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K팝 한류 참고한 순수예술 해외 홍보 필요"
한국 정체성·문화 연구 및 홍보 강화해 역량 키워야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김환기(1913~1974)의 '우주(Universe 5-IV-71 #200)'가 지난달 23일 크리스티가 홍콩서 개최한 '20세기 & 동시대 미술 이브닝 경매'에서 153억4930만원(구매 수수료 포함, 미포함 132억원)에 낙찰되면서 작가 경매 세계 최고 기록이자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하지만 세계를 재패한 'K팝 강국'에서 순수예술 작품이 받는 평가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김환기의 붉은 전면점화 '3-II-72 #220'이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85억3000만원에(수수료 포함 100억원) 낙찰되면서 한차례 국내 미술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1년 만에 크리스티 홍콩에서 '우주'가 100억원을 넘어서면서 한국 미술의 재평가가 이뤄진 순간이라는 호평이 쏟아졌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132억원에 낙찰되며 한국미술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김환기의 1971년작 '우주(Universe 5-IV-71 #200)'. [사진=크리스티] 2019.11.28 89hklee@newspim.com |
하지만 해외 미술작품 가격을 살펴보면 국내 최고가는 쉽게 넘나든다. 이날 경매에 함께 출품된 중국 작가 산유(1895~1966)의 'Five Nudes(다섯 명의 나부, 1950)'는 459억원에 낙찰됐다. 당시 현장에 있던 외신기자는 김환기의 대기록에 놀라워하는 한국인들을 보고 오히려 신기해했다는 후문이다. 문화산업 국가를 자부하는 한국이 순수예술에 대한 관심과 투자에는 인색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정부는 2022년까지 콘텐츠산업에 정책금융 1조원을 공급한다. 콘텐츠 혁신 기업 지원과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콘텐츠 육성, 그리고 K 콘텐츠의 해외진출을 통한 경제적 부가 창출이 목표다. 한류 방한관광객 유치 확대를 위해 세계적 수준의 케이팝 공연장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 설치하고 케이팝, 쇼핑, 한식이 결합된 '케이(K)-컬처 페스티벌'을 대표 한류 축제로 육성할 계획이다. 해외에서는 '모꼬지 코리아'를 신설해 케이콘 등 대표 한류행사에 우수 중소기업 공동브랜드인 '브랜드 케이' 제품의 판촉과 수출상담도 진행할 예정이다.
반면 지난해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2017년 미술시장 규모는 4942억원이다. 크리스티 홍콩이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간 개최한 11월 경매 총액은 약 3967억(26억3000만 홍콩달러)원으로 이와 맞먹는다.
서진수 강남대 교수는 김환기의 '우주'가 세운 기록에 대해 "세계적으로 단색화와 우리 미술작가들이 재평가되는 계기"라고 평가했다. 이어 "미술의 경제적 가치가 충분히 증명되고 동행될 때 작가의 생명력이 길어진다"고 부연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산유의 'Five Nudes(다섯 명의 나부)', 김환기의 '우주'가 153억에 낙찰된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459억원에 새 주인을 맞은 작품. oil on masonite 120 x 172 cm. (47 1/4 x 67 3/4 in.) Painted in 1950s 2019.12.02 89hklee@newspim.com |
이러한 맥락에서 국내 미술계에서 김환기의 미술을 재조명하는 전시를 열어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서진수 교수는 "기록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영국과 미국 등 해외 유수 미술관에서 김환기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라며 "김환기 작가가 뉴욕에서 주로 활동했지만 브라질 상파울루, 프랑스 파리를 거치며 작품세계를 넓혀갔다. 해외 미술 평론가들이 그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요소가 많다. 경매계, 화랑계, 해외 미술계의 입체적인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순수 예술한류는 장기 정책…미술품 세금 문제 해결·정부 지원 강조
사실 국내 미술 시장은 얼어붙은 상황이다. 침체된 경기와 더불어 미술품 양도소득세 이슈에 컬렉터들의 지갑이 굳게 닫혔다. 현재는 미술품 양도소득세를 '기타소득세'로 분류하고 있지만 최근 정부가 이를 사업소득으로 분류해야 한다며 과세를 추진하고 있어 미술계 반발이 거세다. 김환기의 '우주'가 100억원대를 돌파하면서 이에 대한 여파가 있을 법한데, 크리스티 홍콩 경매 이후 다음날인 24일 서울옥션 홍콩 세일에 등장한 김환기의 1972년 작품 '18-Ⅱ-72 #221'은 22억원(1450만 홍콩달러)에 그쳤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케이팝을 지원했듯 국가가 한국미술을 지원해야 한다. 방탄소년단이 뜨기 전 국내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지금 미술계가 똑같은 상황"이라고 아쉬워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 작가 산유와 김환기는 동양 사상을 바탕으로 서양미술에 영향을 받은 작가로 많이 비교되는데 미술품 가격 차이는 크다. 김환기의 작품을 보면 산유의 기본기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작품도 훨씬 크고 공명성과 몰입감이 있는데도 가격면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며 "이번 경매가 김환기 작품을 제대로 평가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문체부는 케이팝 한류에 기여한 부분은 음악산업 생태계육성 차원이라는 입장이다. 남찬우 문체부 대중문화산업과장은 "한류를 일으키는 당사자를 직접 지원한 바는 없다. 음악산업 생태계 육성을 위한 지원으로 음반제작, 프로모션을 용이하게 해주고 지역연계 축재와 행사를 지원했다. 또한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문화인에게는 훈장을 수훈해 사회적 평가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표준계약서 도입, 중소기업 지원, 심리상담 교육프로그램 운영 등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문체부도 순수예술 시장 활성화와 해외 홍보에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송윤석 문체부 예술정책과장은 "정부도 고민하고 있다. 한류가 현재 대중문화에 집중돼 있지만 이를 한국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도록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를 들어 한류를 통한 문학, 문화 교류가 있을 수 있다. 아울러 한류 콘텐츠를 소개하고 경제적 파급을 위한 정부 차원의 '한류추진단'도 기획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김환기, '18‒II‒72 #221', oil on cotton, 48.1×145.3cm, 1972, Estimate on Request [사진=서울옥션] 2019.12.03 89hklee@newspim.com |
박일호 이화여대 조형예술학과 교수는 정부 차원의 순수예술 세계화 지원 정책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박 교수는 "대중문화에 치우친 한류는 오래가지 못한다. 문화, 그러니까 한국적인 정신이 담긴 것을 우리가 찾아내 같이 홍보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진지하게 논의한 적이 있었나 싶다. 오히려 가시적인 성과에만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순수예술 한류에 대한 정부 노력의 필요성에 대해 그는 "대중이 소비하고 대중매체를 통해 확산되는 대중문화는 전달력이 좋다. 반면 순수예술은 일반 사람들이 이해할지라도 그 한계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정부가 움직여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박 교수는 이에 따라 한국 문화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면 한국에 대한 관심 역시 자연히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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