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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모스크바 이야기]...(2-4) 독이 된 시장경제

기사입력 : 2019년01월04일 15:10

최종수정 : 2019년01월14일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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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예측못한 거함의 침몰...러시아연방 민주주의 폐해 속출
옐친, 내란직전 보수진영 의사당 포격...1000명 이상 사망설
옐친 '우와좌왕' 통치에 실망...푸틴 '강한 러시아' 지향에 환호

[김흥식 뉴스핌 객원논설위원]

소련을 승계한 옐친의 러시아 연방은 처음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표방하며 힘차게 나가는 듯 했다. 그러나 러시아 역사상 가본 적도 없는 그 길을 간다는 것은 험난하기만 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격이었다.

옐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습되지 않은 민주주의’의 길을 간다는 게 애초부터 무리였다는 사실이 그대로 드러났다. 시장경제의 허점이 노정되기 시작했는데 단적인 예로 피아노를 치는 피아니스트 보다 피아노를 운반하는 짐꾼의 수입이 훨씬 많은 역설적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지식인들 사이에 ‘이건 아니지 않느냐’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모스크바 로이터=뉴스핌]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1995년 9월 연설 자료사진. 2018.01.01.

◆옐친 러시아연방, ‘학습되지 않은 민주주의’...1998년 모라토리엄 선언

무엇보다 소비에트라는 이름만 없어졌을 뿐 권위주의적 시스템은 달라진 게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등 서방의 원조에 의존해 경제를 살려보려고 했으나 공산체제의 특권층인 노멘클라투라의 배만 불리는 역효과를 낳았다. 전체적으로는 가격 자유화와 민영화라는 충격요법을 조급하게 추진한 결과, 국가적 파산에 가까운 지경에 이르렀다.

러시아 전체 사회의 5%를 치지하는 이른바 ‘노브이 루스키’라는 신흥부자와 ‘올리가르흐’라는 과두재벌이 국가재부의 대부분을 손아귀에 넣었다. 이는 심각한 국부유출과 국가재정파탄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었다. 마침내 1998년 옐친 정부는 모라토리엄(대외채무지불유예)을 선언하게 되었다. 시장경제 실험에 실패한 러시아는 ‘세계의 병자’라는 불명예를 지게 되었다. 서민 생활이 해체직전의 소련 시절보다 더 고달파졌다는 원성도 들어야했다.

소련붕괴 후 독립한 벨라루시의 슈스케비치 최고회의 의장 겸 국가원수와 기자화견하는 모습(92년 3월) 슈스케비치 왼쪽으로 장행훈 동아일보 유럽총국장 겸 모스크바 특파원과 필자. [사진=뉴스핌DB] 

◆옐친, 내란 직전 보수진영 최고회의 의사당 포격...1000명 이상 사망설

옐친은 정치적으로도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옐친의 급진개혁진영과 최고회의(의회)주도의 보수진영간 격렬한 정쟁으로 나라가 두 쪽으로 쪼개질 판이었다. 내란 직전의 상황으로 치닫자 옐친 정부는 93년 10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기에 이른다. 탱크를 동원, 보수파의 총본부격인 ‘벨르이 돔’(최고회의의사당)으로 불리는 최고회의 의사당을 포격, 제압하는 초유의 강경조치를 취했다. 군 동원을 꺼려한 군부를 설득해 무력진압에 나선 것인데 사실상 친위 쿠데타와 마찬가지였다.

미국 CNN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방송사들이 포격현장을 생방송으로 중계해 지구촌을 놀라게 했다. 당시 필자는 의사당 건너편 우크라이나 호텔 근처에서 취재했는데 의사당 포격의 진동과 의사당내 보수파 진영에서 퍼붓는 요란한 대응사격 총성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 과정에서 천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문이 나올 정도로 10월 사태는 험악했다.

