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신화 초석 닦은 인물....'기술 자립' 진두지휘
[ 뉴스핌=황세준 기자 ] 지난 19일 별세한 강진구 전 삼성전자·삼성전기 회장은 반도체 세계 초일류기업 초석을 다진 인물이라는 평가다.
21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고인은 “제조업이 국부의 원천”임을 평소 강조하며 '기술 자립'을 진두 지휘한 전문가다.
故 강진구 전 삼성전자·삼성전기 회장 <사진=삼성전자> |
1927년 3월 1일 경상북도 영주 출생으로 1946년 국립대구사범학교, 1957년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해 1963년 동양방송에 입사했다.
1965년 동양방송 이사를 거쳐 1973년 삼성전자에 상무로 입사했다. 입사한지 3개월만에 전무를 달았고 이듬해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호암 이병철 회장의 전폭적인 신뢰가 바탕이 된 인사였다.
동양방송 당시 "모든 방송장비를 우리 기술로 만들겠다"고 한 것을 이병철 회장이 눈여겨봤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1969년 창립 이래 5년간 적자를 지속했으나 강 전 회장이 대표이사를 맡은해 바로 흑자전환을 달성했다.
1976년 삼성전자는 현재 반도체사업의 전신인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강 전 회장은 1982년 삼성반도체통신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초석을 닦았다.
허허벌판이었던 기흥의 반도체 단지를 장마철에 장화를 신고 직접 돌아보면서 현장 작업자를 격려했고 밤을 지새우는 연구 기술진과 함께했다.
1983년에는 미국 마이크론에서 반도체 기술을 이전받아 64킬로바이트 D램을 세계 세 번째로 출시했다. 1985년에는 반도체 수출 1억달러를 달성했고 1986년에는 256킬로바이트 D램를 양산했다. 강 전 회장은 그해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그는 1988년 삼성반도체통신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같은해 삼성전자는 삼성반도체통신을 합병했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이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다.
1990년 그는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이 됐다. 강 전 회장은 글로벌 경영의 중요성을 미리 내다보고 해외 지역에 생산공장을 일구는 등 글로벌 삼성의 기틀을 닦았다. 1992년 한중 수교시점에 중국과 합작으로 현지 생산법인을 설립했고 멕시코, 태국, 헝가리 등에도 잇따라 생산거점을 확보했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1995년 6월 ‘삼성 명예의 전당’ 설립과 동시에 첫 번째로 헌액됐다. 1996년에는 국내 전문 경영인 중 처음으로 현직으로 칠순(고희)를 맞았다. 그해 ‘삼성전자, 신화와 그 비결’이란 제목의 회고록도 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회고록 추천사에서 '오늘의 삼성전자를 있게 한 최대의 공로자'라며 '세계 전자업계에서조차 강 회장을 한국 전자산업의 대표적 전문 경영인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강 전 회장은 2000년 12월 말 건강 문제와 후진 양성을 이유로 삼성전기 회장직을 사임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전자공업진흥회장, 전자산업진흥회장, 전자부품연구원 이사장 등을 지내며 국내 전자업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혔다.
2006년에는 서울대와 한국공학한림원이 선정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에 올랐다. 벨기에 그랑그로스왕관훈장, 포르투갈 산업보국훈장, 정보통신대상, 장영실과학문화상 등을 받았다.
[뉴스핌 Newspim] 황세준 기자 (hsj@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