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 막기 위해 비닐과 스티로폼 덧대
거주 열악하지만..주민들 이주 거부
[서울=뉴스핌] 황선중 기자 = 서울의 대표적 무허가판자촌 '구룡마을' 주민들의 겨울나기가 시작됐다. 겨울의 시작이라는 절기상 '입동(立冬)'이 지나고 이번주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진다는 소식에 구룡마을 주민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드리웠다.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의 표정은 비교적 덤덤했다. 조금이라도 바람을 막기 위해 슬레이트 지붕 위 스티로폼과 비닐, 합판, 솜 등을 덕지덕지 덧붙여 놓은 집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1988년부터 31년간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는 오수천(79) 씨는 "겨울에 추운 거야 당연한 것이니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겨울철 연탄보일러를 활용해 난방을 한다.
오씨는 구룡마을에서 그나마 안락하게 생활하는 축에 속한다. 오씨는 국가에서 제공하는 기초연금 외에 인근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해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다. 한달 수입은 27만원 안팎.
또 다른 거주민 이순년(92) 씨의 사정은 다르다. 이씨는 60대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딸 조씨는 수년 전 사고로 후두부를 다친 이후 우울증을 앓고 있다. 건강상 모녀 모두 일을 하기 어려워 별다른 수입이 없다.
근심이 가장 깊어질 때는 칼바람이 들이닥치는 겨울철이다. 그는 "추위를 피하려면 집 곳곳에 뚫려 있는 바람 구멍을 막고 연탄을 때야 하지만 모두 막으면 연탄 냄새 때문에 딸이 머리가 아프다고 역정을 낸다"고 했다.
[서울=뉴스핌] 황선중 기자 =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자리한 구룡마을의 모습. 2019.11.12 sunjay@newspim.com |
구룡마을은 1980년대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으로 인해 개포동이 재개발되는 과정에서 집을 잃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살면서 형성됐다. 대부분 구청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건축물이다.
강남구에 따르면 구룡마을에는 올해 5월 기준 총 701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강남구 관계자는 "구룡마을은 건물이 대부분 낡은 데다 주택 밀집도가 높은 대표적인 재해 취약 지역"이라고 했다.
실제 2011년 7월에는 시간당 100mm의 폭우로 마을 절반에 달하는 563개 가옥이 침수됐다. 2012년 이후로도 7건의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했다. 2014년 11월에는 화재 사고로 70대 남성 1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를 방지하고자 마을 곳곳에는 '문어발식 콘서트 사용은 화재의 원인' '가스불 사용 시에는 자리를 비우지 마세요' 등 문구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날 만난 한 주민은 "여기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고 했다.
구룡마을은 현재 강남구 주도의 도시개발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도시개발사업은 마을 일대 26만6502㎡(약 80,616평)에는 임대 1107가구를 포함한 아파트 2838가구를 짓는 계획이다.
원활한 사업 진행을 위해 강남구는 구룡마을 주민들의 이주를 독려하고 있다. 만약 주민들이 이주한다면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서 제공하는 임대아파트 등에 머무를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주민들은 이주에 탐탁치 않은 반응이다. 이미 이주한 주민들 중 일부는 겨울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구룡마을로 다시 돌아온 경우도 있다.
주민 최모 씨는 "임대아파트에 들어가면 입주금뿐 아니라 매달 월세를 내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없다"며 "원하는 지역에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다른 곳으로 이주를 했다가 다시 돌아온 주민들도 많다"고 하소연했다.
주민들은 현재 서울시와 SH 측에 현실적인 차원의 이주 보상금 혹은 분양권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서울시는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행 토지보상법상 구룡마을은 무허가 불법 건축물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보상해야 할 의무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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