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규격 JIS 인증 위탁기관, 불충분한 심사에도 인증 발급
[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일본의 '모노즈쿠리(もの 造り)'가 흔들리고 있다.
23일 아사히신문은 일본의 공업제품 품질이나 관리체계 기준을 정한 국가 규격 JIS(일본공업규격)이 부정심사 논란에 휘말렸다고 보도했다.
모노즈쿠리는 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뜻으로, 일본 기업의 장점을 꼽을 때 늘 포함되는 요소였다. 하지만 최근 일본 대형제조사들의 품질부정이 잇따라 나온데다, 이번엔 일본엔 국가규격 자체가 불충분한 심사를 거친 사례가 나왔다.
품질인증 제도는 제3자가 특정 기업의 제품·서비스의 수준을 보증해, 원만한 거래를 도모하는데 의의가 있다. 거래처가 품질을 재차 확인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엔 공정한 심사가 진행됐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신문은 "이번 논란으로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온 일본 제조업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2005년 새롭게 디자인된 JIS 인정마크. 나카가와 쇼이치 당시 경제산업상(좌)이 행사에 참석했다. JIS는 1949년부터 시작했으며, 2005년 10월부터 심사·인정 권한을 정부에서 민간으로 넘어갔다. [사진=지지통신 뉴스핌] |
JIS는 일본 공업제품의 품질이나 관리체계의 기준을 정한 국가 규격이다. 2005년까지는 국가가 심사·인증을 직접 담당했으나, 이후엔 민간 인증기관이 위탁을 받아 심사·인증을 한다.
문제가 된 인증 심사는 영국계 인증기관 '로이드레지스터퀄리티어슈어런스(LRQA)'의 일본지사의 심사에서 발생했다.
아사히신문이 입수한 LRQA 내부자료에 따르면 해당회사가 지난해 항공·우주 관련기업 3개사로부터 의뢰를 받아 실시한 국가공업규격 'JIS9100' 관련 심사에서 부정이 이뤄졌다.
심사는 복수의 한국인 심사원이 담당했지만, 이 가운데엔 경력이 불충분한 무자격자와 필요한 훈련을 받지 않은 인물이 포함돼 있었다. 또한 심사원이 정리한 보고서의 적정성을 체크하는 절차가 생략된 불충분한 심사도 복수 발견됐다.
신문은 "LRQA 일본지점 당시 대표자도 불충분 심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부정 사실은 인증기관의 활동을 체크하는 공익재단법인 '일본적합성인정협회(JAB)'가 문제를 파악하면서 밝혀졌다.
JAB측은 LRQA가 의도적인 부정을 저질렀다고 결론을 내려, 이번달 12일 LRQA에 대해 인증기관 인정 취소 처분을 내렸다. 처분 사실은 JAB홈페이지에 19일 공표됐지만, 상세한 처분이유는 기밀정보라는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다.
JAB의 처분은 심사업무를 정지시키는 강제력이 없다. 하지만 LRQA 측은 JIS9100 인증업무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LRQA 부정심사의 배경에는 일손부족의 영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은 "심사가 불충분해도 심사요금을 얻기 위해 인증을 부여하는 일은 다른 인증기관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부정으로 심사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인증제도의 문제점이 부각됐다"고 했다.
한 인증기관의 관계자는 "힌번 인증을 주면 그 기업으로부터 계속 돈이 들어온다"며 "방심한다면 심사하는 쪽도, 받는 쪽도 긴장감을 잃기 쉽기 때문에 이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keb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