◆옐친 우왕좌왕 통치에 실망...푸틴 ‘강한 러시아’ 지향 선호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 정치의 추이를 보면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옐친의 우왕좌왕식 통치에 실망하면서 ‘강력한 공권력’을 바라는 역설적 현상이 사회전반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미 정치적으로 무기력해진 옐친은 후계자로 선택한 푸틴에게 권력을 넘길 수 밖에 없었다. 푸틴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정치적 안정과 사회적 질서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끝이 안보이는 위기에 빠졌던 러시아가 원기를 회복하며 강대국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러시아인들 사이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소련의 해체가 국가적 재앙이자 민족적 수치였다는 감정이 일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한 푸틴은 철권을 휘두르며 대내, 대외적으로 민족주의 성향의 ‘강한 러시아’를 지향하고 있다. 스탈린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도자 모습은 ‘새로운 차르’라는 별명이 딱 들어맞는다. 마치 고대 로마에서 내란을 수습, 최후의 승자로서 초대 황제가 된 카이사르의 양자 옥타비아누스 즉 아우구스투스와 같은 압도적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것 같다. 러시아인의 민족적 DNA에는 민주적이고 온건한 지도자보다 독재적이더라도 질서와 안보를 확실히 챙기는 지도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다분하다는 평판이 다시 한 번 입증된 셈이다.

[모스크바 로이터=뉴스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신년연설을 하고 있다.2018.01.01.

◆‘새로운 차르’ 푸틴의 러시아...소련시절 영광 회복위해 절치부심

러시아의 역사를 보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잠재적인 역량을 발휘하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역사적 사례들이 많다. 과거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1차 대전 당시의 위기와 뒤이은 내전, 그리고 2차 대전 당시 사상 최악의 전투를 벌인 독·소전쟁이 그것이다. 나치 독일군과 소련군의 대결상황에 대해 어느 군사전문가는 재미있는 비유를 했다. 독일군을 예리한 칼을 든 무술절정의 고수로, 이에 대항하는 소련군을 커다란 몽둥이를 마구 휘두르며 맞서는, 덩치만 큰 촌뜨기로 비유했다.

처음부터 승부는 뻔한 듯 했으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즉 독일군은 예리한 칼로 몽둥이만 이리저리 휘두르는 우직한 촌뜨기를 마구 찔러 막바지까지 몰아치긴 했으나 제풀에 지쳐 나가 떨어진 반면 버텨낸 촌뜨기 러시아군은 점차 상대방에 대응하는 전술과 모략을 익히고 더 발전시킨 끝에 회심의 역습으로 최종 승리를 거두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푸틴의 러시아가 소련시절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절치부심하면서 예리하게 칼을 갈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모스크바의 대조국전쟁 박물관 앞 승리광장에 전신돼있는 각종 무기들. 2차 대전 당시 소련군이 나치 독일군을 파멸시키는데 사용했던 핵심 무기들이다. [사진=뉴스핌DB]

