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정책연구소 미혼남녀 1073명 설문조사
2030 여성 44% “애 잘 키울 자신 없다” 답변
출산기피이유 1위…무기력·낮은자존감 때문
남편·아내, 엄마·아빠 되기 두려워하는 청년
게티이미지뱅크 |
[뉴스핌=김규희 기자] 잘나가는 변호사 김민정(가명·32·여)씨는 결혼 4년차다. 그는 결혼하면서 아이를 낳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을 갖기로 했다.
몇년의 시간이 흐르자 부부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자신의 삶과 임신을 두고 저울질했다.
자신의 커리어가 여기서 끝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사로잡혔다. 남편에게 시간을 조금 더 달라 했다. 그러나 사실 김씨는 ‘엄마’가 되기를 두려워했다.
미혼 남녀는 ‘결혼’의 가장 큰 전제조건으로 ‘경제적인 안정성’을 꼽는다. 일자리와 신혼집 마련 등 결혼을 하려면 ‘돈’이 문제라고 한다. 때문에 남녀 모두에게 배우자를 선택할 때 ‘경제력’이 중요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출산’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20대 여성의 45.5%, 30대 여성 42.4%가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다’고 대답했다.
우리나라 저출산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2월 출생아수는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2014년 OECD 국가의 합계출산율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1.21명으로 꼴찌를 기록했다.
15년째 1.3명 미만의 초저출산 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인구절벽' 위기와 마주하고 있다. 출산율이 회복되지 않는 것은 낮은 혼인율도 큰 이유다.
정부는 심각한 저출산의 근본 원인을 ‘경제적 불안정성’으로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제3차 저출산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핵심 과제로 청년 고용안정, 신혼부부 주거지원 확대, 돌봄 사각지대 해소, 일가정 양립을 제시했다. 정부는 저출산의 근본 원인을 ‘경제력’의 문제로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청년들은 ‘경제적 안정’보다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다고 응답한 것이다.
육아정책연구소가 발표한 20·30대 미혼 남녀 1073명 대상 ‘출산 및 양육의 조건’ 실태조사에 따르면, 37.3%가 아이를 낳지 않고 싶은 이유로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어서’라고 응답했다. ‘경제적으로 부담되어서’는 28.7%로 2위로 꼽혔다.
남성도 마찬가지다. 30대 남성 31.9%가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다’고 답해 아이가 ‘경제적으로 부담된다’(29.8%)보다 높았다.
저출산 문제 전문가들은 청년들의 낮은 자존감이 출산을 막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혼 남녀는 학창시절 과도한 학업경쟁을 겪었고, 심각한 취업난으로 지위가 불안정했다. 자신으로부터, 남의 시선으로부터 평가절하됐다. ‘무기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미혼 남녀는 누군가의 남편이나 아내가 되는 것을 무서워 하고 있다. ‘부모’가 되는 것도 두려워한다. ‘자격 부족’을 이유로 결혼을 기피하는 응답이 16.8%나 됐고, ‘출산’을 기피하는 남녀는 37.3%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정부정책이 개인에게 집중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진단한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과 주거환경 마련 등 저출산 대책은 청년들을 정책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기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개인이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해질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출산은 사람이 안정감을 느끼고 만족스럽고 행복할 때 하는 개인적 행위”라며 “국가 입장에서는 출산율을 중요 지표로 여기고 관리하겠지만 그렇게 접근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저출산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라 할지라도 개인은 결국 자신의 생활이 보장돼야 결혼과 출산을 할 수 있다. 국가 중심이 아닌 개인 중심의 거대 담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준 보건복지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운영지원팀장은 “저출산 대책은 아이와 함께 행복한 사회가 되는 것이 궁극적 목표가 돼야 한다”며 “출산 및 양육에 투자를 많이 했다고 해서, 완성됐다는 생각을 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에서는 아이 낳고 기르는 사람을 대상으로만 접근하고 인구학적으로 분석해 기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출산율 목표치 ’용어 자체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정책에서 담아낼 수 있는 범위에서 최대한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뉴스핌 Newspim] 김규희 기자 (Q2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