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바둑판의 풍운아' 이세돌 9단이 현역에서 물러납니다. 상대의 의표를 찔러 난전을 즐겼던 승부사. 평범을 거부했기에 인공지능(AI)을 극복한 세계 유일의 기사. 은퇴 이벤트도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AI와의 재대결. 구글 '알파고'와 대결 후 3년9개월 만입니다. 국내 기술진이 만든 '한돌'과 세 판을 둡니다. 종합뉴스통신 뉴스핌이 '세돌과 한돌의 대결'을 두 가지 측면에서 조명합니다. 인간과 AI의 두뇌싸움이란 측면과 알파고(구글)와 한돌(NHN)의 AI기술 대결입니다.
[서울=뉴스핌] 김세혁 기자 = 재빠른 수읽기와 상상을 초월하는 묘수로 바둑판을 지배했던 이세돌 9단(36)의 고별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3년 전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알파고를 상대로 인간 프로기사 최초의 1승을 따냈던 그. 고별전 역시 AI와 치러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25년간 그가 반상에서 펼쳐 보였던 화려한 기록과 진귀한 에피소드, 프로기사로서 면면을 들여다봤다.
◆세계대회 18회 제패·32연승·AI 이긴 유일한 인간
1983년 전남 신안 출생인 이세돌은 1995년 바둑계에 입단했다. 프로기사 이상훈의 친동생으로 형의 영향을 받았다. 어려서 아버지와 대국을 많이 두면서 바둑에 대한 기본기를 다졌다고 전해진다.
이세돌 9단(왼쪽)과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 마인드 공동창업자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마치고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이형석 사진기자> |
한국기원 공식기록에 따르면 이세돌 9단은 25년간 ▲최연소 입단 기록(12세) ▲세계대회 18회 우승 ▲통산승률 69.65% ▲연승기록 32승 ▲최저단 세계대회 우승 ▲바둑대상 최고승률(2005) ▲바둑대상 최우수기사(2006, 2007, 2008, 2010, 2011, 2012)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1승(4패) 등 진기록을 세웠다.
세부적으로 보면 이세돌의 최연소 입단 기록(12세)은 조훈현(9세), 이창호(11)에 이어 3위다. 본인 최다 연승기록(32연승)은 2000년 작성됐는데, 프로기사 3위에 해당한다. 공식전적은 통산 1904전 1324승 577패다. 최저단 우승은 2002년 작성됐다. 당시 3단이던 이세돌은 15회 후지쓰배에서 유창혁 9단을 물리치고 깜짝우승, 세계 바둑계를 놀라게 했다. 2016년 3월에는 구글 자회사 딥마인드가 개발한 AI 알파고와 5전에 나서 1승을 거뒀다. 당시 세계 1위 커제(중국)가 복수전에 나선다고 칼만 갈다 흐지부지되면서 AI에 승리한 프로 바둑기사는 이세돌이 유일하다. 당시 커제가 알파고에 도전했더라도 전패했으리라는 전망이 여전히 우세하다.
◆대국만큼 화려한 일화들…바둑판 밖의 에피소드
'쎈돌'이란 별명답게 이세돌은 공격적이고 허를 찌르는 묘수로 유명하다. 화려한 플레이 덕인지 바둑판 안팎의 에피소드도 많다.
유명한 에피소드는 이세돌이 바둑계 승단대회 폐지에 일조했다는 사실이다. 승단대회란 말 그대로 단수를 높이기 위해 참가해야 하는 대회다. 2000년 개인 최다연승 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하던 이세돌은 승단대회에 참가하지 않아 3단에 머물러 있었다. 단수가 곧 실력이란 관습에 얽매이지 않던 이세돌이 2002년 3단으로 후지쓰배를 제패하자 한국기원은 이듬해 승단대회를 폐지했다. 대신 세계대회 결과에 따른 승단 규칙(우승 3단·준우승 1단 승단)을 신설했다.
2009년 벌어진 이른바 '휴직사태'도 세간의 관심거리였다. 국내랭킹 1위, 세계대회 10회째 석권 등 물오른 실력을 과시하던 이세돌은 돌연 휴직을 선언하고 그해 4월 국내 최대 바둑대회인 한국리그에 불참했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6월 자진해 기자회견을 가졌고, 심신이 지쳤다는 이유를 들며 사과했다. 다만 중국리그에는 참가한 사실이 논란이 되자 "이미 계약이 돼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세돌은 시상식 불참, 사인 거부 등 그간 비판이 제기됐던 문제도 함께 사과했다.
이세돌 9단이 올해를 끝으로 은퇴나 휴직한다고 선언했다. [사진= 이형석 사진기자] |
뭣보다 이세돌의 바둑인생 중 최고의 에피소드는 AI와 한판대결, 즉 2016년 알파고와 5전이다. 인간 바둑기사로서 AI를 상대로 승수를 챙긴 건 세계 바둑사에 길이 남을 에피소드다.
"질 자신이 없다"는 당당함을 실력으로 입증해온 이세돌은 알파고와 대전에 앞서서도 여유를 보였다. 이는 당시 인터뷰 영상만 봐도 알 수 있다. 제1전을 시작하자마자 AI의 위력을 제대로 맛본 이세돌은 어두운 표정으로 일관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예견됐던 낙승은 당연히 물 건너갔고, 결과는 1승4패로 참패. 다만 알파고의 무시무시한 실체가 방송을 통해 공개되자 바둑계와 시청자들은 충격을 넘어 공포감마저 느꼈다. 일부는 영화 '터미네이터' 속 인공지능 스카이넷이 현실화됐다고 개탄했다. 때문에 대국이 모두 끝난 뒤엔 "1승도 대단하다"는 찬사가 이세돌에게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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