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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우의 외계인 수첩] '히말라야 블루' 강찬모

기사입력 : 2019년10월17일 17:35

최종수정 : 2020년03월10일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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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삶'이라는 글자를 해체하면 ㅅㆍㅏ ㆍㄹ ㅏㆍㅁ 이 된다. 사람이 문명을 연다. 사람이 문화를 빚고 오롯이 역사가 된다. 그래서 미래를 위해 사람을 관찰하고, 사람을 알처럼 품는 것이다. 

국가대표급 크리에이터로 통하는 오치우 빅브라더스 대표가 글로벌뉴스통신사 뉴스핌을 통해 '외계인채집'이라는 생경한 이름으로 주 1회 인터뷰를 연재한다. 문화계를 비롯한 각계각층과의 세밀하고 주관적인 만남 속에서 지구 곳곳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매력 넘치고 독특한 인간 모습들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오 대표는 소설 목민심서 250만부 판매전략 [사람을 좋아하는 책] 캠페인, 실패상황 정복전략 [프로는 실패로 배운다], 최초의 중소기업 채용전략 기획, 청바지 점핑 프로모션전략, 중저가 다이아몬드 특화판매전략 등 처음이라는 수식어를 달며 기발한 아이디어와 기획으로 광고·카피라이터 업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강찬모는 블루다!'  그는 바다같은 그림 한점에 빠져 익사를 경험한다. 스무살, 그 나이에 노을 빛은 왜 그의 눈동자안으로 자꾸만 가라 앉았을까? 그 노을 빛이 고여 눈물이 되고, 눈물이 차오르면 퍼내 듯이 그림을 그렸다. 눈물 젖은 노을 빛을 퍼내 캔버스 위에 풀어 놓으면 그림이 되고 그때마다 강찬모는 목이 탔다. 

알 수 없는 갈증에 시달리던 강찬모는 술발로 그림을 그리다가 영발 센 신흥종교 교주처럼 세상을 횡행 했었다. 그러던 어느 기운좋은 날, 그는 히말라야를 조우하게 된다. 

오치우 빅브라더스 대표

 히말라야는 그에게 물었다. 강찬모는 무엇인가? 강찬모가 선뜻 대답했다. 나는 '블루'다. 히말라야는 비로소 그에게 '블루'를 허락했다. '감성 익사'를 경험했던 그의 바다를 건너고 세상에 어떤 물감으로도 그릴 수 없던 노을빛 미혹을 퍼내고 이제는 빈 몸으로 정갈하게 벽을 마주 하고 있다.   

몸과 마음을 다 비워내고 이제 정체불명의 '블루'로만 남은 강찬모는 어딜 만져도 '블루'가 묻어 난다. 히말라야는 비수를 지르듯 묻고, 강찬모는 비명처럼 답했다. 

'히말라야 블루'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렇게 태어났다. 그를 만날 때마다 그 등 뒤에 서있는 히말라야를 본다. 때로는 스승처럼, 때론 설산 수행 중인 선승의 도반처럼 그렇게 그를 감싸고 있다.

그는 중앙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후 1978년 대만의 동양화 대가 '장디첸'를 만난다. 동양화의 산맥과 같은 장디첸은 강찬모의 피 속에 침잠해 있던 동양화의 DNA를 깨워냈다. 동양화의 씨앗을 품은 그는 1981년 일본 미술대와 쯔꾸바 대학에서 5년간 공부하며 한지에 채색하는 '조선채색비법'을 연구했다. 과거 일본에 빼앗긴 조선 채색화 비법를 되찾아 귀국, 대구대 대학원에서 동양화 연구를 했다.

그렇게 화가가 된 그는 20세기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갈 곳 몰라하는 실존주의적 현대인의 표정을 격렬하고 화려하게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방황하는 청춘처럼 종로의 뒤안길 '피맛골'을 배회하기도 했다. 불안한 청춘의 아지트 '시인통신' 에 출몰, 마초적인 술버릇으로 ''찬모형 떴다! 도망가자!''라는 유행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찬모형이 사이비 신흥종교에 빠진거 같다'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 

강찬모

평소 ''야! 너 이리와봐, 똑바로  술 따뤄봐. 뭘봐! 확!'' 이러던 그가  까마득한 후배에게 "제가 그동안 실수많이 했습니다. 용서하시고 이제부터 정중히 모시겠습니다." ''한 잔 하시지요. 저는 이제 술 안마십니다!'' 돌변한 것.  ''히말라야 갔다오더니 뭔 일 이래?", ''저렇게 사람이 확 변하믄 못 산다든디. 워쩐대'' 그 무렵 그는 '환골탈태'를 실제로 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자신의 목표대로  '히말라야산타'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번도 히말라야의 정상 근처에 오르지 못했다. 히말라야 보다 더 높은 욕심을 지닌 그는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 히말라야가 물었다고 한다. 네가 나를 아느냐고? 

