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과 가깝고 강남학교에서 멀지 않은
이곳 이촌동, 한일 수교로 일본인들 정착
아이의 재잘거림…맛집·식료품점도 즐비
일본색 짙지 않은 덕, 한국사회와도 조화
서울 거주 외국인 46만 시대. 서울은 이제 외국어와 외국 음식을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명실상부' 다문화 도시다.
서울 거주 중국인은 최근 3년간 해마다 6000여명씩 늘어 올해 20만명에 육박했다. 일본인은 수십 년째 서울시 '이촌동' 한 지역에 꾸준히 모여 살아왔다. 가까운 나라 중국과 일본의 색이 묻어나는 곳으로 들어가봤다.
여느 지하철 출입구와는 다른 분위기의 이촌역 4번 출구. 심하늬 기자 |
[뉴스핌=심하늬 기자] "오카상!"
지난달 28일 오후 2시 4호선 이촌역 4번 출구. 조금은 낮고 오래된 지하철 출입구를 빠져나오자 들리는 소리였다. 남색과 흰색이 보기 좋게 조화를 이룬 일본식 유치원복을 입은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한 여성에게로 달려갔다. 오카상(お母さん)은 일본어로 '엄마'라는 의미다.
이촌역 4번 출구 앞엔 양쪽으로 가로수가 늘어 서 있었고, 길고양이는 그 옆에 누워 있었다. 한갓지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치 일본의 어느 동네에 온 듯했다.
코너를 돌자 일본어가 한글과 함께 쓰인 광고판들이 여럿 보였다. 미용실 광고판에는 'Men's カッ卜も OK'(맨즈 컷 토모 오케이·남자 컷도 합니다), 수선집 광고판에는 'めいひん'(메이힌·명품) 등의 말이 적혀 있었다.
근처 아파트 주차장에는 '전면주차' 알림판이 일본어로도 쓰여 있었다. 공인중개업소 유리에는 '日本語 可能'(일본어 가능)이라는 말이 보였다. 임문정 공인중개사는 "일본어로 응대할 수 있다"며 "이촌동에서 오랫동안 장사하는 사람들은 일본어는 기본으로 한다"고 전했다.
가게 간판, 광고판 등은 물론 이촌동 아파트 내 주차 안내판에도 일어가 병기돼 있다. 심하늬 기자 |
일본인 마을이 처음 형성된 때는 1960년대, 한일 수교 후 일본 대사관 직원과 일본 기업 주재원 가족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부터다. 대사관과 주요 기업이 광화문 등 도심에 있었고, 일본인 학교는 강남구에 있어 중간 지역인 이촌동에 일본인들이 모였다.
이촌 1동 지역에는 10여년째 꾸준히 1000여 명의 일본인이 살고 있다. 2017년 6월 기준으로 1500여명의 일본인이 용산구에 살고, 이중 대부분은 이촌1동과 한강로동에 산다.
이촌글로벌빌리지센터의 김양희 주임은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일본인 학교 스쿨버스가 이촌동으로만 오기 때문에 아이가 있는 일본인 가족은 주로 이곳에 집을 구한다"고 말했다. 김 주임에 따르면 이촌동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주로 주재원과 가족들이다.
일본인 학교에서 스쿨버스를 타고 귀가한 아이들이 마중나온 엄마와 만나고 있다. 심하늬 기자 |
오후 3시 40분. '3号車'(3호차)라고 쓰인 일본인 학교 스쿨버스와 'Yongsan International School'(용산국제학교)라고 적힌 버스가 아파트 단지 앞에 줄줄이 도착했다. 차례를 잘 지킨다는 일본인답게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앞 친구가 내릴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며 하차 순서를 지켰다.
아이들을 마중 나온 엄마들이 아이들의 짐을 받았다. 아이들은 엄마와 일본어로 재잘재잘 대화를 나누며 집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이촌동은 다른 외국인 마을처럼 외국 색이 짙진 않지만 역사가 깊은만큼 일본인이 운영하는 오래된 일식집이나 일본 식료품점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 미식 프로그램에 나와 유명해진 20년 넘은 가정식 일식집을 비롯해 라멘, 스시 등 일본인 셰프가 직접 운영하는 일식집이 여러 곳이다.
이촌동에 있는 일본 식료품점. 심하늬 기자 |
일본 식료품점에는 일본 라면, 우동, 과자 등 공산품을 비롯해 모찌, 튀김 등 반조리 냉동식품, 타코야끼 소스 등 식재료까지 판다. 가게 규모는 작았지만 평일 낮인데도 손님이 많았다. 6~7평 남짓 되는 가게가 손님으로 가득 찼다. 일본인 밀집 지역에 위치한 일본 식료품이니만큼 일본인이 많을 거라 생각했지만 일본 식재료를 찾는 한국인이 대부분이었다.
이 식료품점에서 만난 주민 김선희(29·주부)씨는 일본 식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인근 효창동에서 왔다. 김씨는 "대형 마트에도 없는 일본 식재료를 구할 수 있어 자주 온다"며 구워 먹는 모찌를 샀다고 했다.
식료품점에 한국인이 많은 것처럼, 이촌동은 일본인 밀집 지역으로 알려졌지만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이촌동에 7년째 거주한다는 유지혜(33·직장인)씨는 "이촌동에 살면서 일본인을 많이 보지만 이질감은 별로 없다"며 "일본인들은 대체로 조용하고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공존에 별 어려움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촌글로벌빌리지센터의 김양희 주임은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분위기지만 한국어를 못하는 등의 이유로 지역 사회에 융화되지 못하는 일본 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주 4회 한국어 강좌, 생활 세미나, 벼룩시장 등 한일 주민들의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심하늬 기자 (merongy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