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이규하 기자] 지독한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 인접국 브라질로 탈출한 베네수엘라인이 하루 800명에 달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1958년 민주주의로 이양된 베네수엘라.
예비 노벨 경제학상으로 불리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John Bates Clark Medal) 수상에 빛나는 대런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 MIT 경제학 교수와 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에 관한 세계적 전문가인 제임스 A. 로빈슨(JAMES A. ROBINSON)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가 펴낸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을 보면, 권력자들이 만드는 ‘몰상식 공화국’을 엿볼 수 있다.
책에는 “베네수엘라에서는 정치부패, 인적후원관계, 분쟁이 계속되었다. 유권자가 선거에서 우고 차베스와 같은 독재성향의 지도자를 선택한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지도자만이 기성 엘리트층에 맞설 수 있다고 믿는 탓이기도 하다. 그 결과 베네수엘라는 여전히 착취적 제도하에 신임하고 있다”고 역설한다.
풀뿌리 차원의 권한강화 과정이 생략됐고 다원주의적 정치권력 분배가 실현되지 못한 베네수엘라의 문제를 잘 지목하고 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불리던 카리브해의 보석빛 물결은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이민선박의 침몰 해역이 됐다.
경제위기 돌파구를 위해 아무리 그럴듯한 경제정책을 내놓는다한들 정치개혁 없이는 어렵다는 것을 안다.
경제부 이규하 차장 |
우리나라도 브레이크 없는 정치권력의 ‘총체적 사기’를 맛본 국가 중 한 곳이다.
세월호 4주기를 열흘 앞둔 지난 6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징역 24년’의 1심 형량을 받았다. MB는 공교롭게도 10년 전 대한민국 제18대 총선일과 같은 4월 9일 검찰 기소됐다. 18대 총선은 한나라당 이명박 정부 출범 2개월의 첫 평가전으로 불리던 날이다.
뿐만 아니다. 지나온 역사 속에도 대한민국 권력자들의 몰상식을 나열하면 한도 끝도 없을 정도다. 압축 성장을 일궈낸 과거사에는 세월호처럼 기울어 가는 ‘권력독식국가’의 뒤틀린 현실을 엿볼 수 있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경제 석학인 모이제스 나임(Moisés Naím)은 그의 저서 ‘권력의 종말’을 통해 ‘권력은 다음 집단과 개인들의 현재 또는 미래의 행동을 지시하거나 막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오늘날 권력은 바깥에 있던 개인과 작은 세력들이 기존 권력을 위협하고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겪고 있다. 대통령궁에서 광장으로 광장에서의 촛불염원은 거대함을 압도하는 국민의 힘을 보였다.
즉, 대규모 전문가 조직으로 구성되는 강력하고 압도적이면서 강압적인 권력이 아니다. 거대권력의 힘을 저지하고 제한할 수 있는 힘에서 비롯되는 대항권력(counterpower)인 셈이다.
프랑스 철학자의 미셀 푸코는 거시권력보다 중시해야할 것으로 국가 중심의 권력이 아닌 우리 삶과 연관된 ‘미시권력’을 꼽고 있다.
20만명을 돌파하는 국민들이 한 달 만에 공정거래위원장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한 것도 이러한 맥락과 무관치 않다.
경제민주화 정책 지지에 김상조 위원장의 답변은 의외로 ‘웰컴투동막골’의 영화 스토리를 꺼내들었다. 남과 북의 군인들이 외딴 산골에 들어와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줄거리 속에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있다는 얘기다.
영화 속 군인은 마을 어른인 촌장에게 ‘어떻게 해서 이 마을사람들이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죠?’라고 질문한다. ‘배불리 먹여야 해’라는 촌장의 답변을 인용한 김 위원장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 하고 있다’라고 서로 믿고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걸 허락해준 마을 어르신에 대한 존경을 가지고 있었다’ 이게 아마 그 대목의 핵심이 아니었을까 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물론 21세기 현대 자본의 경제문제를 단순화할 수 없다는 생각도 내비쳤다. 그러나 기본적인 본질은 ‘사람중심’이다. 국민 삶의 변화와 바로 연결되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경제민주화를) 통해 내 삶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한다는 모범답안을 던졌다.
우린 못된 권력의 장벽이 붕괴된 현재 주요 분야의 변화를 이끄는 새로운 주자들을 맞고 있다. 적어도 진보·보수, 좌파·우파, 중도 등 ‘이념’ 문제로 편가르기 하던 과거와 달리 ‘개념’ 문제였다는 상식을 깨달은 이가 많아졌다.
공직사회도 마찬가지다. 영혼없는 공무원으로 불리던 관료사회에 ‘낙수효과’ 정책은 신기루와도 같았다. 허구를 맛본 현 정부의 각 경제부처 장관들은 사람중심인 ‘J노믹스’ 기조에 부흥할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울 선두주자인 김상조 위원장은 현 정부마저 실패한다면 ‘우리에겐 미래는 없다, 우리 자식들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실패할 경우 인생의 항로까지 바꿀 수 있다는 말로 절박한 심정을 표현했다.
정치인 출신의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도 “정치적 입지보다 나랏일 생각 때”라며 과감히 선거판을 멀리했다. 그만큼 현 정부의 각 경제부처 장관들로서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할 패러다임의 전환에 권력을 쏟고 있다.
‘국민이 모르는 정책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 '늘공'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액션행보도 초반과 달라졌다는 평가가 안팎에서 흘러나온다.
‘모범생은 쉽지만 우등생이 되기는 어렵다’는 냉엄한 현실 속에서 사람중심인 ‘J노믹스’ 기조에 기대를 거는 이가 많다. 물론 기대가 큰 만큼 부담과 실망도 클 수밖에 없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있다.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성장통과 대내외 환경을 정면 돌파하기엔 많은 위험요소가 복병처럼 숨어있기 때문이다.
부디 ‘자연에 대한 강간’을 부린 4대강 사업과 같은 권력(權力)이 아닌 사람중심의 모범답안을 재평가할 ‘국민을 위한 권력(勸力)’이길 고대해본다.
[뉴스핌 Newspim] 이규하 기자 (jud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