강찬모는 뚝! 뚝! 뚝! 가슴 속으로 눈물만 떨궜단다. 해질녁, 카투만두의 허름한 골목길 입구에서 산으로  짐을 지고 떠난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지금 그가 담아온 히말라야 '블루' 속에는 장전된 장약같은 희열이 숨어있다. 불꽃이 아니라 뜨거운 숨결만으로도 점화되어 가슴 속에서 폭발할 수 있는, 그것들이 엎드려 있다.

강찬모 作

강찬모는 오랜 방황과 수련의 끝에 히말라야를 만나면서 그 자신 안의 그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정체성과 가치관을 영점삼아 세상을 조준하기 시작했다.

''국내 개인전은 매년 열렸지요. 거기다가 프랑스 루브르 국립살롱전 같은 해외 전시회등 해외 아트페어(Art Fair. 미술시장)에서는 전 작품이 완판되기도 했고, 2013년에는 프랑스 보가드성 박물관 살롱전에서 금상을 수상했었지요.''

화가가 전시회를 통해 그림을 판다는 건 돈이 된다는 것과는 좀 다른 의미가 있다. 비로소 세상과 터놓고 대화가 된다는 뜻이다. ''히말라야가 마음을 열게 합니다. 내가 그린 '히말라야'를 통해 모두와 소통 합니다.'' 그에게 지금 '히말라야' 는 꿈이고 세상을 여는 통로이고 인생이며 판타지이며 그가 믿는 성자의 고향이다. 

히말라야 5000미터 지점, 강찬모가 늘 그  산을 만나는 그 곳에서, 그는 밤하늘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사랑하는 별들을 그린다. ''매일 밤 사람들이 별을 헤면서 별을 따가거든요. 그 숫자만큼 별을 그려넣어 야지요. 늘 부족하니까...''

그  중에 블루는 무슨 뜻일까? ''아! 히말라야 블루요!'' ''하늘과 가장 높은 그곳에서 '히밀라야 블루'를 발견했어요. 그 푸름에  뭔가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나요? 히말라야 블루는 영원을 향하는 소망, 무한한 사랑을 향한 날카로운 기도입니다. 하늘을 향한 간절한 바램들이 그리도 절절한 푸른빛으로, 히말라야의 빛깔이 되었습니다.''

그 푸른 빛깔이 그토록 비장하게 고운 이유는 죽음 만큼 '투명한 기도'가 비로소 '히말라야 블루'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세상 삶처럼 높낮이가 있는 도톨한 한지 위에 청명한 느낌으로 스며드는 '히말라야 블루'는 순백의 설산을 그리워하는 지친 사람들에게 '방언'같은 생경한 축복이 된다.

강찬모는 이제 화가이기 보다 '히말라야의 도구'로 자신의 쓰임새를  말한다. "히말라야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습니다. 히말라야 블루는 세상에서 가장 청명한 소리입니다.''

