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주연 기자 = 3.1운동 100년이 지나 열사님 영화가 나오게 됐어요. 너무 늦었죠. 죄송해요. 저는 매일 같이 기도하듯 연기에 임했던 것 같아요. (중략) 작년 가을, 서대문 형무소에는 한마음 한뜻으로 모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분들의 존경과 사랑을 담아 이 영화를 바치고 싶습니다. -고아성이 유관순에게 보내는 글 中
배우 고아성(27)이 27일 신작 ‘항거:유관순 이야기’을 선보였다. 이 영화는 1919년 3.1 만세운동 후 서대문감옥 8호실 속 영혼만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유관순 열사와 8호실 여성들의 1년간 이야기를 다뤘다. 고아성이 유 열사를 열연했다.
“부담감이 가장 컸어요. 이걸 넘어서야 연기를 하는데 그 과정이 다른 영화보다 유독 힘들었죠. 물론 지금 돌아보면 그 순간조차도 다 소중하게 느껴져요. 열사님을 향한 마음도 더 다양해졌죠. 처음에는 죄책감만 엄청났거든요. 피상적인 것만 알다가 열사님의 인간적인 부분을 접하니까 너무 죄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존경과 죄송함 말고는 어떤 것도 가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거죠.”
고아성은 테스트 촬영을 위해 처음 서대문형무소에 갔던 날도 또렷하게 기억했다. 수행복을 입고 맨발로 땅을 밟던 그 순간, 고아성은 지금 이 마음을 잊지 않겠노라, 끝까지 가져가겠노라 다짐했다.
“몇 번 가본 곳이지만, 그렇게 혼자 있어 본 건 처음이었죠. 스태프, 카메라는 저랑 멀리 떨어져 있었어요. 그때 그 기분은 정말 잊을 수가 없어요. 뜨거웠고 깊은 울림이 왔죠. 책, 자료의 도움도 꾸준히 받았어요. 특히 감독님이 주신 책 <유관순:3.1운동의 얼>의 도움이 컸죠. 열사님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뿐 아니라 8호실을 비롯한 실존 인물들의 증언이 실려있었어요.”
그렇게 고아성은 유관순 열사의 마음을 수없이 들여다보고 실제 그가 했을 고민과 번뇌를 상상하며 신중하게 유 열사를 그려갔다. 고문으로 거의 먹지 못하게 된 모습을 촬영할 때는 실제로 열흘간 금식까지 했다.
“몸을 따로 준비해간 영화는 처음이었어요. 시나리오를 보고 회의에 들어갔는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금식을 떠올렸어요. 확실히 마음가짐에 도움이 많이 됐죠. 막연히 캐릭터의 마음을 생각하는 것과는 또 다른 준비가 됐어요. 완전히 금식한 건 5일 정도에요. 물도 안먹었죠. 사례를 찾아보면서 서서히 음식을 줄여가고 끝난 후에는 또 서서히 음식을 늘려갔어요.”
고아성은 금식보다 힘들었던 건 따로 있었다고 했다. 무자비한 고문이 행해지던 장면이라 예상했지만, 그 또한 아니었다.
“초반에 장난치는 장면이 많이 나오잖아요. 거기에 접근하는 게 연기적으로 가장 힘들었죠. 그러다 그 당시에 플라톤의 ‘인간사에 완전한 진지함은 없다’는 말을 알게 되면서 거기 많이 기대서 촬영했어요. 심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건 홀로 남았을 때였죠. 마지막을 예상했을 거라서 더 가슴이 아팠어요. 촬영도 순서대로 했죠. 배우들이 모두 8호실을 떠나고 마지막 신을 찍는데 기분이 묘했어요.”
힘든 순간에 버팀목이 된 건 역시나 함께한 배우와 스태프들이었다. 특히 8호실에 함께했던 24인의 진실된 눈과 마음이 고아성을 버티게 했다.
“감독님, 스태프, 배우 정말 모두 한 마음으로 도왔어요. 많은 사람이 같은 마음으로 모인 힘이 크다는 걸 새삼 느꼈죠. 그게 가장 크게 와닿은 건 3.1운동 독립선언서를 외치는 장면이었고요. 3일 전부터 잠을 못잘 정도로 부담되고 긴장됐죠. 하늘을 보면서 대사를 하다가 마지막에 24명의 배우와 한 명씩 아이컨텍을 해요. 그 순간 주고받는 마음이 실시간으로 느껴졌어요.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죠.”
유난히 아팠고 유난히 힘들었고, 그래서 또 너무나 따뜻했던 지난 가을이었다. 고아성은 그때를 다시 한번 떠올리며 “배우로서도 사람으로서도 많은 걸 배우고 느꼈던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번 영화로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기회들이 많이 찾아오는 듯해요. 최근에는 유관순 열사 서훈등급 상향을 위한 서명운동에도 참여하게 됐죠. 어떻게 보면 전 연기밖에 한 게 없는데 너무 많은 기회를 주셔서 영광스러워요. 조금 있으면 이제 3월 1일이잖아요. 물론 영화 개봉 후라 스케줄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도 남다른 시간이 될 듯해요. 아마도 제 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3.1절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jjy333jjy@newspim.com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