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반성하는 마음? 의견 분분
"기소유예 받는 팁은 봉사활동" 정보공유 버젓이
[서울=뉴스핌] 황선중 기자 = #수년간 상습적으로 은사의 손녀딸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A(68)씨는 1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A씨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목욕차량을 운전하는 등 봉사활동을 한 점 등을 고려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지난 8월 랜덤 채팅 앱을 통해 알게 된 10대 여학생을 꼬드겨 수십장의 노출사진을 받은 대학생에게 법원이 징역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면서도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했다"고 판시했다.
#25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기소된 건설사 사장 B(46)씨는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피고인이 그동안 소외계층을 위해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다"는 이유에서다.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내 상대 차량 운전자를 숨지게 한 치과의사 C(48)씨. 재판부는 "C씨가 유족들과 합의한 점, 평소 무료진료 등 봉사활동을 해온 점 등을 고려했다"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 봉사활동했다고 형량을 왜 줄여줄까
일반적으로 재판부는 형량을 결정할 때 피해자 합의 여부·심신미약 가능성·과거 전력 등 다양한 양형 요소를 고려한다. 봉사활동도 감경 요소 중 하나다. 다만 최근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화두가 되면서 봉사활동을 했다고 해서 형량을 줄여주는 것이 맞느냐는 의문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현행 형법 제51조는 형을 정함에 있어서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참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봉사활동 여부는 피고인이 범행 이후 반성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다. 봉사활동을 할 만큼 피고인이 크게 반성하고 있으므로 감경해줄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물론 범행 이전에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왔다면 성실하게 삶을 살아왔다고 판단돼 감경 받을 수 있다.
문제는 그저 처벌 수위만을 낮추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행하는 봉사활동이다. 평소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지 않았어도 경찰 입건 이후에라도 봉사활동을 하면 재판에서 감경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모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봉사활동 관련해 명문화된 규정은 없다"며 "경찰에 붙잡힌 이후부터 봉사활동을 했더라도 반성의 일환으로 보고 참작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오롯이 판사의 재량"이라고 덧붙였다.
<자료=인터넷 카페 캡쳐> |
◆ "기소유예 받는 팁은 봉사활동"
실제로 성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들끼리 법적 조언을 주고받는 한 인터넷 카페에는 봉사활동을 권장하는 글이 버젓이 올라와 있다.
성범죄를 저질렀음에도 검찰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는 한 이용자는 "기소유예 받는 팁을 알려주겠다"면서 "발로 뛰라. 반성문을 계속 쓰고 봉사활동도 계속하라"고 했다. 직장 내 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재판을 받고 있다는 다른 이용자는 "어린이집 봉사활동은 조금 불편할까요"라고 물었다.
진정성이 결여된 위선적인 봉사활동은 자원봉사자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마음도 불편하게 한다. 서울 구로구의 한 노인 봉사기관에 다니는 김춘애(74·여)씨는 "만약 불순한 사람이 마치 선한 사람인 것처럼 속이고 다니면 당연히 기분 나쁠 것 같다"고 했다.
해당 기관 관계자는 "자원봉사자들의 신분이나 나이 등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누가 범죄자인지 파악할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 관계자는 "현재 범죄자들 반성의 진정성과 관련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면서 "봉사활동 역시 반성의 진정성 측면에서 함께 다뤄볼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
다만 "현재로서 봉사활동만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지는 않다"며 "판결의 유연성을 침해할 수도 있으므로 관련 규정을 만드는 것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sunja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