강찬모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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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문의 화랑담배] 제2회 광복군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 가릉호텔에서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식이었다. 미국 한인 동포들이 보내온 돈 4만원으로 조직한 군대였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0억 원 정도 된다.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 참모장 이범석 장군, 제1지대장 이준식, 제2지대장 고운기, 제3지대장 김학규, 제5지대장에 나월환을 임명했다. 지대장은 지금의 사단장에 해당한다. 모두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비롯하여 남북 만주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군 출신이었다. 한국광복군 훈련반 제1기 졸업사진. [사진= 독립기념관]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포고문을 통해 "국내외 동포들에게 알립니다. 1940년 9월 17일부로 대한민국 광복군을 창설하였습니다. 광복군은 1907년 8월 1일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한 날이 바로 광복군 창설일임을 선언합니다. 광복군은 구 한국군의 후신으로 33년간에 걸친 의병과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을 계승한 전통 무장 조직입니다"라고 했다. 대한제국 국군-의병-독립군의 군맥(軍脈)과 군혼(軍魂)을 분명하게 잇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부대 편성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여단, 사단 6단으로 편성하였다. 총 3개 사단을 조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원이 적은 상황에서 우선 지대를 만들고, 각 지대를 구대와 분대로 연계한 전투부대를 구성했다. 임시정부에서 1940년 9월 19일 중국 국민당 정부에 통보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직원 명단'에 의하면, 부대 규모가 총사령부와 4개 단위부대, 여기에다 조선혁명군 부대까지 포함하여 5000여 명이었다. 임시정부에서는 1941년 12월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1942년에는 미국 측에 "미국이 제주도를 해방 시켜 주면,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제주도로 옮긴 후, 광복군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 상륙작전을 전개하겠다."라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실제로 미국 OSS 부대(지금의 CIA)와 1945년 4월부터 8월까지 강도 높은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주요 훈련은 3개월 기간에 고공낙하, 암살법(권총에 특수장치를 하여 소리 없이 암살하는 방법), 통신(암호의 작성 및 해독법, 무전기 조작 및 수리), 교란 행동, 정보수집, 폭파 등 이었다. 일과는 07:00∼12:00 오전 훈련, 13:00∼18:00 오후 훈련, 19:00∼22:00 야간 훈련이었다. 주요 임무는 대한민국으로 낙하산과 잠수함으로 침투하여 미 공군 공습에 필요한 지형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일본군 군사시설 탐지 및 파괴 지하 유격대를 조직하여 연합군 상륙작전 시 제2선에서 연결하는 작전이었다. 마침내 1945년 8월 7일 모든 훈련을 마치고 국내진공작전 출정식을 개최했다. 개시일은 8월 10일이었다. 출정식 때 장준하 경기도 공작 반장은 "나는 조국광복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나의 죽음을 지불하면, 내 능력껏 그 대가가 조국을 위해서 결제될 것입니다. 나의 각오는 한 장의 정수표입니다. 발생인은 장준하, 결제인은 조국입니다"라는 유서까지 작성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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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이시바' 누구?...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직 사임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정국의 관심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로 쏠리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곧 총리직을 맡는 일본 정치 구조상 이번 총재 선거는 사실상 다음 총리를 뽑는 절차다. 자민당은 조만간 새로운 총재 선거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2024년 9월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경합했던 주요 인사들이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국 운영이 소수 여당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차기 총재가 야당과 어떻게 연대할지, 어떤 연립 구도를 짤지가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권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지난달 29~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다카이치가 23%, 고이즈미가 22%를 기록했다. 나란히 1, 2위다. 자민당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고이즈미가 32%로, 다카이치(17%)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카이치는 2024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에게 역전패했다. 고이즈미 역시 의원 표에서 선두에 올랐지만 당원 표에서 밀리며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당내 기반과 대중적 인지도를 겸비해 차기 선거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주자들이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981년생(44세)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2009년 중의원 첫 당선 이후 줄곧 '포스트 아베',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다. 환경상, 농림수산상을 거쳤으며 개혁 성향과 젊은 이미지로 지지층을 넓혔다. 2024년 총선에서 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농림수산상으로 복귀해 쌀 유통 개혁 등 농정 개혁에 매진했다. 대중적 인지도와 '고이즈미 브랜드'라는 정치 자산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1961년생(64세)으로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여성 정치인이다. 2021년 총재 선거에 첫 도전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3위를 기록했다. 2024년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의원 72표, 당원 109표)를 얻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역전 당했다. 유일한 여성 후보로서 '보수의 아이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던 의원 그룹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이시바 정권에서 당직 제안을 거절하며 독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야시·모테기 등 잠룡도 주목 고이즈미와 다카이치 두 선두 주자 외에 잠룡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옛 기시다파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시바 정권의 2인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은 당내 경험과 풍부한 인맥을 강점으로 삼고, 아소 다로 전 부총리와 교류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5선 의원으로, 동기 의원들과 옛 니카이파의 지원을 받으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 총재 선거 이후에도 정국 '안갯속'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 표를 합산하는 방식이 원칙이지만, 긴급 시에는 국회의원과 지방 지부 대표만 투표하는 '양원 의원 총회'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 표의 비중이 커져 파벌 역학이 중요해진다. 차기 총재가 선출되더라도 곧바로 정권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헌법상 총리는 국회에서 지명되는데, 자민·공명 양당은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야당이 단일 후보를 세워 결집할 경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민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더라도, 예산안·세제 개혁 법안 등 국정 운영은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차기 총재는 곧바로 '연립 확대'나 '정책 연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고,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어떤 야당과 손을 잡을지가 핵심 화두가 된다. 결국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단순히 차기 지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일본 정치가 다당제 속에서 어떤 연립 구도를 구축할지 시험대가 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goldendog@newspim.com 2025-09-0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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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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