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람들은 해외여행에서 싹쓸이 명품 쇼핑으로 유명하다. 올해 노동절 연휴를 맞아 845만 명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이들이 해외시장에서 이번에는 얼마나 많은 명품을 사들였을까.
중국은 세계 제1의 명품 소비대국답게 2018년 엄청난 규모의 세계적인 명품을 구입했다.미국 컨설팅업체 매킨지가 5월1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소비자들은 2018년 7770억 위안(약 134조원)어치 명품을 샀다. 이는 세계 명품 소비(2조4060억 위안, 346조원)의 32%를 차지한 것이다. 지난해 세계 명품을 구입한 소비자 3명중 1명이 중국인인 셈이다. 중국 명품 소비는 2000년 만해도 세계 1%에 불과했지만 18년 만에 엄청나게 늘었다.
1990년 이후 출생한 90후(後), 1980년 이후 출생한 80후(後)가 명품 소비자의 71%를 차지했다. 이들은 돈을 저축해서 미래를 대비하기 보다는 인생을 즐기자는 가치관에다 화려함과 세련됨을 추구하는 심리가 맞물려 명품을 구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명품 소비를 주도하는 집단이 40세~70세인 것과 비교하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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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3세~38세 중국 명품 소비자의 60%가 부모에게 돈을 받아 물건을 구입했다. 이는 부모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는 이른바 '컨라오주(啃老族, 캥거루족)'가 중국 명품 소비의 주력부대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컨라오는 노인, 그러니까 부모에게 빌붙어 산다는 중국말이다. 여기에 무리를 뜻하는 중국어 주(族)를 덧붙이면 '부모에게 빌붙어 사는 집단'을 말한다. 미국 컨설팅업체 베인 캐피털은 중국 젊은이들의 명품 선호 추세가 지속되면서 2025년이면 중국의 명품 소비가 1600억 유로(209조 원)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에서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더우팅하오(都挺好, All is well)'도 컨라오주 문제를 다루고 있다. 무대는 동남부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의 평범한 가정이다. 엄마가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집에서 2남1녀 자녀가 혼자 남은 아버지를 누가 모시느냐를 놓고 드라마가 전개된다.
이 집안의 둘째 아들은 전형적인 컨라오주이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어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일찌감치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직장을 잡을 때부터 본격적인 컨라오주 생활의 시작이었다. 엄마가 건네준 뒷돈을 주고 일자리를 얻었다. 결혼을 하고 아파트를 장만할 때나 자동차를 살 때도 엄마가 준 돈으로 해결했다.
혼자 남은 아버지를 모시기는 하지만, 아버지 소유의 옛날 집을 처분한 돈을 노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족들에게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다. 아버지를 모시면 그 정도 대가를 챙기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의 아내도 남편이 시집에서 돈을 많이 가져다 쓴 상태인데도 명품 가방에다 비싼 구두를 즐겨 신었다. 전형적인 컨라오주 부부인 셈이다.
은퇴한 아버지는 더 이상 둘째 아들에 대해 경제적 지원할 생각이 없다. 둘째 아들이 자신의 돈을 노린다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아들 집에서 서둘러 나와 독립을 선언했다. 둘째 아들이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은 엄마의 지나친 편애 때문이었다. 학교 다닐 때 오빠 속옷마저 여동생보고 빨래하라고 할 정도로 엄마는 남존여비 봉건사상에 물들어 있었다.
여동생은 태어나자마자 한자녀 정책을 어겼다는 이유로 부모가 당국에 벌금까지 물게 되면서 엄마로부터 늘 구박을 받았다. 하지만 일찌감치 경제적으로 독립한 덕분에 직장여성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둘째 아들은 그나마 직장을 다니고, 부인도 공인회계사여서 컨라오주라고 해도 상황이 아주 나쁜 것은 아니다.아예 별다른 직장도 없이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컨라오주도 많다.
