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때 일이다. 6월 22일 광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스페인과 8강은 혈투였다. 연장전에 승부차기까지 이어진 기나긴 경기 시간도 그렇지만, 경기 내용 자체도 매우 거칠었다.
경기 후 가장 큰 손실은 김남일의 부상이었다. 김남일은 이날 상대 선수의 거친 태클로 왼발을 크게 다쳤다. 김남일은 통증을 참고 약 20분 정도 더 뛰다가 전반 32분 교체 아웃됐다.
2002 4강 월드컵 신화를 이룬 히딩크 전 한국 대표팀 감독, 이영표, 박지성, 정몽준 명예회장(사진 왼쪽부터). [사진= 대한축구협회] |
히딩크 전 감독과 4강 신화를 일군 김남일. [사진= 대한축구협회] |
2016년 프리미어리그 첼시 사령탑을 역임한 히딩크. [사진= 로이터 뉴스핌] |
승부차기 끝에 감격적인 월드컵 4강 기적을 이뤘지만 주치의를 맡고 있던 난 이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 김남일의 부상을 회복시키는 게 급했기 때문이다. 24시간이 경과한 시점에서 정밀하게 진단해보니 "독일전을 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무리해서 출전한다고 해도 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렵고, 자칫하면 더 큰 이차 부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았기 때문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의료적 관점에서 김남일 선수는 독일전에 뛸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렸다. 히딩크 감독은 F로 시작하는 욕설을 섞어가며 격정적으로 반응할 정도로 안타까워했다.
당시 국내 축구계에는 어지간한 부상이면 적당히 치료받고 뛰는 게 미덕인 분위기가 있었다. 그 경기가 월드컵 4강이라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뛰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진공청소기' 김남일이라면 독일의 전차군단의 '조타수' 미하엘 발락을 무력화 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히딩크는 독일전에 끝내 김남일을 기용하지 않았고 결국 김남일이 없는 한국은 발락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0-1로 패했다. 히딩크는 의료진을 원망하지 않았다.
히딩크가 지금까지 두고 두고 높은 평가를 받는 건 그가 4강이라는 업적도 있지만 축구의 문화와 시스템 전반을 혁신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같은 태도는 축구를 넘어서 사회 전반에까지 영향을 줬다. 히딩크 리더십을 연구하는 책도 쏟아져 나왔다. 그 리더십 중 하나가 전문가를 믿고 맡기는 태도였다. 비단 의료진 뿐만 아니라 체력 훈련도 실력있는 최고의 트레이너를 초빙해 믿고 맡겼다. 유능한 기자가 언론 담당을 맡고, 외교부 관료까지 팀에 합류했다. 선수와 코칭스태프뿐만 아니라 이렇게 각계의 전문가의 역량을 결집했기 때문에 4강 신화를 이뤄낸 것이다.
다시 유럽 축구 시즌이 시작됐다. 선수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뽐내기 위해 사력을 다해 그라운드를 누빌 것이다. 그 곳은 총성없는 전장이다. 월드컵 못지 않은 경쟁이 펼쳐진다. 이재성, 황희찬 선수는 여름 시즌 동안 우리 병원에서 컨디션을 조절했다. 모든 선수가 다치지 말아야겠지만 이 선수들에겐 더 각별하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이번 시즌도 거친 태클의 풍랑을 피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김현철 하남 유나이티드병원장
히딩크 감독의 요청으로 선발한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 제1호 상임 주치의. 2006년 월드컵도 동행했다. 지금은 하남 유나이티드병원을 ‘아시아 스포츠 재활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한 도전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