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영국 ‘체커스 계획’에 냉담
메이 총리 “노딜 브렉시트도 감수하겠다”
[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협상에 돌파구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됐던 EU 비공식 정상회의가 성과 없이 끝나 영국이 EU와 완전히 결별하는 ‘하드 브렉시트’ 가능성이 높아졌다.
영국은 지난 2016년 국민투표를 통해 EU 탈퇴를 결정했고, 오는 3월 29일 오후 11시에 EU를 떠나게 된다. 이제 6개월 정도 남은 상황에서 영국과 EU는 아직도 무역과 아일랜드 국경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좀처럼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간 협상이 결렬되다시피 한 상태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돌파구가 될 것이란 기대가 모아졌으나, 양측이 팽팽한 신경전만 펼치고 끝났다.
정상회의에서 프랑스와 독일 등 EU 측은 단일시장을 저해할 수 있는 어떠한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메이 총리가 제시한 ‘체커스 계획’을 거부했다. 이에 영국 역시 EU와의 무역협상 없이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도 감수하겠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지난 7월 총리 지방관저(체커스)에서 열린 각료 회의에서 합의된 '소프트 브렉시트 제안인 ‘체커스 계획은 EU에 일정한 분담금을 내면서 시장 접근성은 유지하는 친(親) 기업적 타협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EU 측은 이 제안마저 단일시장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는 입장이다.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무역과 아일랜드 국경 문제에서 양측이 여전히 큰 의견 차이를 보였다며, “체커스 계획에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메이 총리는 체커스 계획이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국경에서 ‘하드 보더’를 피하기 위해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안이라고 강조했다. 하드 보더란 군인, 경찰 등이 주둔해 엄격히 통제되는 국경을 말한다. 영국이 EU 단일시장에서 떠날 경우 영국령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 아일랜드 국경을 자유롭게 오가던 사람·물자 간 이동에도 제약이 생긴다.
지난 20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비공식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한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과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한편 영국은 하드 브렉시트에 대비해 의약품과 초콜릿 등 사재기에 나섰다.
브렉시트 후 세관 통과 지연 우려에 영국 정부의 요청을 받은 화이자와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등 대형 제약사들은 의약품 재고를 늘리고 있으며, 제과업체 몬델레즈는 초콜릿과 각종 재료를 미리 쌓아두고 있다. 에어버스는 공급업체들에 수십억달러 규모의 부품 여유분을 미리 챙겨 놓으라 요청했다.
영국과 EU가 단일시장에 합의하지 못하고 결별할 경우, 양측을 오가는 상품은 즉각 관세 대상이 된다. 스페인산 냉동 오렌지주스의 경우 지금은 무관세로 영국에 수입되지만, 브렉시트 후에는 세계무역기구(WTO) 기준인 24.4%의 관세를 내야 한다.
기업들은 관세뿐 아니라 규제 문제와 관련해 상당한 불확실성을 안고 하드 브렉시트에 대비하고 있다.
최근 영국 정부는 노딜 브렉시트 시 산업별로 받을 영향을 기술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통신 가입자들은 지금처럼 유럽에서 무료 로밍서비스를 받을 수 없고, 영국 운전면허증도 유럽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영국에서 판매되는 담배갑에는 흡연의 위험을 경고하는 사진을 쓸 수도 없다. 저작권이 EU 집행위원회에 있기 때문이다.
금융 기관들은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가 나왔을 때부터 브렉시트 대비 작업을 해왔다. 크레딧스위스, 도이체방크, UBS, HSBC 등은 런던 직원들을 프랑크푸르트나 파리, 더블린, 마드리드로 이동시킬 준비를 하고 있으며, 영국과 EU 양쪽에서 복합적으로 체결했던 계약 내용을 수정해 유럽 쪽으로 적용하고 있다.
특히 제약산업이 브렉시트로 큰 타격을 받는다. 영국 의약 수입품의 75% 가까이가 EU에서 들여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영국 정부는 세관 절차 지연에 따른 의약품 부족을 우려해 제약회사들에 재고를 충분히 비축해 놓으라고 요청했다.
지난 7월 화이자는 규제, 제조, 공급체인 등 브렉시트 준비 작업에 1억달러가 들 것이라고 예상했고, 글락소는 향후 2~3년 간 9200만달러가 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g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