▲김흥식 뉴스핌 객원논설위원 

한국외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1977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디뎠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해직되는 아픔을 겪고 쌍용그룹에 몸담고 있다가 1988년 연합뉴스 기자로 복귀했다. 1991년 한국의 첫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파견돼 맹활약했다. 이후 연합뉴스 북한부장, 남북관계 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실 간사, 경영기획실장을 거쳐 편집담당 상무이사를 지냈다. 퇴임후 연합뉴스 부설 동북아센터 상임이사, 중소기업진흥공단 비상임이사, 도로교통공단 비상임이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특별위원 등을 지낸뒤 현재 뉴스핌 객원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kh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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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문의 화랑담배] 제2회 광복군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 가릉호텔에서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식이었다. 미국 한인 동포들이 보내온 돈 4만원으로 조직한 군대였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0억 원 정도 된다.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 참모장 이범석 장군, 제1지대장 이준식, 제2지대장 고운기, 제3지대장 김학규, 제5지대장에 나월환을 임명했다. 지대장은 지금의 사단장에 해당한다. 모두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비롯하여 남북 만주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군 출신이었다. 한국광복군 훈련반 제1기 졸업사진. [사진= 독립기념관]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포고문을 통해 "국내외 동포들에게 알립니다. 1940년 9월 17일부로 대한민국 광복군을 창설하였습니다. 광복군은 1907년 8월 1일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한 날이 바로 광복군 창설일임을 선언합니다. 광복군은 구 한국군의 후신으로 33년간에 걸친 의병과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을 계승한 전통 무장 조직입니다"라고 했다. 대한제국 국군-의병-독립군의 군맥(軍脈)과 군혼(軍魂)을 분명하게 잇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부대 편성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여단, 사단 6단으로 편성하였다. 총 3개 사단을 조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원이 적은 상황에서 우선 지대를 만들고, 각 지대를 구대와 분대로 연계한 전투부대를 구성했다. 임시정부에서 1940년 9월 19일 중국 국민당 정부에 통보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직원 명단'에 의하면, 부대 규모가 총사령부와 4개 단위부대, 여기에다 조선혁명군 부대까지 포함하여 5000여 명이었다. 임시정부에서는 1941년 12월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1942년에는 미국 측에 "미국이 제주도를 해방 시켜 주면,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제주도로 옮긴 후, 광복군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 상륙작전을 전개하겠다."라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실제로 미국 OSS 부대(지금의 CIA)와 1945년 4월부터 8월까지 강도 높은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주요 훈련은 3개월 기간에 고공낙하, 암살법(권총에 특수장치를 하여 소리 없이 암살하는 방법), 통신(암호의 작성 및 해독법, 무전기 조작 및 수리), 교란 행동, 정보수집, 폭파 등 이었다. 일과는 07:00∼12:00 오전 훈련, 13:00∼18:00 오후 훈련, 19:00∼22:00 야간 훈련이었다. 주요 임무는 대한민국으로 낙하산과 잠수함으로 침투하여 미 공군 공습에 필요한 지형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일본군 군사시설 탐지 및 파괴 지하 유격대를 조직하여 연합군 상륙작전 시 제2선에서 연결하는 작전이었다. 마침내 1945년 8월 7일 모든 훈련을 마치고 국내진공작전 출정식을 개최했다. 개시일은 8월 10일이었다. 출정식 때 장준하 경기도 공작 반장은 "나는 조국광복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나의 죽음을 지불하면, 내 능력껏 그 대가가 조국을 위해서 결제될 것입니다. 나의 각오는 한 장의 정수표입니다. 발생인은 장준하, 결제인은 조국입니다"라는 유서까지 작성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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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이시바' 누구?...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직 사임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정국의 관심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로 쏠리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곧 총리직을 맡는 일본 정치 구조상 이번 총재 선거는 사실상 다음 총리를 뽑는 절차다. 자민당은 조만간 새로운 총재 선거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2024년 9월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경합했던 주요 인사들이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국 운영이 소수 여당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차기 총재가 야당과 어떻게 연대할지, 어떤 연립 구도를 짤지가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권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지난달 29~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다카이치가 23%, 고이즈미가 22%를 기록했다. 나란히 1, 2위다. 자민당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고이즈미가 32%로, 다카이치(17%)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카이치는 2024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에게 역전패했다. 고이즈미 역시 의원 표에서 선두에 올랐지만 당원 표에서 밀리며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당내 기반과 대중적 인지도를 겸비해 차기 선거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주자들이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981년생(44세)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2009년 중의원 첫 당선 이후 줄곧 '포스트 아베',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다. 환경상, 농림수산상을 거쳤으며 개혁 성향과 젊은 이미지로 지지층을 넓혔다. 2024년 총선에서 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농림수산상으로 복귀해 쌀 유통 개혁 등 농정 개혁에 매진했다. 대중적 인지도와 '고이즈미 브랜드'라는 정치 자산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1961년생(64세)으로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여성 정치인이다. 2021년 총재 선거에 첫 도전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3위를 기록했다. 2024년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의원 72표, 당원 109표)를 얻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역전 당했다. 유일한 여성 후보로서 '보수의 아이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던 의원 그룹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이시바 정권에서 당직 제안을 거절하며 독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야시·모테기 등 잠룡도 주목 고이즈미와 다카이치 두 선두 주자 외에 잠룡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옛 기시다파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시바 정권의 2인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은 당내 경험과 풍부한 인맥을 강점으로 삼고, 아소 다로 전 부총리와 교류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5선 의원으로, 동기 의원들과 옛 니카이파의 지원을 받으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 총재 선거 이후에도 정국 '안갯속'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 표를 합산하는 방식이 원칙이지만, 긴급 시에는 국회의원과 지방 지부 대표만 투표하는 '양원 의원 총회'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 표의 비중이 커져 파벌 역학이 중요해진다. 차기 총재가 선출되더라도 곧바로 정권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헌법상 총리는 국회에서 지명되는데, 자민·공명 양당은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야당이 단일 후보를 세워 결집할 경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민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더라도, 예산안·세제 개혁 법안 등 국정 운영은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차기 총재는 곧바로 '연립 확대'나 '정책 연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고,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어떤 야당과 손을 잡을지가 핵심 화두가 된다. 결국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단순히 차기 지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일본 정치가 다당제 속에서 어떤 연립 구도를 구축할지 시험대가 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goldendog@newspim.com 2025-09-0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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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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