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사, 글로벌 기업 제품 판매 협약 경쟁 치열
신약 판권 확보로 매출 껑충, 수익성은 악화 ‘딜레마’
[서울=뉴스핌] 김유림 기자 = 우리나라 제약사들이 글로벌 회사의 의약품을 공동으로 판매하는 ‘코프로모션’을 통해 매출 증대를 도모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 간 코프로모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다국적 제약사에게 반사적 이익이 돌아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의 마케팅 전략으로 자리 잡은 코프로모션이 이번 상반기에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 ‘코프로모션’, 국내 제약업계 거스를 수 없는 대세
코프로모션(co-promotion)은 하나의 제품을 동일한 상품명으로 여러 회사가 같이 판매하는 마케팅 전략이다. 국내 제약업계에서 진행되는 코프로모션은 글로벌 제약사가 보유하고 있는 높은 품질의 오리지널 의약품을 한국 회사가 함께 판매하는 형식이다.
다국적사는 우리나라 영업망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터줏대감 국내 제약사는 전국 곳곳에 영업 인력이 분포돼있다. 이에 글로벌 기업은 종합병원급 위주로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일반 의원급은 국내사의 힘을 빌린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올 상반기 들어 가장 활발하게 코프로모션 계약을 맺은 곳은 종근당이다. 지난달 28일 종근당은 연간 600억원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치매치료제 한국에자이 ‘아리셉트’의 공동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아리셉트는 장기간 임상연구를 통해 알츠하이머형 치매환자의 인지기능 개선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받은 제품이다. 이번 계약으로 종근당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한국에자이는 종합병원과 준종합병원에서 영업과 마케팅을 담당하게 된다.
또 종근당은 한국화이자제약와 앞서 지난달 18일 제휴 계약을 맺고, 폐렴구균 단백접합 백신 ‘프리베나®13주’ 성인용 제품에 대한 국내 공동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앞서 양사는 지난해 12월 프리베나®13주 성인용에 대한 유통계약을 체결했으며, 이번 협약을 통해 제휴범위를 공동마케팅 및 영업 분야까지 확장했다.
삼일제약은 지난달 14일 한국엘러간과 알레르기성 결막염 치료제 ‘라스타카프트 점안액 0.25%’의 유통 및 공동판매계약을 체결했다. 라스타카프트는 알레르기성 결막염의 가려움 예방에 1차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이다.
이에 따라 삼일제약은 라스타카프트의 국내 유통과 병·의원에 대한 공동 판매를 진행한다. 앞서 양사는 지난 1991년부터 안과영역에 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인공누액 ‘리프레쉬플러스’의 전국 유통 및 공동판매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SK케미칼은 지난 4월 한국릴리와 골형성촉진제 포스테오의 공동 판매 협약을 맺었다.
포스테오는 골다공증 환자의 뼈 생성을 촉진하는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을 제시한 세계 최초의 골형성촉진제다. 2006년 국내 시판허가, 2016년 12월 보험급여가 적용됐으며, 지난해에는 국내 처방액 163억원을 기록했다. 협약에 따라 향후 한국릴리는 종합병원과 일부 준종합병원, SK케미칼은 준종합병원과 의원을 대상으로 포스테오의 마케팅 및 영업 활동을 펼치게 된다.
한화제약은 4월 한국먼디파마의 유산균 정장제 제품 ‘람노스’ 과립 120포 제품을 약국에서 공동 판매하는 협약을 진행했다.
앞서 지난해 양사는 먼디파마의 질염치료제 지노베타딘 질좌제의 공동판매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한화제약은 보험급여가 적용되는 지노베타딘 질좌제 50좌제 포장의 산부인과 병의원 및 약국 유통을, 한국먼디파마는 일반의약품 판매 전용 제품인 지노베타딘 질좌제 10좌제 포장의 약국대상 영업 및 유통을 하고 담당하고 있다.
◆ 유치 과열 경쟁에 출혈 우려…남 좋은 일?
이처럼 국내 제약사가 글로벌 기업의 의약품 판매 확보에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이유는 ‘매출’이다.
실제로 코프로모션은 우리나라 제약사 매출 순위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돈을 벌어들이는 효과를 톡톡히 낸다.
매년 국내 제약기업 매출 1위 자리에 오르내리는 유한양행은 지난해 매출 1조4622억원 가운데 상품매출이 7964억원(54.4%)을 기록했다. 상품매출은 재고자산을 구입해 가공하지 않고 일정 이윤만 붙여 판매되는 매출 형태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다국적 제약사로부터 공급받은 의약품의 매출이 상품매출에 포함된다.
유한양행은 해외 기업 제품 중 길리어드 B형간염 치료제 ‘비리어드’와 베링거인겔하임 당뇨병 치료제 ‘트라젠타’, 고혈압 치료제 ‘트윈스타’ 등 3개 제품에서만 3290억원의 매출을 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굵직한 다국적 제약사 의약품을 서로 가져가겠다고 국내 제약사 간 경쟁이 과열되는 분위기다.
일례로 지난 2015년 말 대웅제약이 팔고 있던 해외 주력 제품 중 자누비아, 자누메트, 자누메트XR, 바이토린, 아토젯 등 5개 품목의 판권이 종근당으로 넘어갔다. 여기에 14년간 팔아온 글리아티린까지 종근당에 뺏기는 쓴맛을 봤다.
하지만 출혈 경쟁 속에서 한국 기업이 챙기는 판매수수료가 갈수록 낮아지면서 ‘속 빈 강정’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초창기에는 수수료를 20% 선에 계약을 맺었지만 최근 10% 이하까지 떨어지면서, 다국적 제약사만 배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 제약사는 매출액이 늘고 있지만, 오히려 수익성이 악화되는 역효과가 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매출 성장세에 비해 영업익과 당기순이익이 감소하는 추세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신약 개발이 사실 제약산업의 ‘꽃’인 것을 모르는 게 아니지만, 당장 신약 개발을 시작한다고 해서 단기적인 성과가 나올 수 없고, 실패하면 자금만 낭비한 밑지는 장사처럼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반면 코프로모션은 내수시장의 매출을 확실하게 올려줘 증시에도 영향을 받는다. 코프로모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많지만, 당분간 출혈 경쟁은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ur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