중국의 컨라오주는 규모가 어느 정도일까. 2009년 조사에 따르면 중국 대학 졸업생 16만5100명이 취업을 포기하거나 수입이 적은 직장에 다니면서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0년 전 통계인 만큼 지금은 훨씬 많은 컨라오주가 생겼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중국 사회과학원 리춘링 연구원은 '실업이나 취업준비생, 저소득 취업자들이 컨라오주에 해당한다'면서 '컨라오주를 새로운 실업자 집단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1978년 한자녀 정책을 도입한 이후 가정마다 소황제, 소공주가 나오면서 컨라오주를 만드는 토양이 확실하게 만들어졌다. 집마다 외아들이나 외동 딸 이다보니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래서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 능력이 떨어진다. 성인이 되어도 독립적인 생활능력이 없어 모든 것을 부모에 의존하고 부모가 곁에 있어야 안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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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라오주를 어떻게 할 것이냐. 이것이 중국에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한자녀 정책으로 태어난 소황제, 소공주가 지금은 상당수가 컨라오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드라마에 나오는 둘째 아들 부인은 명품족이기도 하지만 친정에서 외동딸로 자랐다. 전형적인 소공주이다. 친정 부모는 사위가 주먹을 휘둘러 교도소에 갔을 때도 딸과 함께 피해자인 딸의 시누이(딸의 남편의 여동생)를 찾아가 사과할 정도로 딸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딸이 과거 썼던 방을 그대로 두고 '남편과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돌아오라'고 말할 정도였다. 컨라오주 문제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그들은 취업을 하지 못해 부모에 기대고 있지만, 부모는 대부분 퇴직을 한 상태라 자녀의 집세는 물론 생활비나 용돈까지 대줄 경우 경제적 부담이 엄청나다. 국가적으로 보면 실업 인구 증가로 국민경제발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부모 형편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컨라오주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북부 허베이(河北)성은 2018년 12월 인민대표대회를 통해 60세 이상 노인들에게 자녀들의 일방적인 컨라오 행위(경제지원요구행위)를 거부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노인권익보장조례'를 통과시켰다. 조례는 성년이 되고 독립생활능력이 있는 자녀가 부모에게 경제적 도움을 요구할 경우 부모가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자녀가 부모의 퇴직금이나 재산을 강제로 가로챌 경우 형사적 책임도 물을 수 있도록 했다.
앞서 북부 산둥(山東)성도 2014년 6월 부모가 자녀의 컨라오 행위를 거절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노인권익보장조례를 만든 바 있다. 당시 부모가 자녀를 도와줄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만큼 굳이 조례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조례를 만드는 것이 법률의 공백을 메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견해도 만만찮았다. 이 사안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컨라오주를 비난하기도 쉽지 않다. 부모가 경제적 능력이 있다면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다고 여기는 젊은이가 예상보다 많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상황에서 자녀가 집을 장만하는 데 자신의 능력으로는 역부족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부모의 경제적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산둥성 칭다오(靑島)에서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샤오지(29)는 2010년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 다니는 회사에 들어갔다.
사회생활을 처음 할 때는 아파트를 장만하는 데 부모에게 손 내밀기가 미안했다. 대학까지 보내 줬는데 은퇴를 앞둔 어른에게 더 이상 신세를 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값이 뛰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2016년 90㎡ 아파트를 샀다. 분양대금은 ㎡당 8500 위안이었다. 아파트 계약금 23만 위안 중 16만 위안을 부모로부터 지원받았다. 차라리 부모 도움을 일찍 받았더라면 훨씬 수월하고 싸게 집 장만을 했을 거라고 후회했다.
칭다오 대학에 다니는 리신(22)은 대학 졸업을 앞둔 취업 준비생이다. 그는 부모로부터 전적인 도움을 받아 2018년 조그만 아파트를 장만했다. 어차피 결혼할 때 필요한 집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부모가 판단했고, 그도 부모 도움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부모 신세를 지는 컨라오주를 부모를 모시는 양라오주(養老族)로 바꿀 수 있는 해법은 없는가. 여기에 중국 당국의 고민이 있다.
홍인표(고려대 언어정보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