분량이 없어서 여기 있고요. 곧 오겠죠. 안 바쁘냐고요? 바빠야죠. 여기 이렇게 매일 출근한 사람도 있는데(웃음) 저도 매일 일하고 싶어요.”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