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김학선 기자] 언제나 도전적이었지만, 이번엔 유독 더 놀랍다. 총은 물론이고 쌍칼에 도끼까지 어마어마한 무기를 손에 쥔 채 고난도 액션을 소화한다. 배우 김옥빈(30)이 신작 ‘악녀’로 극장가에 신선한 충격을 안기고 있다.
김옥빈이 새롭게 선보인 ‘악녀’는 ‘내가 살인범이다’(2012) 정병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 살인 병기로 길러진 한 여자와 그녀를 둘러싼 두 남자, 자신의 정체를 절대 드러내지 말아야 할 세 사람의 비밀과 복수를 그린 액션물이다.
극중 그는 숙희를 연기했다. 어린 시절 고도의 훈련을 받고 최정예 킬러로 성장한 인물로 조직에게 버림받은 후 국가 비밀 조직의 요원으로 발탁, 이름도 신분도 가짜인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10년 후,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자신을 둘러싼 비밀과 거짓을 마주하게 된다.
“제가 어릴 때부터 합기도, 태권도, 무에타이 등 운동을 굉장히 좋아했어요(웃음). 물론 마스터 수준은 아니지만, 이 재능을 써먹을 곳이 없는 거예요. 그때 마침 ‘악녀’가 들어온 거죠.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었어요. 캐릭터 자체는 참고를 많이 했어요. 찾아볼 만큼 다 찾아봤죠. ‘한나’ ‘루시’부터 미드 ‘미씽’ 등 여자가 칼 들었다, 주먹 좀 쓴다는 건 정말 다 찾아봤어요(웃음). 다른 여성들은 액션 할 때 어떤 얼굴과 느낌이 나오는지 궁금했거든요.”
촬영은 앞두고는 액션 훈련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김옥빈은 지난 7월부터 10월까지 약 3개월 남짓 액션 스쿨을 다녔다. 기초 체력부터 강도 높은 액션까지 차근차근 배워 나갔고, 액션신의 95% 이상을 직접 소화했다.
“제가 운동신경이 좋은 편인데도 처음에는 주먹질, 칼질 다 너무 어설펐어요. 그러다 한두 달 연습하면서 익숙해졌죠(웃음). 큰 부상은 없었어요. 그러면 영화가 중단되니까 안 다치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멍들고 피 나고 파스 냄새나는 거야 일상이었고요. 그건 액션 영화의 숙명이죠. 아쉬웠던 점은 감독님이 자꾸 풀샷으로 찍은 거? 하하. 감독님 스타일이시긴 한데 막상 얼굴을 안보여주니까 그렇게 아깝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감독님께 계속 저리 가시라, 멀리 가시라고 했죠. 하하.”
김옥빈을 힘들게 한 게 액션뿐이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시나리오 속 숙희에게는 삭제된 감정이 너무 많았다. 때문에 한 인물로 자연스레 잇는 게 가장 큰 과제였다. 김옥빈의 표현을 빌리자면 ‘액션에 버금가는 고통’이었다.
“숙희는 지금껏 연기한 캐릭터 중 제 성격과 가장 반대됐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질문이 많았죠. 제가 이해해야 편하게 연기할 수 있으니까요. 계속 그렇게 고민하다가 대사에서 힌트를 얻어 저만의 이유를 만들어갔죠. 쉽지 않은 작업이었어요. 또 모성애 같은 경우에는 제가 놓치고 들어간 거예요. 주된 스토리 축은 멜로니까 중상(신하균)과 현수(성준)만 생각한 거죠. 그러다 딸과의 첫 촬영에서 망치로 맞은 거예요(웃음). 그때부터 아이 낳은 언니들에게 많이 조언을 구했죠.”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유난히 힘든 시간이 많았지만, 또 유난히 웃을 일도 많이 안겨준 작품이다. 대표적인 예가 칸 레드카펫을 밟은 것. ‘악녀’는 지난달 28일 폐막한 제70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됐다. 이에 김옥빈은 ‘박쥐’(2009) 이후 8년 만에 칸을 찾았고, 그곳에서 심사위원으로 선정된 박찬욱 감독과 재회했다.
“박찬욱 감독님께서 널 보니까 뿌듯하다, 고생 많이 했다고 해주셨어요. 액션신도 좋다고 칭찬해주셨고요. 봉(준호) 감독님은 첫 인사에서 ‘60명을 죽인다면서요?’라고 하셨죠(웃음). 그래서 ‘저도 안 세어봐서 잘 모르겠다’고 했어요. 하하. 그만큼 관심도가 뜨거웠어요. 감사했죠. 아쉬운 건 더 놀고 싶었는데 못 놀았다는 거?(웃음) V앱이랑 ‘아는형님’ 녹화해야 한다고 빨리 귀국시켜서 너무 억울해요! 거기서는 한 세 네시간 잔 듯해요. 설렜는지 깊은 잠을 못자겠더라고요.”
세계가 아닌 국내에서도 ‘악녀’의 의미는 남다르다. ‘악녀’는 칸뿐만 아니라 충무로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킬만한 작품. 실제 영화가 베일을 벗은 후 “충무로 여성 원톱 액션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처음 시나리오 봤을 때 저 역시 ‘이게 만들어질까? 투자가 될까?’ 싶었어요. 한국 영화 시장에서 여성 배우의 위치가 얼마큼 축소됐는지 아니까요. 보고도 믿기지 않은 거죠. 근데 감독님께서 당신 확신이 있으면 밀고 나가시는 스타일이세요. 그런 고집이 있어서 이 영화가 탄생한 거죠. 그리고 그 안에서 절 믿어주셨고, 전 그 믿음에 부응하려고 한 거예요. 그래서 더욱 예쁜 인형이 칼 드는 느낌을 주기 싫었어요. 이걸 제대로 살려야 이런 영화가 더 많이 제작되고 상상력이 펼쳐지지 않을까 했죠. 그러길 바라고요.”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김학선 기자 (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